왼쪽부터 지난 7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선보인 디지털 고래(Whale#2) 영상, 디지털 폭포(Waterfall-NYC) 영상. QR코드는 동영상. 사진 디스트릭트
왼쪽부터 지난 7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선보인 디지털 고래(Whale#2) 영상, 디지털 폭포(Waterfall-NYC) 영상. QR코드는 동영상. 사진 디스트릭트
이성호 디스트릭트 대표 서울대 경제학 학사, 공인회계사, 전 삼일회계법인 근무 / 사진 디스트릭트
이성호 디스트릭트 대표
서울대 경제학 학사, 공인회계사, 전 삼일회계법인 근무 / 사진 디스트릭트

“우여곡절 끝에 회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만의 기술을 가지고, B2B(기업 간 거래)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로 외연을 넓힌 것이 성공 포인트였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인 디스트릭트(d’strict)의 이성호(41) 대표는 8월 27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회사의 위기 극복 이야기를 풀어냈다.

디스트릭트는 지난 7월 말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전광판을 이용, 초대형 폭포(Waterfall)와 파도로 만들어진 고래(Whale) 형상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영상을 전시해 화제를 모았다. 평면의 전광판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K-POP스퀘어의 LED 전광판에 ‘파도(WAVE)’ 영상을 올려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이 ‘WAVE’는 올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 2021’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최고점(463점⋅9509개 출품작 중 1위)으로 금상을 받았다.

2004년 설립된 디스트릭트는 본래 웹디자인 업체로 시작했지만 2009년 이후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로 변신했다. 초기에는 주로 기업 주문을 받고 콘퍼런스용 미디어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도맡았다. 2011년 세계 최초 4차원(D) 아트파크인 ‘라이브 파크’를 열었지만,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이후 회사 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2015년부터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당시 디자이너 출신이었던 회사 공동창업주들은 전문 경영인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성호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이 대표는 2009년에 입사해 사업개발본부장 등을 거쳐 2016년 대표이사가 됐다.

이 대표는 주문이 없으면 일이 끊기는 B2B 사업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B2C로 사업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전시관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개관한 디지털 미디어 영상 체험형 전시관인 ‘아르떼 뮤지엄’이 대박을 치면서, 올해 매출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덕분에 6월 자본잠식에서도 벗어났다. 지난 8월 여수에 아르떼 뮤지엄 2호점을 오픈한 데 이어 12월에는 강릉에 3호점을 열 예정이다. 이 대표는 “뮤지엄 사업은 고정적인 매출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준다”며 “올해는 매출이 작년보다 세 배 이상 증가, 역대 최대 매출이 예상된다”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서 입체 영상으로 주목받았다
“우리 기술과 브랜드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였다. 시연 이후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도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 명품 브랜드 회사와 계약을 체결, 해당 브랜드를 광고하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 영상 제작에 들어갔다.”

그동안 회사가 어려웠다고 들었다
“10년 전 4D 아트파크인 ‘라이브 파크’ 사업으로 100억원이 넘는 적자가 생겨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2016년 대표이사가 된 후에는 직원들 월급을 챙겨주기도 빠듯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2015년 자본잠식 후에는 정부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어 더욱더 힘들었다. 자본잠식 회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9억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자금을 토대로 지난해 제주도에서 아르떼 뮤지엄 개관에 나섰다.”

뮤지엄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30대 중반에 회사 대표가 됐지만 회사 재정 상태는 어려웠다. 기업으로부터 주문이 없을 때는 매출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기술력이 있어도,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려면 B2B 중심의 사업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B2C로 사업을 넓힐 수 있는 접점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아르떼 뮤지엄 개관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때가 터닝 포인트였다. 작년에 제주도 아르떼 뮤지엄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고정 매출이 생겼다. 심지어 제주 뮤지엄 한 곳의 매출이 이 사업 시작 전 회사 전체 연간 매출보다 많았다. 2015년 중국지사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시도, 우리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것도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사실 처음에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됐다. 해외 관광길이 막히자,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뮤지엄 관람객이 늘기 시작했다. 꽃, 폭포, 정글, 파도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콘텐츠도 팬데믹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점차 입소문을 탔고, 지난 8월 기준 입장객은 70만 명을 넘겼다. 개관 11개월 만에 100억원이 넘는 매출이 여기서 나왔다. 내년 미국에 4~6호점을 열면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입장료 단가가 한국 대비 세 배 정도 비싸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큰 것 같다
“지난 6월 소더비 홍콩 경매에 미디어 영상 작품을 출품했다. ‘Waterfall-Sands’라는 작품인데, 94만5000홍콩달러(약 1억4000만원)에 판매됐다. 핑크빛 모래가 폭포처럼 쏟아지며 부서지는 모습을 구현한 작품이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예술적으로도 가치를 평가받고 작품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다.”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디스트릭트의 핵심 경쟁력은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 역량에 있다. 우리가 선보인 콘텐츠들은 착시 현상으로 입체감을 만드는 기법인 ‘아나몰픽 일루전’이 적용된다. 평면인 스크린을 입체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실감 콘텐츠를 만든다. 우리가 단순 미디어 영상 제작 업체라기보다는 특화된 미디어 콘텐츠 제작 능력을 보유했다는 말이다.”

앞으로 사업 적용 분야가 넓을 것 같다
“기존, 기업 전광판 광고 시장 외 미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우리의 콘텐츠 소비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 전광판이나 스크린을 통해 콘텐츠를 투영하고 있지만, 가상현실(VR)에서도 우리 콘텐츠를 몰입감 있게 감상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이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회사나 호텔 로비에 미디어 아트 스크린을 설치할 수도 있다. 실제로 넥센타이어 사옥 1층 로비 전광판에 우리가 만든 미디어 아트 영상이 들어가 있다. 아파트를 지을 때 거실에 유리창 대신 미디어 아트 스크린을 설치,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식으로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우리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구독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회계사 그만두고 스타트업행 택한 이유는
“2007년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면서 디스트릭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09년 군 복무가 끝났지만, 입대 전 다녔던 삼일회계법인에 돌아가지 않고 디스트릭트에 남았다. 당시 이 회사의 사업 콘텐츠인 디지털 미디어 제작이라는 아이템에 관심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역량이 마음에 들었다. 회계사로서 보장된 장밋빛 미래보다는 스타트업에서 이들과 함께 도전해보고 싶었다.”

앞으로 계획은
“우선은 회사를 안착시키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직원을 대거 채용 중이다. 올해만 20명을 충원했는데, 좋은 인재를 더 회사에 영입하고 싶다. 내년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데, 성공적으로 안착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후에는 증시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