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이 공식 공포된 7월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이 공식 공포된 7월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 동네는 지금 전세 물건이 거의 없어요. 그나마 두 개 있던 건 지난 주말에 다 거래됐어요. 물건이 더 나올 것 같지도 않아요. 계약 기간이 다가오는 집은 모두 집주인이 들어가서 산대요. 옆 아파트도 마찬가지예요. 임대차 2법 때문에 전세가 씨가 말랐다니까요. 10월 말에 입주 가능한 집이 있긴 한데, 전세금이 16억원이네요. 한번 보실래요?”

서울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면적 60㎡ 전세 물건은 8월 10일 기준으로 거래 가능한 가구가 단 하나도 없다. 전용 85㎡의 경우 16억원 정도에 나와 있는데, 이마저 두 가구가 전부다. 이 면적은 불과 지난 1월만 해도 14억원 정도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는 3002가구짜리 대단지로, 전용 60㎡는 601가구, 전용 85㎡는 936가구가 있다. 공인중개 업체 관계자는 “옆 단지인 ‘래미안도곡카운티’나 ‘대치아이파크’ 등에서도 전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임대차 2법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6·17 부동산 대책 여파로 가뜩이나 불안했던 서울과 수도권 전세 시장이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으로 혼란에 빠졌다. 전세를 반전세로 바꾸는 집주인이 잇따르며 시중 전세 물건은 줄고 있고, 이 영향으로 전세금은 오르고 있다. 공급이 감소하는 와중에 수도권 3기 신도시 청약을 기다리는 수요와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주택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수요는 늘어 전세 시장 불안 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감정원이 8월 첫째 주(3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수도권과 서울 전세금은 각각 0.22%와 0.17% 올라 전주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 특히 세종시의 경우 한 주간 2.41% 오르는 이례적인 상승률을 기록했다. 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으로 세종시 전역에서 전세 물건이 줄어든 탓이다. 이번에 감정원이 조사한 기간은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이며, 4일 발표된 공급 확대 방안과 부동산 관련 법 국회 통과의 영향은 반영되지 않았다.

전세 시장을 둘러싼 각종 지표는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7월 말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01.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통계는 감정원이 2012년부터 집계한 주택 전세가격지수에 2003년 11월 이후 KB국민은행의 조사 결과를 반영해 시계열을 연장한 것이다.

7월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은 117.5에 달한다. 이 수치는 지난해 3월만 해도 69를 기록했는데, 불과 1년 4개월 만에 5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이 지수는 수요·공급 비중을 점수화한 수치로 0에 가까우면 공급이 우위이며, 200에 가까우면 수요가 우위에 있다는 걸 말한다. 100을 넘어 200에 가까워졌다는 건 전세 수요가 크게 늘어 수급 균형이 깨졌다는 얘기다.

이 영향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도 급감했다. 7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6972건으로 전달보다 19.2% 감소했다. 여름이라 계절적으로 전세 거래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감소 폭이 크다. 지난해 7월과 비교하면 무려 31.6% 줄었다.


文 대통령 “주택 시장 안정”…“현실 파악 못 해”

전세 시장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의 인식은 국민과 차이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 주택 시장이 안정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수요자들은 현재 주택 시장에서 벌어지는 인식과 동떨어졌으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울 등 주요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전세의 월세 전환은 급속도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연계한 전·월세 전환율 조정 등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당정 협의를 거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말한다. 집주인 입장에서 이 비율이 떨어지면 임대 수익이 감소한다. 만약 당정이 이 비율을 인위적으로 하향 조정하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릴 수 있고, 이는 임차인의 주거 불안으로 이어져 또다시 전세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으로 임대 수익이 줄 것을 우려한 집주인이 전세 물건을 거둬들이고 있는데, 정부·여당은 오히려 기존의 정책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전세 시장을 혼란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전세 제도이지만, 임차인이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목돈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유지된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제도를 인위적으로 건드리면 결국 임차인도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전세 시장 불안이 매매가 상승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최근 주택 시장은 정부의 ‘약발’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7·10 대책, 8·4 공급 대책 등 잇따른 부동산 정책에도 오히려 신고가를 기록하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서초교대e편한세상’ 전용 85㎡는 8월 5일 20억9000만원에 거래돼 종전 최고가보다 4000만원 올랐다. 이촌동 ‘한강맨션’ 전용 121㎡는 8월 7일 29억4000만원에 거래돼 2개월 전보다 1억1500만원 올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는 임대차 2법 시행을 통해 임차인의 임대 기간을 보장하고, 임대료 부담을 줄이며 주거 안정을 이끌겠다는 계획인데,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한 공급과 제도적 장치는 마련된 셈”이라며 “다만 임차인이 실제 거주할 수 있도록 임대 물량 유통이 원활해져야 하며, 가구 구성원 등 수요자 특성에 들어맞는 주거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