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있는 갭 매장 문이 닫혀있다. 출입구에는 고객과 직원,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휴업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 EPA연합
4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있는 갭 매장 문이 닫혀있다. 출입구에는 고객과 직원,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휴업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 EPA연합

지금까지 경제 위기로 인한 ‘실업대란’은 잔물결에 불과했던 것일까. 국제노동기구(IL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전 세계에서 25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20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코로나19 대량실업 충격이 더 클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가이 라이더(Guy Ryder) ILO 총리는 “코로나19는 더는 보건 위기가 아니라 노동 시장과 경제의 위기다”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탓에 고용 시장에 역대급 한파가 불어올 조짐이 각국 고용 지표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셋째 주(15~21일)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는 한 주 새 28만 건에서 328만 건으로 폭증했다. 미 노동부가 해당 집계를 시작한 1967년 이래 최대치다.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는 미 노동부가 매주 목요일 발표하는 지수로, 이 지수가 늘어나면 앞으로 일자리 증가가 꺽일 수 있음을 뜻한다. 변동성이 큰 지수이기 때문에 보통 한 달치 변화를 놓고 동향을 파악한다.

미국의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도 천장을 뚫고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블룸버그의 설문 조사 결과,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3월 넷째 주(22∼28일) 신규 실업수당 신청이 350만 건(전망치의 중간값)으로 늘어 전주에 이어 2주 연속 신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에서는 유통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이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 의류 유통업체 갭(Gap)은 3월 30일부터 매장 폐쇄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캐나다 지역 매장 직원 대부분(약 8만 명)을 일시 해고한다고 밝혔다. 일시 해고는 기업이 경영 부진에 빠졌을 때 재고용을 약속하고 직원을 일시적으로 해고하는 방식이다. 갭 외에도 백화점 업체 콜스(Coles)와 메이시스(Macy’s), 의류 유통업체 아세나 리테일 그룹(Ascena Retail Group) 등이 일시 해고 방침을 밝혔다.

46만 명을 고용하는 미국 항공 업계는 코로나19 탓에 항공 이동이 제한되자 정부에 대출, 지원금, 세금 감면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 대부분의 미국 항공사는 자체적으로 무급 휴직과 경영진 임금 반환 등의 긴축 조치를 시행 중이다. 정부가 지원을 약속하면서 일시 해고는 잠시 미뤄둔 상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김모씨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대량 해고를 우려하는 분위기다”라며 “현재까지 수치로 드러나는 일자리 감소는 관광, 유통, 요식업에 집중돼 있는데 점차 금융, 건설, 정보기술(IT) 업계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발원국인 중국 역시 고용 시장에 먹구름이 꼈다. 2월 중국의 도시 실업률은 6.2%로 코로나19 영향권 밖인 2개월 전보다 1%포인트 올랐다. 이는 2018년 관련 통계 발표 이래 최고치였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실업률 증가를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던 1~2월 중국의 산업 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 급감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발표한 중국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1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9%를 기록하면서,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180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봤다. 아이리스 팡 ING은행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올해 6월 900만 명에 이르는 대학 졸업자가 나오면서 도시 실업률이 10%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탓에 올림픽 특수를 빼앗긴 일본의 고용 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월 유효구인배율은 1.45배로 전월보다 0.04%포인트 낮아졌다. 유효구인배율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 1명에 대해 기업의 구인이 몇 건인지를 나타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의 채용 의욕이 급감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유효구인배율은 1월 0.08%포인트 낮아졌다. 2개월 새 0.1%포인트 이상의 하락 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2월 고용 선행 지표인 신규 채용은 주요 산업 부문 모두 지난해 2월보다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가 27.4% 감소해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비스 업종도 18%나 줄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기업의 해고나 임시 휴업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도 불안하다

한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월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1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는 1849만 명으로, 지난해 2월보다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월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시작한 2009년 이후 가장 작은 증가 폭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염병 위기 경보가 1월 27일 ‘경계’로, 2월 23일 ‘심각’으로 격상된 이후 처음으로 집계된 사업체 고용 지표로, 코로나19의 영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4월 초 발표하는 3월 노동 시장 동향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이 고용에 미친 영향이 더욱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3월 들어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수가 지난해 3월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영세 여행사가 잇따라 문을 닫았는데, 현재 대기업에도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자동차 부품 회사 만도는 이미 생산직 근로자 대상 희망퇴직 절차를 진행 중이며, 유가 폭락 악재가 겹친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 중이다. 두산중공업은 2월 희망퇴직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중 처음으로 모든 노선 운항을 중단한 이스타항공은 5월 말까지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인력의 44%(750명)를 내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