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는 4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마힌드라의 신규 자금 지원 차질에도 미래 경쟁력 확보와 고용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경영 쇄신 작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사진 연합뉴스
쌍용차는 4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마힌드라의 신규 자금 지원 차질에도 미래 경쟁력 확보와 고용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경영 쇄신 작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사진 연합뉴스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이 돌연 쌍용차에 대한 23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마힌드라그룹 산하 자동차 부문 계열사인 마힌드라&마힌드라(이하 마힌드라)는 4월 3일 특별 이사회를 열고 쌍용차에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3개월간 최대 400억원의 일회성 특별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도록 승인했다. 마힌드라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격을 입은 여러 사업 부문에 자본을 배분하는 방안을 논의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마힌드라그룹은 코로나19 탓에 쌍용차를 챙길 여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도는 3월 25일부터 21일간 국가 봉쇄령이 내려졌다. 내수 시장 위축으로 마힌드라그룹은 설립 최초로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힌드라 측은 지난해 연말 쌍용차 노조와 면담에서 23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올해 1월 한국을 방문해 신규 자금 투입과 포드와 글로벌 제휴, 3년 후 흑자 전환 목표 등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엔카 사장은 방한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이목희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한국 정부의 지원도 요청했다. 이어 고엔카 사장은 2월 인도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앞으로 3년간 5000억원을 투입해 쌍용차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5000억원 중 2300억원은 마힌드라가 직접 투자하고 1000억원은 쌍용차가 비용 감축 및 자산 매각 등으로, 나머지 금액은 산업은행 등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마련한다는 취지라는 게 당시 쌍용차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마힌드라는 2300억원 투자 계획 실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400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자금 절벽’ 끝으로 몰린 쌍용차는 충격에 빠졌다. 예병태 쌍용차 사장은 4월 6일 평택공장 직원들에게 보낸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정부와 대주주의 자금 지원을 통해 기업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던 계획이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회사는 지금 2009년 법정관리 이후 최악의 비상시국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과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 요청을 통해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쌍용차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명가’라는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SUV 시장 경쟁 심화 탓에 쌍용차 판매량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올해 들어 코로나19 탓에 판매량이 급락했다. 2020년 1분기 판매량은 2만4100대로 지난해 1분기(3만4900대)보다 30.7%나 줄었다. 쌍용차는 2019년 4분기까지 12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적자 폭은 커져만 갔다. 2017~2018년 600억원대였던 영업손실은 2019년 2800억원으로 늘었다.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진 쌍용차의 재무상태는 2009년 법정관리 직전 수준으로 악화했다. 2019년 쌍용차의 자본잠식률은 46%에 달했다. 자본잠식률 50%가 넘으면 관리종목에 편입될 수 있고, 지속되면 상장폐지도 될 수 있다. 2019년 쌍용차의 부채비율은 400%로 2008년과 유사한 수준이었고, 단기부채 상환능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은 50%로 더 나빴다.

마힌드라는 2011년 5500억원에 쌍용차 지분 70%를 인수해 최대주주에 오른 뒤 2013년 800억원, 2019년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쌍용차 신차 개발 등을 지원했다. 하지만 쌍용차의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고, 코로나19로 자금난에 몰리자 쌍용차에 대한 지원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사실상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포기했다는 말도 나온다.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쌍용차의 단기차입금 규모는 2540억원이다. 마힌드라가 2300억원 대신 약속한 400억원은 긴급 운영자금 명목이어서, 추가 자금 지원이 없다면 쌍용차는 도산 위기에 놓인다.


쌍용차 ‘운명의 달’ 7월

올해 7월은 쌍용차가 최대 고비를 맞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힌드라는 쌍용차에 7월까지 버틸 수 있는 3개월간의 운영자금 400억원을 지원한다고 했다. 또, 7월에는 쌍용차가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 9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이 때문에 마힌드라가 신규 투자 계획 축소를 통해 우회적으로 산업은행을 비롯한 한국 정부에 쌍용차 지원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쌍용차도 정부와 산업은행에 지원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쌍용차 지원 여부에 대한 정부와 산업은행의 입장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4월 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힌드라의 신규 투자 계획 철회에 대해 “마힌드라그룹이 자금 압박을 받고 그런 결정을 한 게 아닌가 싶어 진의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대출금 900억원 만기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만기가 7월에 돌아오는데 지금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유보적 입장을 드러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같은 날 “마힌드라는 400억원의 신규 자금 지원과 신규 투자자 모색 지원 계획을 밝혔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주주와 노사가 합심해 정상화 해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금 지원 가능성에 대해선 “채권단 등도 쌍용차의 경영 쇄신 노력, 자금 사정 등을 고려해 경영 정상화를 뒷받침할 부분이 있는지 협의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마힌드라는 앞으로 산업은행 등의 지원 여부 및 규모에 따라 쌍용차 추가 투자 또는 지분 매각, 최악의 경우 철수나 청산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현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쌍용차의 사업 규모 축소 및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쌍용차는 이미 지난해부터 고강도의 경영쇄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사 모두 임금 삭감에 동의하고, 복지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마힌드라가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하자 쌍용차는 독자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핵심 자산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