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의 ‘올드 아바나’ 지역과 ‘비에하’ 지역에는 호텔, 공연 시설 등 관광 시설이 들어차 있다. 쿠바의 신세대들은 관광지에서 벗어나 주거 지역 곳곳을 돌아보는 도보 투어의 가이드로 나선다. 사진 김소희 기자
쿠바 아바나의 ‘올드 아바나’ 지역과 ‘비에하’ 지역에는 호텔, 공연 시설 등 관광 시설이 들어차 있다. 쿠바의 신세대들은 관광지에서 벗어나 주거 지역 곳곳을 돌아보는 도보 투어의 가이드로 나선다. 사진 김소희 기자

7월 8일(현지시각)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돈키호테 광장. 대서양이 내다보이는 말레꼰(방파제)과 우뚝 솟은 호텔이 인접한 지역이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푸른 바다, 프랑스 식민지풍 저층 건물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지역 일대는 한국에서는 배우 송혜교와 박보검이 드라마 ‘남자친구’ 첫 회에서 만난 장소로 유명하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스마트폰 앱을 켜고 약속 장소를 확인하고 있으니 외국인이 하나둘 다가왔다. “‘경제학자와 함께하는 쿠바 투어’ 예약한 분들 맞나요?”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현지인 관광 연결 서비스 ‘트립’을 통해 도보 투어를 예약한 사람들이었다.

곧이어 현지 대학 경제학과 출신 가이드가 찾아왔다. 그와 함께 마을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났다. 곧이어 도착한 곳은 아바나의 주택가 ‘마리아노'. 시내 한복판 번쩍이며 눈길을 끌던 올드카 대신 낡았지만 소박한 집과 현지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리브해의 공산 국가’ 쿠바의 실상을 엿보는 ‘슬럼투어’가 늘어나고 있다. 슬럼투어란 빈민가를 돌아보면서 현지 생활상을 알아보는 관광 상품이다. 정부가 관광 산업을 관리하는 공산주의 국가 쿠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상품이었다. 2015년 쿠바에 진출한 미국 기업 에어비앤비가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현지 일반인 가이드가 나서서 이들에게 마을을 직접 보여주는 관광 상품이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내세우는 쿠바 관광 코스는 ‘낭만적인 휴양 여행’에 가깝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겼던 ‘모히토’를 마시고, 1950년대식 ‘올드카’로 쿠바 시내를 돌고, 전설적인 쿠바 전통 그룹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앨범을 연주하는 재즈 클럽을 방문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날 만난 가이드는 쿠바의 관광지가 실제 쿠바 국민의 삶과 괴리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가이드는 "쿠바의 올드카는 낭만보다는 빈곤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쿠바는 공산주의 혁명 이후 미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들과 국교를 단절했다. 자동차 수입길이 막히면서 신차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2000년대 들어 해외 국가들과 수교를 시작했지만, 이번엔 국민들이 수입차를 살 경제적 여력이 부족했다. 가이드가 가리킨 현대식 차량의 번호판은 모두 정부 소유 차량을 나타내는 파란 바탕이거나 외교관 소유 차량을 나타내는 ‘D’가 앞에 붙었다.

가이드는 국민보다 관광객을 1순위로 생각하는 현지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가이드는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재즈 클럽을 가리키며 “저 곳은 주민이 아닌 관광객만을 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임금 체계를 관리하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쿠바인의 평균 월급은 약 777쿱(내국인 전용 화폐 단위·약 3만7000원)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현지인은 관광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현지 올드카 투어는 30~50쿡(외국인 전용 화폐 단위·약 3만5000~5만8000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노래가 나오는 재즈 클럽은 저녁 식사를 50쿡(약 5만8000원)에 제공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클럽. 입장료는 50쿡(약 5만8000원)으로 월급이 적은 현지인들은 이용이 어렵다. 관광객들로 꽉 차 있는 모습. 사진 김소희 기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클럽. 입장료는 50쿡(약 5만8000원)으로 월급이 적은 현지인들은 이용이 어렵다. 관광객들로 꽉 차 있는 모습. 사진 김소희 기자

공무원 그만둔 30대가 관광 안내

에어비앤비의 현지인 관광 연결 서비스 ‘트립’ 플랫폼에 올라온 쿠바 아바나의 현지 관광 상품들. 사진 에어비앤비 캡처
에어비앤비의 현지인 관광 연결 서비스 ‘트립’ 플랫폼에 올라온 쿠바 아바나의 현지 관광 상품들. 사진 에어비앤비 캡처

슬럼투어는 쿠바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날 진행된 투어 가이드는 월급이 적은 국가직을 포기하고 가이드를 하고 있는 30대가 이끌었다. 젊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에 해당하는 ‘신세대 쿠바노(쿠바인)’다. 이들은 1950~60년대를 강타했던 쿠바 혁명을 경험하지 못했고, 소련 붕괴 전후 태어났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받는다. 쿠바의 관광 산업 발전으로 외국인과 교류하면서 사고가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도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날 가이드는 “쿠바와 미국 정부 사이 마찰이 있지만, 쿠바 국민은 전반적으로 미국을 좋아한다”면서 성조기가 그려진 옷이나 모자를 착용한 사람의 수를 셌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성조기 바지를 입은 사람, 미국 야구 구단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사람, 중앙에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 등 대여섯 명의 현지인이 지나갔다.

반면 쿠바와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이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경제 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사회주의와 전쟁’을 선언하면서 국교 정상화를 취소했다. 심지어 최근 쿠바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군사 지원을 약속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 수준을 최고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경고했다.

투어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이렇게 말하면 공산당에 잡혀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현지인 가이드는 “공적 발언은 문제 될지도 모르지만, 사적인 대화는 괜찮다”고 답했다. 실제로 신세대 쿠바노는 미국 기업 에어비앤비와 계약하고 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정부 제재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발언권이 제한된 사회주의 국가지만 가이드가 투어 과정에서 관광객의 궁금증을 풀어주면서 정치적 의견 교류가 자연스레 이뤄졌다.

인터넷 보급이 시작되면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신세대 쿠바노는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쿠바의 인터넷망은 매번 정부 통신 기관 ‘에텍사(ETECSA)’에서 인터넷 카드를 사야 이용 가능했다. 그것마저도 정해진 구역이 따로 있었다. 2017년부터 가정집에 인터넷 설치가 가능해졌고, 지난해 12월부터 3G 서비스를 전면 허용했다.


Plus Point

공산주의 균열...자그마한 커피가 상징

쿠바에서 이뤄지는 에어비앤비 트립 상품에는 빠지지 않는 코스가 있다. 바로 민간 사업장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이날도 투어 일정에 따라 식음료 노점상에 들러 열대 과일 타마린드를 갈아 만든 주스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셨다. 가이드는 “여기서 파는 커피가 쿠바 경제에는 중요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쿠바인들에게 민간 사업은 공산주의 체제의 변화의 시작이다. 공산주의 혁명 이후 쿠바는 정부가 사업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가졌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식음료 사업, 택시, 민박집, 렌터카, 스파, 식당, 이발소, 미용실, 청소업, 수리업, 건설 노동 등 180여 업종의 소규모 민간 사업을 일부 허용했다.

가이드는 “개인 사업에 뛰어들어 직접 돈을 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쿠바 개인택시 기사들은 정부의 민간사업 규제와 세금 인상에 반대해 10일간 파업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