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욱 루닛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 카이스트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  전 에빅사 개발자, 루닛 전 대표이사,  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사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백승욱 루닛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 카이스트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 전 에빅사 개발자, 루닛 전 대표이사, 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사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단기적으로는 매출을 공격적으로 늘릴 것이다. 장기적으로 루닛의 꿈은 암을 정복하는 것이다. 감기처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의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백승욱 이사회 의장의 발언이다. 백 의장이 2013년에 창업한 루닛은 AI 기반으로 폐암, 결핵, 폐렴 같은 폐 질환과 유방암을 판독, 진단해주는 의료 소프트웨어(루닛 인사이트) 회사다. 정확도는 97~99% 정도다. 아직은 연구용으로 활용 중이지만 AI 분석을 통해 암의 예후와 치료 반응을 예측해주는 솔루션(루닛 스코프)도 있다. 2025년 시판을 목표로 연구개발(R&D) 중이다.

루닛은 현재까지 약 1600억원(누적 기준)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해 지난해 66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익은 아직 마이너스다.

루닛은 6월 15일 증권신고서 제출을 마쳤고, 7월 코스닥 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암 진단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유동성 위기와 이에 따른 스타트업 투자 경색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백 대표는 “오히려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좋은 루닛에는 기회”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해 말 기준 루닛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루닛 인사이트 CXR’. 사진 루닛
지난해 말 기준 루닛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루닛 인사이트 CXR’. 사진 루닛

KAIST 학부 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다.
“소프트뱅크벤처스를 이끌고 있는 이준표 대표가 2003년 KAIST 재학 때 학부생들과 ‘에빅사’라는 회사를 공동 창업했었다. 학부 2학년이었던 나도 개발자로 초기에 합류했다. 인재들이 모여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대기업에 팔아보기도 했다. 매우 재밌었다.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그때부터 했다.”

처음엔 지금의 의료영상 판독이 아닌 패션 이미지 인식 사업으로 시작했는데.
“보통 창업은 문제를 발견해 솔루션을 내놓으며 시작한다. 루닛은 무슨 문제를 푸느냐보다 ‘딥러닝(deep learning·심층학습)’이라는 기술이 유망할 것이라고 생각해 일단 기술 R&D로 창업해놓고, 이것으로 어떤 문제를 풀지 탐색했다. ‘사람들이 비슷한 옷을 이미지 검색으로 찾아 쇼핑하는 걸 재밌어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우리가 풀겠다는 문제가 고객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솔루션·제품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걸 배웠다. 백지상태에서 다시 고민해 의료 진단으로 답을 내게 됐다. 2013년 법인을 설립하고, 2014년 말 회사명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사업 아이템을 피봇(전환)했다.”

최근 의료 스타트업을 보면 업계의 저항·반감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은데 루닛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만약 AI가 영상의학과를 모두 대체할 거라고 했다면 의사들은 반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면 비즈니스가 안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철저하게 의사들의 언어로, 의사들이 생각하는 프레임에 맞추려 했다. 의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업무가 편해지거나 의학적 효용, 즉 임상 행위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두 가지다. 루닛은 솔루션 역시 공동 연구하자고 접근했다. 실제로 루닛 제품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부터 만들어진 AI 제품을 평가하는 것까지 모두 의사를 필요로 한다. 결과물을 의사들이 인정하는 미디어, 학회에 발표하는 형태로 낸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현재 개발 중인 ‘루닛 스코프’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면역 항암제라는 게 있다. 현재 관심이 큰 항암제인데, 어떤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정확하게 필터링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는 바이오마커(PD-L1)라는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야지만 면역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검사 정확도가 높지 않다. 효과가 있을 환자도 검사 결과에 따라 면역 항암제 처방을 못 받게 된다. 루닛이 연구해 보니 기존 검사에선 안 들 것(음성)이라 했지만, AI가 들 것(양성)이라고 했고 실제 결과도 효과가 있는 사례를 발견하고 있다. 이런 게 우리 가치다. 환자, 보험사, 의사 등에게 모두 유용하다.”

AI는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
“AI가 잘하는 것은 어떤 정보가 주어졌을 때 이를 A·B로 분류하는 것, 현재 시점에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 두 가지다. 의료 진단·치료도 따지고 보면 분류와 예측에서 출발한다.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분류해 환자에게 이 약을 줬을 때 반응할지, 안 할지 예측하는 거다. AI 기술과 의학이 궁합이 잘 맞는 것이다. 루닛은 일단 암에 집중하고 있다. 암은 특히나 세분화돼 있는 데다 분류를 위한 기준조차 다양해 굉장히 복잡하지 않나. AI는 복잡도가 높아질수록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다.”

현재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초반에는 기술적으로 드라이브를 해야 했다. 당시 70~80%쯤 했던 암 진단 정확도를 90%대까지 높이기 위한 검증이 안 된 상태였다. 2018년쯤 AI가 사람보다 잘하고,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다는 검증이 끝났다. 이제는 이 결과를 의학적인 언어로 잘 패키징해 제품을 만들고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내가 루닛에서 하는 모든 의사결정의 가장 큰 중심은 ‘회사의 성장’이다. 냉정하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2018년 10월 이후 서범석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서 대표가 의학적인 전문성도 있고, 글로벌 사업도 가능한 인재다. 나는 회사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다니고 있다. 현재는 신사업을 맡고 있다.”

어떤 신사업을 준비 중인가.
“환자와의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루닛 케어’라고 한다.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베타(시범) 버전을 론칭한 상태다. 루닛 안에 있는 훌륭한 의료진들과 암 환자를 연결해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골자다. 게시판과 비슷하다. 암 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궁금한 게 많은데 물어볼 데가 없다는 거다. 동네 의원에 물어볼 수도 없고, 대학병원 교수는 연락하기 어렵다. 지금은 모수가 적으니 내부 팀원으로 소화 중이지만, 향후에는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만족도를 올려놓고 향후 개인화 등 수익 모델을 고민해볼 생각이다.”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이 어려운 분위기인데.
“어려운 상황이지만, 상장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펀더멘털이 좋은 회사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호재다.”

상장 자금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가.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이 가장 큰 목표다. 제품을 더 많이 팔아 매출을 공격적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사업이 안정화되면 췌장암 등 검진이 어려운 암으로 본격적으로 사업도 확장해나갈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암을 정복할 것이다. 아예 없앨 수 없겠지만, 감기처럼 관리할 수 있는 질병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