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의 한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이 상담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의 한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이 상담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그러니까 이미 대출받은 1억원 말고 신규 5000만원도 신용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11월 30일 전에 재직 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챙겨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이미 개설해 가지고 있는 마이너스 통장 대출 한도의 경우 이번 대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요?” “마이너스 통장은 물론 모든 신용대출도 11월 30일 전에 계약을 체결하면 이번 대책과는 무관합니다.”

11월 1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광화문 KB국민은행 동아미디어 지점 영업 창구에서 은행원과 고객 간에 오간 대화의 일부다. 이 지점의 한 창구 직원은 “전날 본사로부터 정부의 새로운 신용대출 규제 관련 대응 매뉴얼이 내려온 상황”이라며 “신용대출 관련 고객 질문이 이어지고 있어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이코노미조선’이 이날 오후까지 서울 시내에 있는 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 은행 지점 다섯 곳을 돌아보니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역 앞에 있는 우리은행 서울스퀘어센터 지점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42)씨는 “집을 사려고 하는데 신용대출에도 규제가 가해진다는 뉴스를 보고 상담을 위해 방문했다”고 했다. 이 지점의 한 창구 직원은 “비대면 금융 시스템 발달로 비대면을 통한 신용대출 추가 신청이 늘고 있다”라며 “영업점에서도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다른 직장인 이모(35)씨는 “자산 버블(거품)로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시기에 정부의 가계대출 대책 때문에 나만 나중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하다”라며 “생애 처음으로 은행에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 방법을 물어봤다”고 했다. 숭례문 옆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 영업 창구의 한 직원은 “직장이 밀집한 지역의 사내 행원들로부터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곳에서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주택가가 혼재한 서울 송파구 소재 지점에는 신용대출 관련 상담, 특히 고소득 직장인의 전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증권사들이 밀집해 있는 여의도 소재 지점도 신용대출 한도 관리 시점을 물어보는 증권사 직원들의 전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제도 시행일 이전에 대출을 받으면 규제를 피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문의가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소득자 대부분이 이미 신용대출을 받고 있어 기존 신용대출자들의 문의가 많다”라며 “대출자들이 만기 연장이 가능한지, 규제가 적용되는 11월 30일 이후 한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정부가 주택 가격 안정화 대책(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11월 30일부터 신용대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11월 13일 부동산 시장으로의 신용대출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몰리는 것을 막는 이른바 ‘핀셋 규제’ 방안이다.

이번 방안은 연봉 8000만원 이상 고소득자가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을 경우 개인 단위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은행 40%, 비은행 60%)를 적용하고,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고 1년 내 규제 지역에서 집을 사면 신용대출을 2주 안에 회수하는 것이 핵심이다. 11월 30일부터 대책이 시행되고, 시행과 동시에 금융 당국은 모든 은행이 이런 규제를 준수하는지를 매달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과도하게 돈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번 대책 발표 후 주요 시중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마이너스 통장 잔액 포함)은 급증하고 있다. 대책 시행 전에 최대한 신용대출을 받아두려는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11월 16일 기준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30조5064억원으로 발표 전인 11월 12일 기준 129조5052억원에 비해 나흘 만에 1조원 넘게 급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 14~15일은 영업점이 쉬는 주말이었음에도 온라인 비대면 대출 신청을 통해 잔액이 늘었다”고 전했다. 실제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네 개 시중 은행에 따르면 14~15일 주말 이틀 동안 이들 은행에서 신규 취급한 비대면 신용대출은 총 1929건(775억원)이었다. 신용대출 규제가 발표되기 전 주말인 7~8일 대출 건수는 944건(219억원)이었다. 규제 발표의 영향으로 일주일 새 대출 건수는 약 두 배, 대출 금액은 약 3.5배 불어난 것이다.

신용대출을 시행하고 있는 인터넷 은행 카카오뱅크에서는 15~16일 온라인 신용대출 신청 고객이 일시적으로 몰리면서 접속 지연 현상까지 나타나 고객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향후 금융 당국의 지방은행과 외국계 은행을 포함한 전체 은행 신용대출 잔액 집계가 잡히면 이 수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11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의 한 영업점 입구. 사진 김문관 기자
11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의 한 영업점 입구. 사진 김문관 기자

고소득자 역차별 논란도

금융권에서는 이번 고소득자 신용대출 규제를 지난해 12월에 나온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안에 비견할 만한 대형 규제로 본다. 특히 이번 규제가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더욱더 어렵게 한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 집을 산다는 의미의 신조어)’을 통해 집을 사려고 해도 신용대출을 규제해 어려워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사람들이 신용대출까지 받아 집을 사려는 이유는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 가능 금액이 줄고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치솟은 영향이 크다.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또 다른 규제로 막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서민과 소상공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은행권의 자체적인 신용대출 관리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량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 규제가 당위성 측면에서 의아한 부분이 많다는 반응도 나온다. 통상 신용도가 높고 상환 능력이 큰 사람이나 기업에 대출을 많이 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해당 대출이 특별한 부실이 감지되지 않았는데도 규제한다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내가 내 신용을 잘 관리하고 남들보다 돈도 많이 버는데 왜 나한테는 저 사람보다 대출을 더 안 해 주냐’ 등 역차별적이라는 불만이 많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신용대출 규제가 경기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은행에서 대출이 막힌 고소득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저축은행이나 신용카드사, 보험사 등 제2 금융권으로 향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저소득·저신용자들이 더 질이 안 좋은 대출로 밀려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대출 이자만 오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