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2005년은 변화와 모색(摸索)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둘러보고 평가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치권의 눈으로 볼 때 2005년은 쉬어가는 해다. 우선 2005년에는 큰 선거가 없다. 2002년 대통령 선거부터 2004년 총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은 숨가쁜 일정을 소화해 왔다. 2005년에 잡힌 선거는 4월과 10월로 예정된 재·보궐 선거 정도다. 재·보궐 선거는 말 그대로 여러 이유로 귀퉁이가 빠진 곳을 채워 넣는 것이지 진검 승부를 벌이는 본선 시합은 아니다.

 그러나 2006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2006년 6월 서울시장과 경기도 지사 등 광역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이 선거가 끝나면 여야는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2005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은 다가오는 큰 선거, 즉 2007년 대선을 향한 밑그림 그리기로 바쁜 시간을 보낼 것이 분명하다. 성공하든 불발로 끝나든 정치권에선 2005년 한 해 동안 여러 형태의 정치적 모색이 진행될 것이고, 2007년을 겨냥한 정치적 포석 작업이 분주히 이뤄질 수밖에 없다.

 4월 여권 전당대회 ‘노심’의 향배는?

 우선 여권은 4월2일 전당대회를 통해 열린우리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여당의 입장에서 이번 전당대회의 의미는 적지 않다. 이 전당대회는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이 지금까지의 가건물(假建物) 구조에서 벗어나 영구적인 틀을 갖출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계기다. 또 여당의 새 지도부에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어느덧 임기 중반에 이른 노무현 대통령과 현 여권의 국정 및 정국 운용 방향을 점쳐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여권은 2004년 정기국회의 시행착오를 떨어내고, 2005년의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 같은 전환의 계기가 바로 4월 전당대회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전당대회 출마가 점쳐지는 인물은 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3선의 문희상 의원을 비롯해 지난 4.15 총선 직후 총리 물망에 올랐던 김혁규 현 상임중앙위원, 여성부·환경부 장관 등을 지낸 한명숙 상임중앙위원, 재야파의 중진인 임채정·장영달 의원과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인 3선의 이미경 의원,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노 대통령의 측근 인물로 꼽히는 염동연 의원 등이 있다. 여당의 선출직 상임중앙위원은 5명이며, 이 중 최다 득표자가 당을 대표하는 ‘당 의장’이 된다. 창당 직후인 2004년 1월 전당대회에서 당 의장에 선출된 사람이 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다. 정 장관은 경쟁관계에 있는 김근태 당시 원내대표(현 보건복지부 장관)와 함께 47석의 미니 여당을 국회 과반 의석을 넘는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반기 이후 개헌 논의일 듯

 그러나 이번 4월 전당대회는 당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정동영·김근태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이 전당대회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당내 실세들이 나설 경우 자칫하면 당이 조기 대선 후보 경쟁에 빠져들게 되고, 이는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은 장관으로 입각한 지 1년도 안 돼 다시 당으로 복귀하는 정치적 선택에 대한 부담 때문에 나서기 힘든 입장이다. 결국 여당의 4월 전당대회는, 이들 실세가 내세우거나 지지하는 인물들을 통한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가장 큰 변수는 노 대통령의 의중, 즉 ‘노심(盧心)의 향배’다. 노 대통령이 누굴 차기 여당의 대표로 선택하느냐는 임기 중반에 이른 여권 진용의 포진이라는 전체적 틀 속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희상, 김혁규, 한명숙 등 세 사람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여권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정 쇄신’ 주장이다. 이미 여권 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특히 2004년 말 여권이 주장하는 이른바 4개 개혁법안(국가보안법 폐지안, 과거사진상규명법,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관계법)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면서 여권 내에선 이제 국정 운영의 큰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특히 경제난에 따른 민심의 분노가 심상치 않은 수준이라는 데 여권 인사들 모두 동의하고 있다. ‘소리 많이 나는 개혁’ 주장 대신 경제·민생으로 여권의 국정 운용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 모색은 여권 내부의 노선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약 여당 내부의 노선 갈등이 본격적인 정치적 분화로까지 치닫게 될 경우 정치권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2005년 ‘변화’라는 키워드를 놓고 씨름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총선에서 121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총선 결과를 놓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도 잠시였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당 안팎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또 다시 위기에 빠져들었다. 현재로선 당 안팎에서 한나라당을 뒤흔들려는 원심력이 워낙 강하다.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구심력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 보수 진영의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 영남권 대 비(非)영남권의 갈등과 대립,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 대선 후보군의 판 흔들기 등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한나라당은 당의 명운을 걸고 안팎의 도전에 맞서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2005년의 정치권을 관찰하는 핵심 포인트 중 하나가 개헌 논의다. 이미 4.15 총선 직후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은 “2007년 대선 전에 개헌 논의를 시작해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표까지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여야 모두 개헌 논의의 출발 시기를 2006년 6월 지방 선거 이후로 잡고 있지만 실질적으론 2005년 하반기부터 본격 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개헌 논의가 정치권 곳곳에서 시도할 변화의 모색 과정과 결합할 경우 ‘정치와 게임의 룰’이 걸린 대형 논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