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파는 여인들.’ 여성 속옷을 만들거나 파는 남성만큼이나 ‘철’을 파는 ‘여성’도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말한다. ‘철을 파는 일이야말로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의 특징이 꼭 필요한 분야’라고. 이들이 말하는 아이언(Iron) 세일즈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보자.

 전기강판 개발판매팀의 강경희(38) 과장. 입사 15년 차인 그녀는 1990년 포스코 여성 공채 1기 출신이다. 입사해 줄곧 ‘철을 파는’ 판매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이 “엄마는 회사에서 무슨 일 해?” 하고 물어왔올 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한동안 막막했다.

“어른들에게도 설명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생산재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게 아니니까요. 자동차회사나 철강회사 같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제때 공급하는 게 저희 일이에요.”(강경희 과장)

 2001년 입사, 5년째를 맞고 있는 임세정(26) 대리. 자동차강판 수출2팀 소속으로 자동차 차체에 쓰이는 강판을 팔고 있다. 한 달 전 수출팀으로 오기 전까지는 국내 자동차사를 담당했다. 현재는 중국의 ‘북경 현대’, ‘동풍열달 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사의 중국 합작법인을 상대로 한 판매를 맡고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친구들이 ‘너 회사에서 뭐하냐?’고 물으면 그래도 전 얘기하기 쉬웠어요. 지나다니는 자동차 가리키며 ‘응, 저 차에 들어가는 쇠를 팔아’ 하면 됐으니까요. 전문적인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라 처음엔 철에 대해 공부하느라 애 좀 먹었지요.”

 이제 입사 7개월째인 이세옥씨(23). 냉연강판 수출2팀 소속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쪽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하고 중국어를 부전공해 ‘외국어 전문가’라는 부분이 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팔고 있는 철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배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녀 스스로 “거의 매일 깨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고객으로부터 오더(주문)를 받아 공장에 넣고, 주문한 제품이 제대로 생산되는지 체크합니다. 지속적으로 고객사와 상담도 하고요. 수출은 주로 종합상사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종합상사가 제 고객이라 할 수 있죠. 고객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많은 부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윗분들께 물어가며 배우고 있어요.”

 15년 차의 베테랑인 강 과장은 처음 신제품 개발판매팀에 발령을 받았다. 배의 외형을 만드는 후판을 주로 팔았는데, 후판 중에서도 신제품인 LNG선, 잠수함용으로 새로 개발된 후판을 파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개발판매’란 기존에 수요가 없었거나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던 시장을 빼앗아 오는, 전투로 치면 ‘백병전’과 같은 것이다.

 “우리보다 기술이 앞선 일본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제품을 우리 회사가 새로 개발하면 경쟁사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서 우리 고객으로 만드는 일을 했죠. 신제품 개발 단계부터 고객 개척까지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어요. 처음 입사해 신제품 개발판매를 담당해 그런지 지금도 냉연강판이나 자동차 강판 같은 일반적인 제품 판매보다는 전문 제품 판매를 많이 맡고 있습니다.”

 강 과장이 입사할 당시만 해도 여직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사하던 해 공채로 49명을 채용한 뒤로 여성 인력 채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래도 전체 1만8000명 임직원 가운데 여직원은 300명 정도에 불과해, 여전히 ‘남자 절대 우위의 회사’다.



 여성 인력 채용 꾸준히 증가세

 상대적으로 판매 부문은 여자 직원이 15% 정도로 다른 파트에 비해 많다. 판매 파트는 특성상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빛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생산능력과 고객사의 주문 사양에 따라 물량을 중간에서 조정해야 하고, 생산된 물량의 우송은 물론 고객사로 전달하는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한다. 판매 파트는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 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임세정 대리) 곳이다.

 2003년 9월 초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삼켰을 때, 임세정씨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나에게도 올 수 있”음을 실감했다.

 “고객인 모 국내 자동차사로 이송되어야 할 코일이 유통기지에 있었는데, 폭우로 인해 침수가 되었다는 거예요. 고객사에서는 물건이 도착하지 않으면 생산 라인이 멈춰서야 할 상황이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죠. 밤새 양쪽으로 연락을 취한 끝에 라인이 멈추는 일은 간신히 막았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강 과장은 제철회사 판매라는 일이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도 비닐하우스에 들어간 휘어진 철제 파이프가 어떤 재질인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직업”이라며 함께 웃었다.

 “철강 판매라는 게 워낙 금액이나 물량이 큰 거다 보니 조금만 실수를 해도 큰 차질이 발생해요. 그렇지만 IMF 관리체제와 같은 경제 쓰나미가 닥쳐오면 정말 도리가 없어요. 저는 그 쓰라린 체험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 그 기분이 어떤지 알지만 아마 두 후배는 잘 모를 거예요.”

 포스코 같은 대규모 기업과 거래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신용은 물론 규모 면에서도 이미 충분히 시장의 검증을 받은 회사들이다. 때문에 돈을 떼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 그러나 IMF라는 상황은 멀쩡한 기업을 하루아침에 부도로 몰아갔다. 고객사의 부도 소식을 접한 강 과장도 동료들과 함께 고객사로 달려가 급한 마음에 크레인까지 동원해 판매했던 물량을 거둬들였다. 고객사 공장에서 크레인으로 물건을 묶어두고 밤을 새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에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강경희).”

 철강과 관련된 제품을 다루는 고객사와 고객사 담당자들은 대부분 남자들. 그러다 보니 다른 직종의 여직원들이라면 겪어보지 못했을 일도 많이 겪게 된다. 임 대리는 입사 초기 고객사 담당자와 술 대결도 불사했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국내 모 자동차 구매 파트에 새로 신입사원이 들어와 인사차 저녁 때 함께 만났어요. 그런데 술자리가 이상하게 ‘대결’양상으로 치달았죠. 어쩌다 보니 그쪽 신입사원과 제가 양사를 대표해서 술 대결을 하게 된 거예요. 기억나는 건 결국 그 친구가 회사 동료 등에 업혀 택시에 실려갔다는 거죠. 물론 저도 멀쩡하진 못했지만요.(웃음)”

 전문적인 일인 만큼 일반인은 알지 못할 보람도 많이 느낀다. 임 대리는 “신차 개발에 들어갈 강판을 자동차회사, 연구소, 제철소 현장 담당자와 함께 2년 넘게 머리를 맞댄 결과, 고객사가 만족해하는 차체 생산에 성공했을 때  그때의 짜릿한 기분과 성취감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제품 개발판매가 전문인 강 과장은 “수입에 의존하던 제품을 개발해 수입 대체했을 때, 철강을 쓰지 않던 시장에 신소재로 철강이 쓰이게 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여성이란 점이 일을 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느낀 적이 있냐’고 묻자 세 사람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솔직히 애로 사항을 못 느낀다”(임세정 대리), “여자로 보기보다는 같은 동료로 보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강경희 과장), “각자 전문 분야를 십분 살려 전문성 강화에 신경 쓰는 것 같다”(이세옥씨)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 과거엔 희소성 때문에 ‘여직원회’도 있었지만 요즘은 유명무실해졌단다. 여자와 남자라는 성(性)보다는 업무 능력과 전문성이 우선하는 분위기라는 것.



 남 모르는 자부심과 보람 커

 최근 6시그마 전문 교육 6개월 과정을 수료한 강 과장의 꿈은 포스코의 판매 총괄이사가 되는 것이다. 차별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으로 최고 판매 책임자에 오른다면 많은 여자 후배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보람 있고 재밌어요. 국내 자동차를 담당했다가 이번에 해외 수출 파트로 온 것도 제가 원한 거예요. 당장은 중국어라는 외국어 공부가 발등의 불이에요.(웃음) 해외 수출 경험을 쌓은 다음 다른 제품 판매도 두루 경험하고 싶어요.”(임세정 대리)

 입사 7개월째인 이세옥씨는 “내부적으로 1년이 수습기간이라 계속 배우며 깨지는 중”이지만 꿈은 야무지다. 베트남어와 중국어 전문답게 ‘중화권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는 것. 그러나 당장은 “여전히 대학생 같은 말투와 태도를 버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귀띔했다.

 업무나 능력에 관한 한 성차별이 급격히 사라지는 풍조는 남성적이고 보수적인 포스코에도 어김없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