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부(70) 광동제약 회장 하면 ‘최씨 고집’이 떠오른다. 42년간 한방 제약사 외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광동’이라는 회사명부터가 중국서 한약재로 유명한 광동성(廣東省)에서 따온 것이다. 한방 제약사 외판원 3년 만인 지난 1963년 28세 나이로 ‘광동제약사’를 차려 평생 한길을 걸어온 셈이다.

 45년 전 처음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방의 과학화’만 생각했어요. 중앙연구소(1987년)와 한방생약 전문공장(1992년)을 설립했고 1994년엔 한방병원도 세웠지요.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 전부인  제가 국민훈장목련장(1996년)까지 받은 건 영광이죠.”

그 고집 때문에 ‘아픔’도 없지 않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쇼크 직후인 1998년 4월 1차 부도를 냈던 것. 한방 특성상 남들보다 원재료 사입 부담이 커 일순간 자금회전이 막혔던 것이다. 선발 한방제약 기업 조선무약은 그때 쓰러져 아직 예전의 위용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당시 주변에서 ‘진작 업종 좀 바꿔보지’란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죠. 전 그런 말에 아예 신경 껐어요. 대신 TV에 직접 나가 호소했죠. ‘광동은 죽지 않습니다’라구요. 그때 각지서 세 차례에 걸쳐 1000억원 넘는 돈이 답지해 위기를 넘겼지요.”

 이 말을 꺼낼 때 그의 표정은 옛 무용담을 말하는 노병 같았다. 칠십 줄에 들어선 최 회장은 요즘도 원료 사입 때 본인이 직접 샘플 검사를 한다. ‘우황, 사향만큼은 직접 고른다’는 유명한 방송 카피 그대로다. 이 때문에 납품업체들 사이에선 “최 회장 면접만 통과하면 광동제약 납품은 일사천리”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그의 고집도 알고 보면 철저한 품질관리에 있는 셈이다. 인터뷰 답변서에 육필로 작성한 자료에도 ‘품질관리에 일관된 고집을 부렸다’고 적혀 있다.

그런 최 회장이 최근 ‘큰 일’을 냈다. 국내 드링크 시장의 대명사 ‘박카스’를 자사 제품 ‘비타500’이 누른 것이다.

 올해 제약업계 최대 화제로 거론되는 비타500의 박카스 추월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에 비견된다. 광동제약 창업 원년인 1963년 시장에 나온 박카스는 42년간 국내 드링크 시장을 석권해온 철옹성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광동제약이 창업 40년 만에 매출액 1000억원 고지를 넘어섰는데 비타500은 발매 4년 만에 단일 제품으로 올해 1500억원 정도 팔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히트상품이 뭔지, 참 위력이 대단하데요.”

 실제 비타500의 판매량은 파죽지세란 표현이 정확하다. 발매 첫해인 2001년 53억원에서 2002년 98억원, 2003년 280억원, 2004년 854억원으로 4년 새 16배나 덩치를 키워왔다.

 특히 올해 4월 매출이 107억원으로 처음으로 박카스(98억원)를 제친 데 이어 5~6월 잇따라 120억~150억원 매출액으로 간격을 더욱 벌리고 있는 상태. 때를 맞춰 송탄 식품공장에 분당 1100병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지난 3월엔 전체 사원 중 15%가 승진하는 대대적인 ‘자축연’도 가진 바 있다. 비타500은 지난 6월 한 달에만 6300만병이 팔려 국민 1인당 1.3병씩 마신 ‘국민음료’로 통하고 있다.

 올해 비타500 매출액 목표는 1500억원. 회사 전체 매출 목표 2580억원의 58%를 차지하는 셈이다.

 여세를 몰아 최 회장은 요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계 시장 공략이 그것이다. 연내 착공에 들어가는 중국 현지 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내년 하반기부터는 13억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게 최 회장의 계획이다.

비타500은 광동제약을 국내 제약업계 8위권에서 일약 5위권으로 올려준 효자상품이지만 최 회장은 “가장 애정이 가는 제품은 초창기 제품인 경옥고”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외아들 최성원씨(36)를 사장으로 승진, 2세 경영을 시험중인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을 지난 7월4일 서울 삼성동 광동제약 본사서 만났다.



 회장님 하면 ‘고집’이 떠오르는데요. 40여년간 회사를 경영해오면서 어떤 고집을 부리셨습니까.

 하나밖에 없어요. 불량품이 없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거죠. 제약회사는 인명을 다루는 회사 아닙니까. 약재도 직접 골라야 직성이 풀리고 제품생산 과정도 하나하나 직접 체크해야 안심하는 깐깐한 성격이죠. 워낙 샘플 검사를 까다롭게 하니까 납품업체들한테는 원성이 자자하지요.(하하) 우리는 한약재라 꼼꼼히 안 보면 품질관리에 펑크가 나는 법이에요. 회장이 직접 납품업체 샘플을 본다고 하니까 납품업체들은 긴장할 수밖에요.



 비타500이 올해 드링크 시장서 박카스를 따돌리는 돌풍을 보였습니다만.

 그건 기적과 같습니다. 박카스는 우리 회사가 창립되던 해인 1963년에 나온 제품입니다. 42년간 1등 하던 제품을 따돌렸으니…. 6월 판매량이 6300만병 정도 됩니다. 국민 1명당 1.3병씩 마셨다는 계산인데, 이쯤 되면 ‘국민음료’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박카스를 만드는)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에게는 굉장히 아픈 얘기일 텐데요.

 업계 모임 때 이따금씩 뵙지요. 선의의 경쟁자 관계라고 할까요. 특별히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강 회장 얘기가 나오자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각에선 강 회장과 최 회장의 상반된 성장과정을 비교하는 얘기가 많다. 강신호(78) 회장은 서울대 의대와 의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195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딴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 반면 최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후 고려인삼사 영업사원으로 출발, 자수성가한 사업가 출신이다. 박카스가 비타500에 밀리기는 했지만 동아제약은 지난해 매출액 5412억원으로 국내 부동의 1위 제약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타500이 히트한 이후 경쟁제품들 공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현재 비타500을 본뜬 제품이 40여종에 달합니다. 유사품은 많지만 경쟁이 안 돼요. 오히려 지난 4월에 송탄 공장 라인을 확장했지요. 이제 하루 최대 생산량이 300만병 정도 됩니다. 요즘엔 휴일(둘째, 넷째주)에도 공장을 돌릴 정도예요. 브랜드는 흉내 낼 수 있어도 맛은 카피하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과거 원비디처럼 잠시 박카스를 이겼다 다시 덜미를 잡힌 사례도 있었지 않습니까.

비타500의 주 고객은 청소년층입니다. 그만큼 롱런 가능성이 높은 셈이죠. 만약 고객 요구를 따라잡지 못해 도태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비타500의 성공 비결을 오너로서 평가한다면요.

 (이 부분에서 그의 대답이 길게 이어졌다) 첫째 맛이 좋아요. 2001년 초 시장에 나오니까 6개월도 못 돼 40여개 제품이 따라나오더군요. 그런데 브랜드는 비슷하게 만들 수 있어도 맛과 향은 똑같을 수가 없죠. 둘째는 유통을 차별화한 게 먹힌 겁니다. 기존 약국 유통에 의존해온 드링크 시장을 슈퍼와 편의점, 사우나, 골프장까지 확대한 게 주효했습니다. 우리 영업팀 조직력이 좋거든요. 셋째는 남들과 다른 마케팅 전략을 폈다는 것입니다. 무카페인 성분의 ‘마시는 비타민 C’를 강조한 거죠. 특히 가수 비를 내세워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한 결과 빠른 시간에 시장 1위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매달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요. 월 매출액 기준으로 어느 정도까지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현재 월매출 기준으로 120억~150억원 선입니다. 최소한 170억원에서 200억원까지는 갈 것으로 봅니다(과거 박카스가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던 2002년 실적은 1980억원이었다).



 주가도 많이 올랐지요.

 연초보다 두 배는 뛴 것 같습니다. 액면가 1000원짜리 주식이 현재는 4000원대로 형성돼 있죠. 더 오를지는 시장이 알아서 판단하겠죠(그는 비서를 통해 하루 한 번씩은 꼭 주가를 챙긴다).



 광동제약 실적도 계속해서 사상 최고를 경신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창업 40년 되던 지난 2002년에 매출액 1000억원을 처음 돌파한 이후 매년 최고 매출 신기록을 세웠죠. 올해 목표 매출액은 2580억원이었는데, 지금 상태로 가면 2700억원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중장기 목표에 대해선 ‘2010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한방 외길을 고집하셨는데, 이제 간판 상품이 음료로 바뀌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틀린 지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광동제약은 총 300여개의 제품을 갖고 있습니다. 크게 음료(비타500)와 일반의약품(쌍화탕, 우황청심환 등), 전문의약품(뷰라센, 아디펙스 등), 생활건강(상황녹용보, 조이칼슘골드) 등 4개 제품군이 있지요. 2004년을 기준으로 매출 구성을 보면 음료가 40%로 가장 많고 일반의약품 20%, 전문의약품 20%, 기타 10%로 돼 있습니다. 앞으로는 전문의약품, 그러니까 병원 치료제 시장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비타500에서 번 돈을 제약회사 본업 격인 신약 개발에 쓰고 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도 비타500이겠죠. 초창기 히트상품인 쌍화탕과 우황청심환 실적은 어떻습니까.

 물론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제품은 비타500이죠. 그런데 가장 정이 가는 제품은 경옥고예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고락을 함께해온 자식이나 다름없죠. 요즘도 일본에 수출하고 있어 광동제약을 일으켜준 보물 같은 존재지요(광동제약이 가장 처음 만든 약은 생지황·인삼·꿀 등을 달여 피를 맑게 하는 ‘경옥고’였다. 최 회장이 직접 경동시장에서 약재를 골라 빻고, 가마에 넣어 달여 포장까지 했다고 한다). 우황청심원은 조선무약이 원조지만 쌍화탕은 우리가 원조지요. 쌍화탕 생산업체인 서울신약을 인수했을 때인 1975년 제품값이 50원이었죠. 당시 월 30만병 팔았을까요. 인수 후 5년 뒤인 1980년엔 100원으로 가격을 올리고서도 월 1000만병을 팔았죠. 그리고 10년 뒤인 1990년엔 월 3000만병을 팔았으니 15년 만에 시장을 100배 규모로 키운 셈이죠. 가격을 올린 건 다른 회사와 달리 1등 원료만 썼기 때문이에요.



 내수는 물론 수출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황청심원 같은 경우 현재 일본 후생성에 등록된 약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황청심원에 들어가는 천연사향을 세계 동물보호기구가 나서서 못 쓰게 막고 있어요(1996년 10월 발효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희귀동식물보호조약(CITES)’ 때문이다). 예전에 사입해둔 천연사향이 현재 150kg 남아 있는데, 이 정도면 한 3년은 버틸 수 있죠. 그래서 요즘엔 천연사향 재료와 함께 이를 대체할 물질로 사향고양이에서 추출한 천연물질인 ‘영묘향’으로 우황청심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대 천연물연구소 연구결과 영묘향이 천연사향 못지않게 혈압강하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나와 문제는 없습니다. 특히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아 3월부터 미국에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 뒤, 그러니까 2010년 안엔 우황청심원을 캡슐이나 태블릿 형태로 만들어 미국은 물론 유럽 시장도 공략할 계획입니다(앞서 밝힌 매출 1조원 목표 시점도 2010년이었다). 2007년께면 국내 시장에도 선보일 수 있구요. 현재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마지막 임상실험 단계에 있습니다(그는 비타500 수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비타500은 지난해 3월 미국 수출 이후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도 팔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물량은 많지 않고 중국의 경우 대부분 보따리상을 통해 골프장에 유통되고 있는 수준이다).



 중국 공장 설립도 추진중인데요. 진행상황은 어떻습니까.

 중국 시장이 쉽지 않네요. 제조 허가 받는 데만 몇 년 걸렸습니다. 산둥성 연태에 대지 2000여평 규모로 연내에 착공될 겁니다. 빠르면 2006년 하반기부터 공장이 가동돼 중국 공략이 시작될 거고요. 비타500도 중국 사람 입맛에 맞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거든요. 일단 초기엔 조선족과 중국 동북3성 쪽에 화력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올초 외아들인 최성원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외부에선 2세경영이 본격화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서울대 졸업 후 일본 게이오대 MBA를 마치자마자 10년 넘게 각 부서를 경험했죠. 이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임원들 사이에서도 ‘경영에 소질 있다’고들 합디다. 저야 맨주먹으로 회사를 키워왔지만 최 사장은 정식 코스를 밟은 경영자니 회사를 잘 이끌어나갈 것으로 봅니다(그는 자신은 ‘정책자문역’이라고 표현했고 최 사장이 대부분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인은 자문역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광동제약 대표이사는 최 회장 자신이 맡고 있다. 요즘도 한 달에 두 번씩 송탄 공장에 들러 현장을 누빈다. 인터뷰 다음날인 7월5일에도 아침 7시 전직원 조회에 참석한다고 했다.

  그는 아침 8시에 출근, 오후 2시에 퇴근한다. 퇴근하면 인근 리츠칼튼 헬스클럽에 들러 1시간쯤 속보로 몸을 푼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골프. 일주일에 주중, 주말 두 번 정도씩 친다. 대외 활동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두 자녀가 나왔고 본인도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서울대 기성회 부회장 타이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