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포츠용품 2위 아디다스는 왜 3위 리복을 인수해야 했을까. 세계 PC업계 3위 IBM은 왜 PC사업을 포기했을까. 정답은 그들이 1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3등만 해도 먹고 산다는 ‘빅3의 법칙’이 무너졌다. 그 자리를 ‘승자독식의 법칙’이 대체하고 있다. IBM PC사업 철수가 ‘3위 퇴출’의 서막을 알렸다면 1위 나이키에 대항하기 위해 3조8000억원이란 거금을 써야 했던 아디다스는 2인자의 처량한 신세를 대변한다. 먼 나라 얘기일까. 내수시장은 더하다. 1개사 싹쓸이시장이 늘고 있고,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난 업체 간 ‘2위 싸움’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3위는 아예 ‘퇴출’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1등주의’를 외치는 진짜 이유다. 그렇다면 왜 1위가 시장 파이를 독식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두드러지는 걸까. 1위 싸움에서 밀려난 2, 3위 업체들의 생존법은 없는 걸까. 승자독식시대가 몰고 온 패러다임 변화를 다섯 가지 법칙으로 파악해 본다.
 국 최고의 홈런타자 이승엽. 그는 2003년 홈런 56개를 쳐서 일본 오사다하루(왕정치)가 기록했던 55홈런을 39년 만에 갈아치웠다. 홈런부문 아시아 1위에 오른 이승엽은 곧바로 연봉 20억원 대박을 터뜨리며 일본무대로 날아갔다.

 반면 2인자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2003년 홈런 53개를 친 2위 심정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2002년 이승엽이 47개를 쳤을 때도 심정수는 간발의 차로 46개를 쳤다. 올해 연봉 7억5000만원으로 그는 국내 연봉킹에 올라 있지만, 이승엽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실력(홈런수)은 2% 부족했지만 대접(수입)은 천양지차다. 2인자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셈이다.



 살찌는 1등에 왜소해지는 2, 3등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1위 싹쓸이’ 현상은 그대로 재현된다. 맥주 1위사 하이트가 소주 1위 진로를 삼키며 국내 주류업계 천하통일을 달성했고, 할인점 이마트는 2위인 홈플러스와 더블스코어 차이로 독주하고 있다. 농심은 국내 라면시장에서 2000년 65%였던 점유율을 현재 73%까지 높여 지배력을 강화했다.

 휴대폰의 삼성전자, 이동통신의 SK텔레콤, 자동차의 현대기아차, 초고속인터넷의 KT 등은 2위 추격권을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다. 한마디로 그룹 아바가 부른 노래 ‘Winner takes it all’처럼 승자독식이 한국 산업계를 지배하는 법칙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전문가들은 “과거 수확체감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수확체증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생산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늘어 수확(이익)이 줄어든다는 현 주류경제학 체계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론. 1등 업체로서도 생산을 늘려 손해를 감수하기보다는  2, 3위 경쟁자를 키워 ‘삼각구도’로 가는 게 더 유리했다는 분석이다.

 그런 시장구도가 최근엔 정반대로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전환됐다는 얘기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는 “IT 혁명으로 촉발된 신경제(New Economy)가 몰고온 현상”이라며, “중요한 점은 IT발 수확체증 논리가 산업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수확체증의 법칙이란 생산규모가 커질수록 수확도 더욱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에 따라 1위의 시장 지배력이 점차 커지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쉽게 살펴보자. 게임소프트웨어 등 IT 업계를 사례로 들어보면 초기 연구개발비는 엄청 많이 든다. 그러나 생산은 단순복제 체제다. 따라서 더 많이 만들어 낼수록 이익도 커진다. 한 카피를 만드는 데 드는 평균비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한다면 산업계 헤게모니는 어떻게 바뀔까. 이는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 과거 수확체감의 법칙 아래에서는 2,3위가 나름대로 파이를 키우며 공존이 가능했지만, 수확체증의 법칙 아래에선 2등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논리다. 한마디로 ‘살찌는 1등에 왜소해지는 2, 3등’이 승자독식시대의 순위 모델이다.

 실제 PC의 CPU시장에서 인텔이 독점하고 운영체제(OS) 시장을 MS가 독점하는 현상이 대표적 사례다. 김주형 상무는 “CPU시장에서 2등을 다투던 AMD와 사이릭스 중 사이릭스는 망했다. OS에서도 리눅스 외엔 윈도를 대체할 OS들은 전멸한 상태”라며, “수확체증의 법칙에 따라 1위 독식현상은 더 굳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승자독식현상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걸까. 단순히 독이냐 약이냐 식 이분법적 사고로 파악하긴 힘들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한 업종의 승자는 ‘저비용 고효율’이란 최대 경제효과를 거둬 경쟁력이 더 커지게 된다”며 “이에 따른 여윳돈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국가 경제에도 플러스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반도체와 LCD 분야를 꼽고 있다. 반면 소비자 입장에선 사실상의 독점화에 따른 가격인상 우려 등 해악도 예상된다.

 그러나 1위 업체들은 이를 강력 부인한다. 이재호 하이트맥주 상무는 “최근 인수한 진로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통제를 받아 ‘물가상승 범위 내’에서만 가격 결정권이 주어져 소비자 피해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말하자면 소비자 피해 우려는 심판 역할을 하는 정부의 ‘콘트롤 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문제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평가와 무관하게 실제 최근 내수시장에선 ‘1위 싹쓸이 현상’, ‘2위 경쟁격화 현상’, ‘넘버3의 퇴출(추락) 현상’이 고스란히 감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승자에서 밀려난 2, 3위의 생존법은 없을까.

 <하이테크마케팅> 저자인 김상훈 서울대 교수는 이른바 ‘볼링앨리’(Bowling Alley) 이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볼링을 할 때 10개 핀 중 1개만 잘 맞춰도 스트라이크를 칠 수 있다”면서 “하나의 틈새시장에 전략을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른바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는 ‘블루오션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승자독식시대가 몰고온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국내 산업계 현장으로 들어가 살펴보자.



 1개사 싹쓸이 시장 늘어나

 승자독식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일명 ‘싹쓸이의 법칙’이다. 1위 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1위의 라이벌이자 확실한 ‘넘버투’가 점차 설 자리를 잃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라면과 주류, 백화점 시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 라면시장은 그야말로 농심의 독무대다. 특히 농심의 시장 지배력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실제 농심이 자체 분석한 2000년 라면시장 점유율은 65.7%였다. 하지만 점차 세가 커져 2001년 67.7%, 2002년 69.9%, 2003년 72.9%에 이어 지난해엔 73.5%까지 이르렀다. 

 반면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경쟁사 3사의 점유율은 모두 뒷걸음질했다. 2001년 11.1%였던 삼양식품은 지난해 10.6%로, 오뚜기는 11.1%에서 9.3%로, 한국야쿠르트는 6.8%에서 6.6%로 모두 떨어진 것. 농심의 효자상품 ‘신라면’의 점유율은 19개 제품군을 갖춘 업계 2위 삼양식품의 10.6%의 두배에 달할 정도다. 황찬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초 농심 점유율이 소폭 떨어지긴 했지만 점유율 70% 이하로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한다. 한마디로 1위의 경쟁상대가 사실상 전무한 ‘1强(강) 多弱(다약) 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백화점 시장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백화점 1위인 롯데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 30.2%에서 올해 상반기 현재 38.6%까지 확대됐다. 5년간 단 한 번도 점유율 하락 없이 수직상승한 게 특징. 반면 2, 3위권인 현대와 신세계는 완만한 상승 혹은 엎치락뒤치락의 연속이었다. 

 돌려 말하면 극심한 내수불황에 따른 타격은 1위보다 2, 3위 업체에 집중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2001년 점유율 11.1%였던 신세계는 2002년 10.5%, 2003년 9.9%로 하락했다가 올 들어 11.3%로 회복한 상태다. 2위 현대백화점 점유율(19.2%)도 1위 롯데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이다.

 갤러리아까지 포함한 백화점 빅4의 점유율은 2001년 63.6%에서 올해 73.8%로 끌어올려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빅4의 점유율 상승분 10.2% 중 1위사인 롯데가 8.4%를 차지, 상승분의 82%를 1위 롯데가 독차지했다는 점이다.

 주류업계 하이트맥주는 ‘1위 싹쓸이 법칙’의 대명사로 불린다. 맥주 1위사로서 소주 1위 진로까지 인수, 국내 주류업계의 골리앗으로 떠올랐기 때문. 일단 맥주만 놓고 봐도 하이트는 경쟁자 OB와 간격이 갈수록 벌려 놓고 있다.

 1996년 점유율 43%로, 41.7%에 머문 OB를 따돌리고 시장 1위로 올라선 하이트는 OB의 카스 인수(2001년)에도 OB와의 점유율 게임에서 압승을 거두고 있다. 2001년 당시 ‘53대 47’ 구도를 올해 8월 말 현재 ‘58대 42’ 구도로 격차를 키워 놓았다. 특히 소주 시장 55%를 차지한 진로마저 인수, 향후 하이트는 주류업계 지배력을 확대할 공산이 크다.

 연간 4조원대 규모인 국내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도 1위 KT는 쾌속항진 중이다. 2002년 가입자 491만명(47.3%)에서 올해 6월 말 617만명까지 늘리며 점유율을 50.3%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2위 하나로텔레콤은 같은 기간 가입자 수가 287만명에서 278만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점유율도 27.6%에서 22.7%로 떨어져 버렸다. 3위 사업자 두루넷 역시 KT의 독주 속에 점유율이 12.52%에서 10.39%로 뒷걸음질쳤다. 결국 하나로가 두루넷을 인수해 KT에 맞서는 대결구도로 전환했지만, 1위 탈환이 쉽지 않아 보인다.

 박진 우리증권 애널리스트는 “승자독식이라는 ‘포커게임’에서 가장 크게 망하는 사람은 꼴찌가 아니라 2등”이라고 말한다.



 점점 격화되는 ‘2위 싸움’

 요즘엔 ‘2위 싸움’이 더 요란하다. 1위를 내준 업체들 간에 벌이는 패자부활전은 곧 생존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영화 <넘버3>를 보면 주인공 태주(한석규 분)와 재떨이(박상면 분)가 넘버 2 자리를 놓고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2위와 3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를 써도 주거래 카드 한 장에, 비상용 카드 한 장이 전부다. 과거처럼 3~5개씩 돌려쓰는 소비자는 대폭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양자택일의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2위 안에는 들어야 소비자 낙점을 받기 쉽다는 분석이다. 백풍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의 양자택일식 의사결정이 결국 기업의 순위를 결정한다”며, “결국 산업계가 빅3보다는 빅2 체제로 변모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위 싸움의 최대 격전장은 국내 손해보험 시장이 꼽힌다. 현대해상화재, LG화재, 동부화재 등 삼성화재와의 1위 경쟁에서 탈락한 3사가 벌이는 ‘2위 싸움’이 그것이다. 박주천 LG화재 본부장은 “요즘 손보업계 랭킹전은 자고 나면 뒤바뀔 정도”라고 말한다.

 점유율 1~2% 차이에 불과한 이들 3사는 실제 매출액과 순익 면에서 서로 순위가 뒤집히는 혼전 양상을 띤다. 올해 4~5월 실적을 보면 매출액에선 LG화재가 2위, 순익 면에선 동부화재가 2위를 달리고 있다. LG화재는 4~5월 매출액(원수보험료)에서 5698억원으로 현대해상의 5627억원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잣대를 순익과 영업이익으로 돌리면 2위는 동부화재 몫이다. 동부화재는 순익 212억원과 영업이익(보험영업익+투자영업익) 377억원으로 3위인 LG화재의 177억원과 339억원을 따돌린 상태다.

 국내 휴대폰시장에서도 ‘서로가 2위’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LG전자와 팬택의 맞대결 무대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으로 굳어진 국내 휴대폰시장의 삼각구도를 깬 건 팬택. 지난 5월 초 SK텔레텍 인수를 발표하며 실제 LG전자의 2위 자리를 탈환한 것이다.

 현재까지 판세는 삼성전자 45%, 점유율 15% 수준에서 4위 SK텔레텍(10% 안팎)을 인수한 팬택이 25%, LG전자 20% 구도로 형성돼 있다. 한번 잡은 기회를 100% 살리려는 팬택과 2위 재탈환을 노리는 LG전자 간 ‘2위 싸움’의 격화는 불문가지다.

 국내 할인점시장도 2위 다툼의 격전지 중 하나다. 1위 이마트의 독주 속에 외국계를 대표하는 홈플러스와 국내 유통의 자존심 롯데마트가 맞붙고 있다. 결과는 2002년 첫 역전에 성공한 홈플러스가 올해 6월 말 현재 15%로, 12%에 머문 롯데마트를 앞서고 있는 양상. 그러나 3위로 밀릴 땐 끝장이라고 판단한 롯데가 배수진을 치고 덤벼들고 있으며, 홈플러스도 아직 ‘2위 안정권’에 들었다고 보기엔 섣부른 시점이라 향후 1~2년 내 쟁탈전은 그야말로 양사를 천국과 지옥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 노영기 중앙대 교수는 “승자독식시대 2위 싸움은 생사 갈림길에 맞붙은 ‘최후의 결투’ 성격이 짙다”면서, “1위 탈락자들의 패자부활전이란 점에서 선두다툼보다 더 치열할 전망”이라고 말한다.



 넘버 3가 죽어간다

 올해 초 세계 PC업계 3위 IBM의 사업철수는 시장에 큰 충격을 던져 줬다. 그동안 세계 PC사업을 주물러 왔던 IBM이 넘버 3로 전락하면서 ‘3위=시장 퇴출’의 방정식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IBM이 끝내 사업철수 결정을 내린 속사정이 뭘까.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세계 PC시장은 ‘2강 다약 체제’로 분석되는데, 올해 2분기 기준으로 델(19.3%)과 HP(15.6%)가 1, 2위 업체다. 반면 왕년의 강자 IBM은 5.8%(2003년 말 기준)까지 점유율이 밀렸다. 한마디로 1위 경쟁에서 탈락한 셈이고, 이 점이 사업 포기의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IBM으로선 ‘힘 없는 3위’로 돈을 까먹느니 차라리 사업에서 깨끗이 손을 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실제 넘버 3 퇴출의 공식은 지난 2003년 빙그레가 라면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적용되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모든 3위가 퇴출되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러나 전 산업계를 보면 3위 퇴출까진 아니어도 최소 ‘3위 추락현상’은 이미 보편적인 추세이다.

 ‘1强(강) 1中(중) 多弱(다약)’ 구도를 보이는 화장품 내수시장을 보자. 승자독식에 따라 1위 태평양의 시장 지배력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태평양이 자체 분석한 점유율 현황을 보면, 1위 태평양은 2002년 27.5%에서 지난해 32.3%로 점유율 확대 추세다. 2위 LG생활건강의 시장점유율(8.10%)의 4배 수준이다. 반면 2위 경쟁에서 밀려난 코리아나, 한불화장품, 한국화장품 등 3위권 업체들의 점유율은 갈수록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화장품의 경우 2002년 1376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지난해엔 688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고, 18억원 흑자였던 게 98억원 적자로 돌아섰을 정도다.

 이들 3사는 현재 점유율 2~3%대까지 밀려난 데다가 지난해엔 로레알(4.10%)과 에스티로더(4.40%) 등 외국계 업체들에게 이미 3위 자리도 반납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 퇴출은 아니어도 시장 영향력을 거의 상실해 가고 있는 셈이다.

 초고속인터넷시장을 봐도 비슷하다. 만년 3위였던 두루넷은 점유율 면에서 매년 뒷걸음질을 치다 결국 2위업체인 하나로통신에 인수되는 비운을 맛봤다. 4~5위권인 온세통신과 데이콤은 올해 상반기 현재 점유율 3.04%와 2.12%로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다.

 국내 자동차시장의 3위사 GM대우는 올 들어 3위 자리마저 위협받는 지경이다. 1위인 현대자동차가 올해 시장점유율을 48.9%까지 끌어올리는 동안 2위 기아차는 제자리걸음, 3위 GM대우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양상이다. 5년 전인 2000년 16.9%에서 지난해 최악으로 8.8%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상반기 현재 10.7%로 상승, 한숨은 돌린 듯하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르노삼성이 10.5%로 턱밑까지 추격, GM대우는 거친 숨을 내쉬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백풍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후보선수처럼 넘버 3는 늘 1, 2위 간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봐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M&A는 순위 역전의 단골메뉴

 승자독식현상에 따라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2, 3위 업체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기존 게임의 룰을 파괴하라”고 조언한다. 기존 게임의 법칙 아래에선 1위의 공고한 벽을 뚫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신분상승’의 길은 M&A(인수합병)를 통한 ‘세 불리기’다. 최근 세계 스포츠용품 2위 아디다스가 1위 나이키를 따라잡기 위한 대항 전략으로 선택한 게 바로 M&A다.

 타깃은 3위 업체 리복이었다. 점유율 14%를 보유한 아디다스는 리복(12%) 인수를 통해 일약 26% 점유율로 나이키(33%)의 아성에 도전할 체력을 마련했다. 물론 인수비용으로 3조8000억원이란 거액을 써야 했다. 이 돈은 말하자면 나이키와의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기 위한 도전자의 ‘티켓값’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2위 아디다스가 3위 리복과의 경쟁에 지쳐 1위 나이키와 싸워 보지도 못하고 힘을 잃는 것에 비하면 3조8000억원이란 인수비용은 결코 과다비용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2위 업체 아디다스로선 1등 공략과 3등 추격을 피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으로 M&A를 선택한 것이다.

세계 타이어시장에서 한때 3위로 추락했던 굿이어가 5위 업체인 스미토모의 지분인수를 통해 단번에 브릿지스톤, 미쉐린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도 M&A를 통한 선두다툼에 가세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최근 국내 휴대폰시장에서 만년 3위였던 팬택이 SK텔레텍 인수를 통해 LG전자를 제치고 일약 2위로 올라선 것이나, 초고속인터넷시장의 2인자 하나로통신이 두루넷을 인수한 것도 선두 도전의 활로를 M&A에서 찾았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박진 애널리스트는 “국내 할인점시장에서도 홈플러스겥鍍Ⅸ뗬?간 2위 싸움에서 밀려난 업체와 이미 4~5위권으로 밀려난 까르푸, 월마트에 대한 M&A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횡행하고 있다”며,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하는 신(新)경제 특성상 업체 간 M&A는 순위 역전의 단골메뉴로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M&A가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후발업체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자칫 돈만 쓰고 효과도 없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맥주시장에서 카스를 인수한 OB맥주가 그렇다. 2001년 카스인수 후 OB는 점유율 47%로 하이트(53%)에 근접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이후 점유율 격차는 조금씩 벌어져 현재 57(하이트)대 43(OB+카스)으로 오히려 뒷걸음질친 상태다. OB맥주 점유율만 놓고 본다면, 인수원년인 2001년 31%에서 올해 8월 말엔 16%로 4년 새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2, 3위가 연합전선을 폈지만 1위를 따라잡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M&A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중소업체이거나 여유자금이 없는 기업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어떤 게 있을까.



 틈새 뚫은 ‘새 강자’ 출현 늘어날 듯

 지난해 세계 테니스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올해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러시아 샤라포바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샤라포바를 신데렐라로 부른다.

 이 같은 신데렐라들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가령 화장품업계서 유통단계를 축소해 가격거품을 뺀 ‘미샤’의 돌풍이나, 올해 ‘마시는 비타민’ 비타500으로 국내 드링크 1위인 동아제약 박카스를 누른 광동제약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시장 1, 2위가 온통 전력이 노출된 경쟁상대에만 신경 쓰고 있을 때 전혀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미샤가 1, 2위 업체가 외면해 온 저가화장품에 초점을 맞췄다면, 비타500은 레모나로 대별되는 과립형 비타민을 마시는 드링크로 전선을 바꿔 놓은 역발상 전략이 적중했다.

 올해 세계 여자골프의 4대 메이저대회 중 US오픈을 우승한 김주연과 브리티시오픈을 우승한 장정은 1인자 소렌스 탐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경우의 수라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샤는 화장품시장에서 업계 3위권에 올라와 있고, 광동제약은 비타500 한 방으로 올해 드링크시장 1위 등극이 확실시된다”고 입을 모은다. 

 얼마 전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넘버 3가 사라진다’ 보고서는 이들 신데렐라의 공통점을 ‘게임룰 파괴자’(Game Rule Breaker)로 명명하고 있다.

현대홈쇼핑도 게임룰 파괴자로서 넘버 3에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GS홈쇼핑과 CJ홈쇼핑 등 ‘빅 2’가 건재한 국내 TV홈쇼핑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현대홈쇼핑은 승자독식시대 1위에 먹히는 ‘희생양’ 신세를 벗어났다. 실제 2002년 10% 점유율에서 올해엔 17%로 GS홈쇼핑(27%)과 CJ홈쇼핑(25%)에 맞먹을 정도가 됐다. 약진 비결은 1, 2위와 다른 무기를 들고 게임에 나섰다는 점이다.

 기존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던 ‘이민상품 판매’가 단적인 사례다. 이와 함께 저가브랜드 판매의 대명사였던 TV홈쇼핑에서 유명브랜드를 취급, 고급 이미지를 창출해 부자손님을 끈 것도 3위 업체 현대홈쇼핑이 약진한 배경이었다.  

 김상훈 서울대 교수는 “후발업체일수록 선두업체가 간과한 틈새시장에 전력을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정면대결보다는 빈틈공략이 효과적 방법이라는 얘기다.

 ‘강자를 만나면 일단 도망치고 보라’는 ‘36계’는 병법의 한 전략이다. 마케팅이론에서도 후발주자의 생존법을 ‘치고 빠지기 식’의 게릴라마케팅에서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실력이다. 틈새를 뚫으려고 해도 강력한 신무기가 없다면 선두진입은 백일몽에 불과하다. 여기서 W이론으로 유명한 이면우 서울대 교수의 일명 ‘구공탄이론’을 참조할 만하다. “구공탄 집은 구공탄 집일 뿐 도시가스와 경쟁해선 절대 이길 수 없다.”

 얼음가게가 냉장고를 이길 수 없고 LP가 CD를 당해 낼 수 없듯, 단순한 생산성 향상이나 비용절감 차원이 아닌 기술파괴와 발상전환이 승자독식시대 2, 3위의 생존방정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