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컴퓨터(PC) 가격이 하루가 멀다하고 떨어지고 있다. 데스크톱 PC는 100만원 아래로 추락한 지 오래고, 최근에는 고가의 노트북 컴퓨터마저 100만원 미만의 제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40만원 미만 데스크톱PC도 출시됐다.
소비자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컴퓨터 업체들이 수익성 악화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Dell)의 한국지사인 델 인터내셔날(이하 한국델)이 최근 내놓은 데스크톱PC 가격은 39만9000원. 이 제품은 인텔 셀러론 2.8Ghz D프로세서에 256MB 메모리, 40GB 하드디스크, CD롬 드라이브가 장착돼 온라인게임을 즐길 정도는 아니지만 사무용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모니터를 제외한 가격이지만 그래도 브랜드 업체가 용산조립 제품 수준의 가격으로 내놓은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웬만한 휴대폰이나 MP3P보다 싼 셈이다.

 한국델의 저가정책은 그 동안 고가정책의 프리미엄 브랜드 마케팅을 펼쳐온 삼성전자와 LG전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매직스테이션 MV40’을 본체 기준으로 93만5000원에 내놨으며 LG전자도 78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이들 저가형 제품은 통상적인 인터넷환경과 문서 등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작동하는 데는 손색이 없어 인기를 모으고 있다.

 PC업체의 경쟁력이 기술력에서 가격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이들 대기업도 생산기지를 옮기는 등 제조원가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전자는 2003년부터 비용 절감에 나서 데스크톱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국내 중소업체에 생산을 맡겼다. 노트북 컴퓨터 생산 공장은 지난 3월 중국 이전을 마무리했다. LG전자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판매 비중을 줄이고 대신 수익성이 높은 노트북 컴퓨터 판매에 주력해 2002년 20%였던 노트북 컴퓨터 비중이 2004년 40%까지 높아졌다.

 PC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PC산업이 이제는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라기보다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이 ‘세계 PC의 생산기지’로 떠오르면서 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PC 기술의 상징인 IBM이 중국기업에 PC사업을 매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데스크톱 PC는 단순조립 수준이다.

 PC 가격 하락은 무조건 팔고 보자는 식의 노마진 세일에서도 기인하며, PC 시장을 활성화할 만한 이슈가 없다는 것도 주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펜티엄3에서 펜티엄4로의 업그레이드가 PC 시장을 견인했다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PC를 교체하는 수요 요인이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극심한 IT 경기 침체와 전 세계적인 PC 수요 냉각으로 허덕였던 국내 PC 산업이 올해에도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이것이 가격하락을 또 부추기고 있다.



 노트북 PC까지 가격하락 확산

 가격파괴 현상이 데스크톱PC에 이어 노트북 컴퓨터로 확산되면서 PC 업체들의 수익성은 더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노트북 분야의 가격하락세도 뚜렷하다. 한국델의 셀러론M 프로세서를 장착한 신제품 D510은 80만9000원(부가세 별도)의 초저가 비즈니스 노트북이다. 셀러론M 프로세서 350에 14.1인치 모니터, DDR2 메모리, CD롬과 함께 256MB, 40GB HDD를 갖췄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셀러론M 프로세서를 장착한 노트북은 인터넷전문 쇼핑몰에서 90만원대에 살 수 있다.

 최근에는 노트북 PC의 저가 바람이 고급기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대개 150만원 이상으로 형성됐던 노트북의 가격대가 100만원대로 하락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100만원대에 최신 ‘소노마(인텔의 차세대 센트리노 무선플랫폼) 노트북’까지 가세하며 갈수록 가열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국델이 70만원대 노트북을 출시하며 가격파괴에 앞장섰다. 한국델은 ‘소노마’를 탑재한 14.1인치 노트북 ‘래티튜드 D510’을 99만9000원(부가세 별도)에 선보였다. 부가세를 포함한다 해도 108만원대.

 펜티엄M 프로세서(CPU)에 메모리 256MB, 하드디스크 용량 30GB 등의 사양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가격대다. 한국델은 이미 지난해 말 99만원대(부가세 제외) 노트북을 처음 국내 시장에 선보여 가격 파괴의 물꼬를 텄다.

 업계에서는 한국델이 통상 180만∼300만원대의 하이엔드급 ‘소노마 노트북’ 시장에서까지 불과 100만원대의 초저가 제품으로 승부하는 것은 파격적이라는 반응이다. 한국델이 데스크톱 PC에서 노트북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저가 공세를 퍼붓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고가 위주의 전략을 펼쳐온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의 명품 브랜드도 저가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현재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는 300만원 이상의 고가형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LG전자의 가장 싼 노트북인 ‘엑스노트(LS40-AX4UC)’는 139만원선. 하지만 130만~150만원대의 삼성·LG전자 제품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12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최신 센스 노트북 ‘SX’ 시리즈 가운데 한 모델(SX05-C165)은 127만원이다.

 용산 대리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이보다 더 싼 PC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데스크톱PC는 30만원대를 쉽게 볼 수 있다. 150만원 안팎의 삼성전자 소노마 노트북도 전자상가에서는 120만원대까지 가격이 떨어진 상태다. 이렇게 PC가격 하락이 가능한 것은 부품의 표준화로 부품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인터넷을 통해 가격이 완전 공개됐기 때문이다.

용산 전자랜드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데스크톱PC는 부품을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30만원대 초반 가격까지 가능하다”며 “요즘엔 노트북을 구입할 때 성능 대비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IBM PC사업을 인수한 중국의 레노버가 올 하반기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저가 제품을 쏟아내게 되면 이러한 가격 경쟁은 훨씬 더 가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새로운 수요는 창출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수요도 많지 않아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매년 10%씩 떨어지며 초저가 PC 나올 것

 컴퓨터에서 모니터를 제외한 본체의 가격은 1990년대 말까지도 100만원을 넘었다. 하지만 2000년부터 PC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해 2003년 70만~80만원대를 거쳐 최근에는 40만원 아래까지 떨어졌다.

 그럼 PC 가격 하락의 끝은 어디인가. 구체적인 가격대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1년에 많게는 10%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대세라고 표현한다.

 1990년대 말 PC 가격 파괴를 일으킨 장본인은 90만원대의 인터넷 PC였다. 1999년 10월21일 정부는 ‘사이버 코리아 21’ 사업의 일환으로 인터넷 PC를 도입했다. 인터넷 PC는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저가PC 동향으로 인해 국내 시장은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고가형 PC와 중소업체의 저가형 PC로 이원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그래도 시장수요가 많아 가격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가장 저렴한 한국 델의 컴퓨터 가격도 삼성전자보다 높았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2003년부터 시장이 위축되면서 공급과잉으로 PC가격은 70만~8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던 중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지난해부터. 델이 40만원대 PC를 내놓고 가격하락에 불을 지폈다. 노트북 시장에서는 삼보가 지난해 말부터 99만9000원짜리 ‘에버라텍’ 노트북 PC를 전격 출시하면서 가격 경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불과 5년 새 PC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초저가 노트북 PC가 나올 가능성도 보인다. ‘디지털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미국 MIT대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올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 포럼)에서 100달러짜리 노트북 컴퓨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리 귀를 솔깃하게 하는 제안이다.

 14인치 LCD 화면, AMD의 CPU, 운영체제(OS)는 공짜 소프트웨어인 리눅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성능은 다소 떨어진다. 사양으로 따지면 3~4년 전 노트북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인터넷 이용이나 워드 작업에 별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50만~70만원대의 초저가 노트북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주연테크가 그 동안 데스크톱 단일 품종에서 벗어나 노트북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시몬 주연테크 사장은 “레노버 등의 저가격 공세가 계속되면 중소업체로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따라서 커지고 있는 노트북 시장으로의 사업전환을 검토하고 있다”며 “가격은 초저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PC의 가격하락은 현재진행형이다. 보급형 제품 가격을 계속 인하하고 있으며, 저가의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는 추세다. 이는 최근 PC성능이 일반인의 사용수준을 훨씬 뛰어넘으면서 성능 지상주의로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수준의 PC가 가격경쟁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PC업계 전문가들은 PC 가격이 매년 3~10% 정도씩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부품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제조업체의 비용절감 노력도 이어지고 있어 가격 하락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격 하락이 계속되면 PC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는다. 가격이 하락할수록 업체들의 수익은 악화되기 마련이다.

 업계에서는 100만원짜리 데스크톱 1대를 팔면 마진이 겨우 1000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그나마 노트북 1대는 10만원 가량이 남는다. 데스크톱에 비하면 굉장한 차이다. 하지만 최근 노트북마저 가격파괴가 진행되고 있어 마진율이 뚝 떨어졌다는 것. 데스크톱의 경우 마진을 남기기 어려운 데다 노트북 역시 가격경쟁에 불이 붙어 수익이 악화되기는 마찬가지다.

 가격경쟁으로 인한 수익악화는 삼보컴퓨터가 실제 사례가 될 수 있다. 삼보컴퓨터의 지난 1분기 노트북 PC(에버라텍) 판매량은 총 4만4000대로, 이 회사가 지난해 판매한 노트북 PC 총판매량(4만6000대)과 맞먹는다.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5위에서 2위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떨어진 마진율로 인해 결국 수익이 악화돼 법정관리까지 이르게 됐다.

 한 중소업체 영업 담당 이사는 “컴퓨터 값이 이미 원가수준으로 하락했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업체들이 값을 내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텔레비전 홈쇼핑의 경우 마진이 거의 없고, 일반대리점에서 파는 제품도 적정 마진을 챙기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Plus tip 델의 저가전략



 유통 채널 거치지 않은 다이렉트 모델로 비용 줄여



 
델이 저가정책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다이렉트 모델’이라 불리는 독특한 사업모델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이렉트 모델’을 기반으로 성장한 델은 4년 연속 세계 PC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를 고수하고 있다.

 다이렉트 모델은 직접 판매방식과 주문생산방식을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조업체가 유통채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PC를 팔고, 또 소비자들로부터 직접 주문을 받아 소비자 맞춤 형태로 PC를 제작, 공급한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LG전자·HP 등은 전통적으로 판매 및 유통을 위해 도매상이나 소매상 등의 외부 유통채널을 이용하는 간접판매방식을 사용해 왔다. 간접판매방식은 유통기간이 길어 항상 재고가 상존한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수요예측이 틀리거나 시장선호도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 재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델은 재고가 없기 때문에 최신의 기술을 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고, 부품 가격 하락 시, 그 즉시 원가반영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다른 기업들도 델의 다이렉트 모델을 활용해 이를 비즈니스에 도입하고 있지만 델만한 성공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이는 델이 단순히 중간 유통망을 없애 비용을 절감한 것이 아니라 공급망(Supply Chain Management)을 통해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고객의 맞춤형 주문에서부터 생산 공정, 공급망 관리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사업운영 모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 동향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진군 한국델 지사장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업체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중간 유통 단계 없는 다이렉트 모델을 통해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들은 필요 없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진출한 중국 기업 레노버

 국내 PC시장 저가 경쟁 불 지펴



 지난해 PC 산업의 원조 격인 IBM이 중국 레노버에 PC사업 부문을 매각한 것은, PC 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가격이라는 점을 입증한 일대 사건이었다. 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 역시 컴팩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시도했으나 수익이 더 나빠져 결국 물러났다. 레노버가 저가 가격을 바탕으로 국내 PC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업체들이 떨고 있다. ‘중국의 삼성’으로 불리는 레노버는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



 제 국내 PC 업체의 경계 대상 1호는 중국 최대의 PC메이커인 레노버다. 거대 공룡 IBM의 PC사업부문을 인수, 세계 3대 메이커가 된 레노버가 올해 안에 중국산 제품을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국레노버의 등장은 최근 PC 가격 내리기 경쟁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PC 가격의 마지노선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상황에서 레노버가 저가 제품을 내놓으면 국내 기업도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국내 업체들은 레노버가 펼칠 저가 공세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현주컴퓨터와 삼보컴퓨터 대리점들이 레노버의 대리점이 되기 위해 돈을 쌓아 놓고 기다린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레노버와의 저가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하면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도 않은 레노버의 잠재력에 공포감마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저가 공세 예상

 국내 PC업계가 2005년 한 해 ‘출혈 경쟁’ 바람이 불 것으로 입을 모으는 것은 레노버가 저가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된 다. 국내 PC시장은 이미 성숙기를 지나 포화기에 접어들었다. 경쟁은 치열해지는 반면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하기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이렇게 시장이 침체기를 맞고 있을 때는 가격 경쟁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그래서 국내업체들뿐 아니라 델, HP 같은 외국계 기업도 가장 큰 변수로 중국 레노버의 행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 동안 최고급 브랜드만 고집해 온 IBM ‘씽크’ 시리즈가 레노버에 인수된 이후 가격 경쟁력까지 갖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품질에 저가격이라는 날개를 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경쟁적 우위를 갖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중국산 레노버 제품이 들어올 경우 가격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이른바 중국산 레노버 제품이 언제, 어느 정도 ‘싼’ 가격으로 국내에 상륙하느냐다. 이 시점이 곧 대규모 가격 공세가 시작되는 때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레노버그룹은 지난 5월2일 IBM PC사업부문 인수 절차가 끝남에 따라 한국법인인 한국레노버를 출범시켰다. 레노버는 기존 IBM의 ‘씽크’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자체 브랜드인 ‘레노버’ 제품군을 올 하반기 한국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레노버의 본격적인 공략은 7월말부터 시작된다. 레노버는 IBM PC 사업부 인수 후 첫 신제품으로 태블릿 PC인 ‘씽크패드 X41 태블릿’ (ThinkPad X41 Tablet)을 지난 6월13일 미국에서 출시하고, 7월말 국내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전통의 IBM 기술과 혁신의 레노버 기술이 결합된 이 첫 제품이 차세대 PC로 주목받고 있는 태블릿 PC 시장을 주도해 갈 혁신적 제품이라고 레노버측은 밝히고 있다. 중국산 레노버 제품은 올해 안에 국내에 출시돼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IBM 기술력에 값싼 날개 달아

 레노버는 세계 최대 PC업체인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하며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IBM의 PC사업부 인수 전까지 레노버는 중국에서 8년 연속 PC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덩치보다 4배나 큰 IBM의  PC사업부문을 인수한 중국 레노버는 세계 9위에서 델·HP에 이어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다.

레노버의 발전은 놀라운 것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IBM, HP 등 외국계 기업의 컴퓨터를 조립하던 영세업체가 글로벌 기업에 이른 것. 그래서 ‘중국의 삼성’으로 불린다.

 이러한 레노버가 IBM 인수로 연간 1400만대의 PC를 생산해 1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PC 메이커로 도약한 것이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중국 베이징과 노스캐롤라이나에 운영본부를 두고 있다. 20년 전 전 직원이 10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게 됐다.

 또 중국 베이징, 센첸, 샤먼, 청뚜, 상하이, 일본 도쿄, 노스캐롤라이나에 연구개발센터가 있다. 중국에는 개인소비자 시장 공략을 위해 약 4400개의 소매점을 포함한 포괄적인 PC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레노버는 IBM의 기술력과 생산거점으로서의 중국이라는 이점을 충분히 이용해 고품질의 경쟁력 있는 제품 공급에 차별화를 둘 계획이다. IBM 브랜드와 제품 로드맵이 내년 말까지는 지속되는 만큼 단기적으로 IBM의 명품브랜드로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개인소비자 시장과 중소기업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의도다. ‘씽크패드’(노트북 PC)와 ‘씽크센터’(데스크톱 PC)라는 고가 브랜드와 중국 레노버라는 보급형 브랜드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는 듀얼 브랜드 전략을 펼치겠다는 복안이다.

 레노버는 유통과 마케팅 비용에서는 곧바로 시너지 효과가 나고, 중기적으로는 새로운 시장개척과 제조 최적화를 통해 첫 18개월 동안 2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레노버는 또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위한 저가형 PC생산이 아닌 IBM PC연구소와 레노버 연구소의 기술력을 결합해 고품질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 강조한다. IBM 주력모델인 ‘씽크패드’를 고안한 R&D인력을 확보해 레노버의 기술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중국이라는 저가의 생산 비용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더해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높은 기술력에 원가경쟁력이라는 날개를 단다는 점에서 분명 경쟁사보다 우위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한국레노버 사장은 “단기적으로는 우선 올해 12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는 3~4년 후 국내 PC시장점유율 15%의 3위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위협적인 존재인가

 이러한 레노버의 경쟁력이 우리나라 시장에서 제대로 발휘될까. 우려되는 레노버의 저가 가격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PC업체에게는 분명히 위기다. 부품, 인건비 등 국내의 제조원가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업체들이 단순하게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노버가 위기인 반면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IBM과 레노버가 합친 이후 떨어진 PC시장 점유율이 이를 보여준다. IBM의 PC시장 점유율은 인수가 이뤄진 지난 12월 이후 급감세를 보이면서 작년 4분기 5.7%에서 한 분기 만에 5.1%로 떨어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PC판매 1위를 지켜오던 레노버도 지난 1분기 실적에서 HP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여기에다 2년 전 레노버의 PC브랜드인 ‘레전드’를 포기하고 지은 ‘레노버’라는 이름도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파워를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IBM 중국법인 직원의 3분의 1이 인수계획이 발표된 직후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노버의 브랜드 파워를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레노버의 가장 큰 약점으로는 ‘중국산’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꼽힌다. 저가 중국산은 저품질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쉽게 떨칠 수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가격 설정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에서처럼 값싸게 팔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한국레노버는 올 연말 중국산 제품 출시 이후 판매량 등을 감안해 유통체계를 확대하고 독자적인 서비스 조직도 마련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유통체계의 확대와 독자적인 서비스 조직의 구축은 결국 가격이 오르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계속 저가격 정책을 펴게 되면 이것이 오히려 국내 시장 안착의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레노버가 자신들의 주장처럼 ‘고품질의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인식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 동안의 레노버의 경험과 IBM의 기술력이 결합될 때 효과는 산술적 계산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다. 또 합작 초기와는 달리 두 조직의 결합력이 다져지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다.

 레노버가 국내 PC업체들에게 위기로 인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PC 양극화 추세에 맞춰 프리미엄 브랜드로 과감하게 전환한다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지목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직원의 대거이탈에 시장점유율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 수익전망은 현재로서는 어두워 보인다”며 “하지만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tip 이재용 한국레노버 사장 인터뷰



 “저질의‘메이드 인 차이나’인식 극복할 것”



 “브랜드 이미지 높이기에 무엇보다 주력할 것입니다. 중국제품이 ‘저가’, ‘저질’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재용(52) 한국레노버 사장은 레노버가 중국에서는 고품질의 경쟁력 있는 가격을 가지고 있음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또 국내 업체들이 생각하는 대로 저가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아직 섣부른 판단도, 결론도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저가 PC의 등장이 레노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펄쩍 뛰었다. 그는 “이제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격은 단기적인 전략일 뿐 장기적으로는 고객이 원하는 컴퓨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오히려 델이 레노버의 아시아시장 전략을 겨냥해 저가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레노버 제품의 적정한 가격을 고심 중이라며 현재의 IBM제품보다는 싼 가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레노버의 한국시장 판매가격이 중국시장 가격처럼 그렇게 싸게 책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계속 내비쳤다. 레노버가 저가로 PC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에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그는 “저가로 시장을 공략하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중국산은 저품질일 것’이라는 인식을 없애고 ‘고품질 PC로 인식시키기’에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국에서 세계 PC 시장의 80% 이상을 공급하는 데도 레노버 제품만이 저질로 인식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사장은 “중국산이라는 소비자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하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앞당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레노버는 본사도 뉴욕에 있으며, 매출의 80%를 유럽이나 미국에서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브랜드 제고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PC 영업의 특성상 고객의 요구에 맞춘 빠른 배송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개인소비자 시장 공략을 위한 다양한 유통망 확보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브랜드 인지도 확충을 통해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인식의 극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레노버는 고품질의 IBM 제품과 레노버 제품을 오버랩 시킨다는 복안이다. 고가의 대기업 시장은 IBM 제품으로, 중저가의 소비자 및 중소기업 시장은 레노버 제품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IBM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생각이다.

 그는 “사실 지금은 IBM의 PC사업부가 그대로 옮겨 이름만 바꾼 것과 같다”며 “IBM의 시스템을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의 제품로드맵도 향후 18개월 동안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마케팅 전략은 중국 본사로부터 독립돼 있다고 강조한다. 호주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본부에서 전체적인 정책과 방향을 수립할 뿐 각국마다 독자적인 전략구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마케팅 전략도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았다.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으로 5개의 총판대리점과 60여 개의 협력사 체계를 구축했다. 대부분 LG IBM 시절 같이 일하던 협력사여서 공동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설명이다.

 A/S망도 기존의 IBM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던 서비스 전문업체인 유베이스의 서비스 망을 그대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이후 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하다면 독자적인 A/S망 구축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포석을 위해서는 독자적인 A/S망 구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재용 사장은 1983년 IBM 극동아시아 뉴욕본부 재무기획을 거쳐 1984년 한국IBM에 입사, 1996년까지 재직했다. 1996년부터 2000년 8월까지 LG IBM의 공동대표이사로 있었다. 이후 IBM 아태본부의 PC사업본부 제조본부장을 거쳤으며, 코스틸 대표이사를 거쳐 2005년 5월1일 한국레노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국내 PC업체들의 몸부림

 비용혁신으로 원가경쟁력 확보나서



 
중국이 PC 시장에 들어온 이상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 돼 버렸다. 지난 4월과 5월 현주컴퓨터에 이어 삼보컴퓨터까지 연이어 무너지면서 한국의 PC 산업이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경영환경의 악화 속에서 국내 PC산업의 활로를 모색해 보자.



 난 4월 현주컴퓨터가 부도났다. 이어 5월 삼보컴퓨터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들 중견 PC업체들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브랜드 제고를 통한 고급·고가화 전략’보다는 ‘물량 위주의 외형 키우기’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들어 중국 업체 등의 저가전략 등 외부환경이 불리해지면서 급격히 수익성이 악화돼 차례로 퇴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보컴퓨터는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안산과 멕시코 등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고 시장 점유율 키우기 등 물량위주의 전략을 펼쳤다”며 “브랜드 마케팅이 아닌 가격 마케팅에 주력한 ‘마진 없는 세일’이 가장 큰 이유”라고 평가했다.

 국내 중견 업체들은 PC시장이 지난 1999년 데스크톱 190만대, 노트북 24만대에서 2002년 데스크톱 318만대, 노트북 54만대로 급팽창하자 사옥 신축, 공장 증설 등의 대대적 투자에 나섰으나 프리미엄 브랜드 구축이나 가격경쟁력 확보를 등한시한 채 물량 공세에 치우쳤다는 분석이다.

 2000년의 급속한 시장 확대가 PC의 기술적 혁신이나 획기적인 마케팅 등 PC산업 내부의 노력보다는 성장하는 시장에 올라타기만 하면 특별한 마케팅이 없이도 성장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현주 삼보 연이어 무너져

 용산전자상가 소규모 점포에서 출발해 한때 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현주컴퓨터가 지난 4월25일 부도처리됐다. 1998년 430억원에 불과했던 현주컴퓨터의 매출은 2000년 3325억원으로 뛰었다. 다음해 코스닥에 입성하며 또 하나의 벤처신화를 일궈 내기도 했다.

 이러한 현주컴퓨터의 부도는 결국 고급 브랜드 전환의 기회를 잡지 못해 중국 등의 저가공세에 휘말린 것이 주요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PC시장이 격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경영진과 노조와의 갈등도 파국에 한 몫을 했다. 또 방만한 경영도 발목을 잡았다. PC업계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자 경영진은 본업의 경쟁력 강화보다는 인터넷 전화 사업, 인터넷 쇼핑몰 사업 등에 발을 뻗기 시작했다.

 건설 사업에 뛰어드는 등 PC 사업 이 외 영역에 손을 대기도 했으며 PMP, MP3플레이어 등 신규 사업 진출도 검토하는 등 지속적인 사세확장 정책을 펴왔다. 최근에는 여기에 신임 강웅철 사장의 자금횡령 의혹까지 불거지는 등 부실경영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단돈 1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 국내 PC업계의 ‘성공신화’로 꼽혀 왔던 삼보컴퓨터도 지난 5월1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ODM 수출이 무너지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것이다. 지난해까지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 5위권이었던 삼보컴퓨터는 올 들어 99만원대 ‘에버라텍’ 노트북을 내세워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3위까지 올라섰으나 수익성에서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돈을 잘 벌게 해 주었던 제조사개발생산(ODM; 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사업방식이 화근이었다. 삼보는 부품을 사서 PC를 조립해 HP에 납품하면 HP가 상표를 붙여 파는 ODM 방식으로 영업을 해 왔다.

 OEM기업이 단순조립 하청에 머문 반면 ODM기업은 제조 외에 제품 및 공정의 세부설계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삼보가 자체 브랜드로 방향을 돌린 뒤 출시한 ‘에버라텍’ 노트북이 더 싼 가격으로 돌풍을 일으키자 HP로부터 찍혔다는 후문. 업계 관계자는 HP로서는 자신의 발목을 잡을 새끼 호랑이를 키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ODM 방식은 매출 외형을 늘리고 현금 흐름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익률이 낮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삼보는 HP와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 되지 않은 이익마저 포기하고 거의 마진 없이 납품했다는 말도 들린다.

 삼보컴퓨터는 2004년에 2조1812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234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HP는 납품업체를 삼보에서 대만 업체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는데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고 있는 대만 업체를 삼보컴퓨터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자기 브랜드를 확실하게 구축하지 못하고 저가 경쟁과 판매량 위주의 운영을 해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매출의 대부분을 자기 브랜드가 아니라 HP 등 주요 컴퓨터업체에 납품하는 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업 구조가 2002년 이후 브랜드 마케팅과 고급화로 승부를 걸지 못하게 만들었다. 뒤늦게 부가가치가 높은 노트북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다시 저가전략을 택하는 바람에 판매량은 많았어도 수익을 내지 못해 회생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한편으로는 삼보가 무너진 진짜 이유는 ‘재벌식 경영’이 화근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방만한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삼보컴퓨터는 IT벤처 붐에 편승, 2001년에는 삼보가 거느리게 된 관계사가 해외영업을 위해 설립한 지사를 포함 50여 개에 달했다. 컴퓨터 제조부터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솔루션, 인터넷방송, 벤처캐피털까지 당시 ‘돈 된다’는 분야에는 모두 진출한 셈이다.

 그러나 제대로 실적을 낸 관계사는 하나도 없었다. 1990년대 초 나래앤컴퍼니(구 나래이동통신)를 설립해 무선호출(삐삐)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동전화의 등장으로 실패했다. 1998년엔 초고속인터넷 업체 ‘두루넷’을 설립해 다음해엔 미국 나스닥에 직상장시키는 등 한때 빛을 보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부도가 났다. 두루넷에서만 400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001년 이후 삼보는 적자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 1분기에도 삼보는 자사의 저가형 노트북 ‘에버라텍’이 돌풍을 일으키며 1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분법 평가손으로 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야만 했다. 사업다각화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삼보컴퓨터의 몰락에는 PC산업의 침체보다는 방만한 사업다각화가 근본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특히 창업자인 이용태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홍순 삼보컴퓨터 회장과 차남인 이홍선 전 두루넷 부회장, 사위인 이정식 전 티지벤처 대표 등 족벌 경영체제를 구축한 것도 방만한 경영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창 잘나갈 때 핵심역량을 강화하지 못하고 다른 데 눈을 돌린 탓이라며 PC사업 하나에만 매진했으면 이러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획기적 비용절감 대책 마련해야

 현주컴퓨터겭浙맣컸뼜痼?몰락은 무모한 외형 부풀리기 경쟁과 문어발식 사업 확장, 해외수출의 급격한 감소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세계 PC 산업 자체가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내부적인 문제 때문만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제 국내 중견 PC 업체가 가격경쟁으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독자적인 수익모델과 획기적인 비용절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PC 시장에서 노트북마저 가격파괴가 진행되고 있어 PC 산업 전반의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되자 국내 업체들도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노버까지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면서  PC 업계의 긴장감은 더해 가고 있다. 이는 세진컴퓨터·나래앤컴퍼니·컴마을 등은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됐지만 현주컴퓨터와 삼보컴퓨터 사태는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자금력과 유통망, 브랜드 가치를 지닌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레노버나 델의 초저가 정책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PC업체들은 중소업체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도 점점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어 이제는 변해야만 살 수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과의 가격경쟁으로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제품차별화와 획기적인 비용절감대책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우리 PC산업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과열경쟁과 저수익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PC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모바일 환경 등 사용자 요구에 부응하는 기술과 제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독자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수익성보다 외형 키우기에 집착하다 보면 삼보컴퓨터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강화, 홈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다른 디지털 제품과의 컨버전스 강화 등을 통해 ‘블루오션’으로 옮겨가야 한다. 또 고용량 HDD, 차세대 DVD 등 새롭게 부각되는 고부가가치 핵심부품에 개발역량을 집중할 필요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원가경쟁력 확보가 우선이다.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통해 고품질의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공급하는 비용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메모리, 모니터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우위를 점하는 장점을 활용해 고급 제품군에서 상호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시장·제품보다 고성장·고수익을 낼 수 있는 노트북 등에 집중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데스크톱에서 노트북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데스크톱시장은 포화상태인 데다 수익성마저 낮지만 노트북시장은 해마다 13%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립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노트북’은 아직까지 ‘고급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탓에, 브랜드와 성능이 제품선정의 우선순위다.

 국내 시장에서 데스크톱과 노트북이 차지하는 비중은 8대 2로 데스크톱이 우위를 보이지만  올해부터 노트북의 판매 비중이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노트북시장에서는 아직도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으로 인해 상위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 중소업체의 고민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PC산업은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과거의 ‘화려한 잔치’가 끝난 것일까. 수요정체와 경쟁사간 출혈 가격경쟁이 PC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내몰 것인가. 국내 PC 산업이 기로에 서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그 동안 타 산업에 비해 고성장을 기록했던 PC산업이 이번 위기를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장이 회복되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사업구조의 고도화나 특화와 집중을 통해 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PC업계의 한 관계자는 “PC산업이 아직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업체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며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업체들의 몸부림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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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전문가들이 본 PC산업 돌파구



“비용 줄이고 브랜드 키워 가치 높여야”



 
전문가들은 PC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이고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들은 그 동안 PC산업이 기술개발 노력 덕분에 고속성장을 했지만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이제부터는 고부가가치화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헌수 삼성전자 컴퓨터시스템사업부 부사장 이제는 브랜드 싸움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 PC사업부문은 전 세계 PC업체가 치열한 가격경쟁 체제에서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는 데 반해 흑자 규모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속적인 연구겙낱?분야의 확대 등으로 A/V, 무선기능, 홈 네트워크 등이 강화된 고급브랜드 이미지의 혁신적 PC제품을 계속 출시 할 예정이다. 마케팅 투자도 매년 확대할 계획이다.



 송시몬 주연테크 사장 원가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시장 점유율 높이기 등 외형을 키우기 위한 즉흥적인 저가격 정책은, 매출은 오르더라도 결국은 손해를 보는 짓이다. 또 점유율보다는 순익으로 평가 잣대를 바꿔야 한다. 오늘 남기지 못하면 내일도 남기지 못한다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 들어갈 때 밑지지만 향후에는 이익을 볼 것이라는 영업전략은 틀린 것이다. 단 한 대의 컴퓨터를 팔더라도 이익을 남겨야 한다.

이재용 한국레노버 사장 컴퓨터는 이제 IT기술이라기보다는 일반 상품화 됐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PC 시장은 이제 공급과잉 시장이 돼 차별화도 어렵지만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매출이 확 줄어도 비용은 단번에 줄이지 못한다. 만들면 이익이 남는 적정이윤 보장 시대는 끝났다.



김진군 한국델 사장 비용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직판구조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델의 성공요인은 고품질이었지만 저가격의 PC 생산도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덕분이었다. 재고가 쌓이면 그만큼 손해다. 델의 운영비용은 HP 등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제 PC 제조기술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신기술을 통해 높은 가치를 창출하기는 어렵다. 가격대비 성능면에서 고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PC를 만들어야 한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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