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의 노무현 정권은 마치 ‘중년의 위기’를 맞은 듯한 분위기다. 크고 작은 악재와 현안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현재 여권 전체가 마치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의 방황과 갈등을 연상시키듯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 정부 및 여당은 어지간한 시련이나 갈등에는 이골이 난 상태다. 지난 2년 동안 무수히 많은 갈등과 시련을 헤쳐 왔기 때문이다.

 올 초 취임 2주년을 맞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치·사회적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시기”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지난 2년은 “노대통령이 만든 해일이 구질서를 허물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말한 ‘쓰나미 2년’은 여권이 공세를 취했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제 해결 못하면 ‘레임덕’ 나타날 수도

 러나 과연 지난 2년을 여권의 일방적인 공세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공세를 취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다른 역대 어느 정권이 취임 초반에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공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게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다. 그러나 현 여권은 이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상황을 돌파하곤 했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지 한달쯤 뒤에 치러진 작년 17대 총선에서 40여석 안팎의 미니 여당이 152석의 과반 여당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위기를 넘기는 데 있어 현 여권은 마치 오뚝이를 연상시키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줬던 것이다.

 현 여권이 각종 위기를 견뎌내고 생존할 수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도박에 가까운 노대통령 특유의 돌파형 리더십이 압권이다. 노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2003년 10월 잇단 측근 비리에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을 받겠다”며 역공에 나섰다. 결국 당시 국회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초반엔 이 문제를 환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발목을 잡힌 꼴이 됐다. 탄핵 사태에서도 노대통령은 적어도 ‘할테면 하라’는 태도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이런 상황을 지켜본 정치권에선 “반노(反盧:노무현 반대)에 서면 최소한 중상”이란 농담까지 나왔다. 마치 노무현 정권은 위기 속에서 자라는, 위기가 닥쳐야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문의장, “여당 지도부는 천덕꾸러기”

 그러던 현 여권이 최근 이상하리만큼 무기력(?)해졌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그렇다. 요즘 여권을 둘러싼 상황은 심상치 않다.

 북핵 위기와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사건, 4·30 재보선 ‘0대 23’ 전패(全敗), 공공 기관 이전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갈등 등. 모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앞에 닥친 문제들이다. 여권 관계자들이 “솔직히 어디서, 뭘,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할 만큼 이 사안들은 선뜻 해결책이 잡히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을 두고 풀어 나가야 하는 난제라고 해도 이에 임하는 여권의 태도가 과거와는 분명히 다르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자신감 같은 게 보이질 않는다. 또 작년 한 해 서슬 퍼렇던 열린우리당의 기세도 꺾일 대로 꺾인 상태다. 그렇다 보니 국정 운용의 책임을 진 정부·여당다운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노무현 정부는 집권 3년차를 맞았다. 노대통령의 임기도 어느덧 중반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노대통령이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 지난 2년 동안 뿌려놓은 새로운 국정 운용 계획이 하나 둘씩 결실을 거두는 시기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처럼 손에 잡히는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정작 새로운 대형 난제들만 쌓여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여권 전체가 마치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별로 힘을 쓰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여권 안팎에선 “요즘 우리 모습이 마치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말이 나올 만도 한 것이 청와대는 요즘 각종 대형 현안들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다. 물론 북핵 사태에 대해선 청와대측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 갈 주도적이고, 창조적인 구상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난 2년 동안 북핵 문제는 답보 상태를 반복했다. 그나마 전임 정부 때까지만 해도 가동되던 남·북 대화 채널마저 1년 가까이 회담 한 번 하지 못한 상태다.

 취임 첫 해 측근 비리가 나오면 직접 나서서 해명을 하고, “재신임받겠다”고까지 했던 노대통령조차 러시아 유전 의혹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또 청와대측이 중간 중간에 내놓은 해명조차 의문을 모두 풀어 줄 만큼 속 시원하지 못하다. 사건 초반에 보여준 청와대의 이런 태도가 결국은 의혹을 더욱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강력한 여당’을 내걸고 지난 4월2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문희상 의장 체제는 취임 한 달도 안돼 레임덕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맞았다. 4·30 재보선 참패 때문이다. 여당은 사상 초유에 가까운 참패에도 문의장 체제를 유지키로 결정했다. 문의장이 재보선 공천에 직접 관여한 것도 아니고, 또 재보선의 책임을 묻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데다 대안도 없었다. 문제는 문의장과 현 여당 지도부가 재보선 패배의 충격을 선뜻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의장 스스로 최근 당 회의 석상에서 “(여당 지도부는)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여당 안에서조차 현 지도부에 충분한 힘이 실리지 않고 있으니, 각종 국정 현안 해결에 앞장선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현재 여권은 정부·여당 할 것 없이 중심이 크게 흔들린 듯한 모습이다. 총체적인 난조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의 난국을 돌파치 못한다면 노무현 정권은 임기 중반에 벌써 레임덕과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여권 인사들도 이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풀거나 돌파할 묘책이 선뜻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박두식 조선일보 정당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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