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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SW) 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 시가총액이 나스닥에서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2조달러(약 2280조원)의 고지에 안착했다. MS가 창사 33년 만인 2019년 4월 시총 1조달러(약1140조원)를 넘은지 2년 2개월 만이다. MS는 모든 기업을 통틀어 애플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2조달러 클럽’에 입성했다.

이날 MS는 차세대 개인용컴퓨터(PC)용 운영체제(OS)인 ‘윈도 11’을 공개했다. 이전 버전인 ‘윈도 10’이 나온 지 6년여 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온라인 행사로 처음 공개된 윈도 11은 올 연말쯤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윈도 11에는 MS가 사상 최고 실적을 돌파할 수 있도록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평가받는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아 나델라의 경영 철학과 특징인 ‘개방성’이 반영돼 있다. 1위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앱)을 PC에서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확장성·호환성을 크게 높였다.

모바일용 안드로이드 앱을 PC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짧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틱톡’, 전자책 서비스 ‘킨들’, 차량호출 서비스 ‘우버’ 등 인기 스마트폰 앱들을 모두 윈도 11을 통해 PC에 깔고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개발자가 자체 결제 시스템을 갖춘 앱에 대해서는 자체 앱 장터인 ‘윈도 스토어’에서 개발자에게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델라 CEO는 6월 24일 “오늘날 세상은 더 개방적인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새 시대에 맞는 윈도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MS의 2조달러 클럽 가입으로 인도 출신 SW 개발자인 나델라 CEO의 리더십이 재부각되고 있다. 그는 기업 경영과 사업 확장 측면에서 안팎으로 개방성과 융통성을 강조하며, 수년간 슬럼프를 겪었던 MS의 중흥을 이끈 장본인으로 평가된다. 1968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인도에서 나온 그는 영어에 인도 억양이 강하게 남아있는 인도계 이민자다. 인도 대학 졸업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위스콘신대 밀워키 캠퍼스에서 전산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시카고대학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이후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1992년 MS에 합류했다. 이후 기업용 클라우드 담당 부사장을 거쳐 2014년부터 MS의 3번째 CEO를 맡았다. 한마디로 기술에 정통한 SW 개발자이며 MS 내부 출신이다.

그가 CEO가 된 시점, PC에서 모바일로 시장의 중심축이 옮겨짐에 따라 MS는 약 10여 년간 침체기에 있었다. 모바일 기반의 애플과 구글, 클라우드 기반의 아마존이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MS는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만든 ‘과거의 영광’인 PC OS 윈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스타트업 육성기업 ‘와이콤비네이터’의 공동창업자 그레이엄은 2007년 한 인터뷰에서 “MS는 죽었다”라고 비난했으며, 딕 브래스 전 MS 부사장은 2010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MS의 미래는 윈도와 오피스에만 의존할 수 없다”라며 “혁신 문화가 사라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때 나델라 CEO는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를 외치며 과거 PC에 머물렀던 폐쇄적인 회사를 개방했다. 우선 그는 MS를 윈도, 오피스 중심의 SW 기업에서 클라우드 기업으로 변화시켰다. MS 코리아에 따르면 그의 취임 전 윈도 30%, 오피스 30%, 기업용 서버 30%, 기타 10%였던 MS의 매출구조는, 현재 기존에는 아예 없던 클라우드가 전체 매출의 40% 가까이 차지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나델라는 비즈니스 전략 역시 개방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윈도, 오피스의 종속적, 폐쇄적인 구조의 틀을 깨고 모든 플랫폼으로 MS의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경쟁사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나델라 CEO는 취임 후 가장 먼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용 MS 오피스를 개방했다. 당시 미국 경제 방송 CNBC는 “나델라가 ‘레드햇’ ‘세일즈포스’와 같은 SW 업체와 관계를 개선했으며 한때 윈도를 위협한다고 평가받았던 오픈소스 ‘리눅스’ OS를 윈도에 추가했다”라고 보도했다.


엘리트주의 공룡을 젊은 회사로 회춘시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위스콘신대 전산학 석사, 시카고대 MBA /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위스콘신대 전산학 석사, 시카고대 MBA /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나델라가 MS에 개방성이라는 가치를 들여놓을 수 있었던 뒤에는 인도계 이민자 출신으로 다문화에 익숙한 배경이 있었다. 나델라는 치열한 내부경쟁과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난받아온 MS의 조직 문화를 보다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문화로 바꿨다.

나델라 직전 CEO로 MS를 14년간 이끌었던 스티브 발머는 부서 내 실적 경쟁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부서 이기주의’가 팽배해 윈도, 오피스 등 각 부서는 개별 회사처럼 운영돼 소통이 부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발머는 MS 외의 SW를 강하게 배척하고 비난했다. 그가 한 행사에서 직원이 아이폰을 꺼내 자신을 촬영하자 그 아이폰을 손에서 빼앗아 ‘부숴버리는’ 시늉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발머가 CEO로 재임한 기간 43% 하락한 주가는 2014년 나델라 취임 이후 600% 이상 급등하는 반전을 한다. 부서 간 협업을 강조한 나델라는 애플 등 경쟁 업체와의 협업 역시 촉진하면서 ‘소프트웨어 공룡’의 변신을 주도했다. 나델라는 취임하자마자 기존의 경쟁 중심 상대평가 제도를 절대평가로 바꿨다. 실적 중심의 평가 대신 자신이 다른 직원에게 어떠한 도움을 줬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영향력’ 중심의 평가를 도입했다.

나델라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2017년 10월 펴낸 자서전 ‘히트 리프레시’에서 컴퓨터 자판의 ‘새로 고침(F5)’ 키에 비유했다. 마치 PC에서 웹사이트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 다시 F5키를 눌러 정보를 업데이트해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피로감과 불만을 느끼는 직원들에게 초심을 일깨우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을 추구하며 혁신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CNBC는 이를 두고 MS가 나델라의 리더십 아래 ‘젊은 회사’로 회춘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나델라는 특히 조직 내 공감과 관점의 변화를 강조했다. 중증 장애인인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는 타인과의 깊은 교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개인 배경을 기반으로 장애와 성별 등 다양한 차별을 없애는 문화 역시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장애가 있는 내 아들 자인을 키우며 나랑 같지 않은 사람과 살아가는 법, 상대를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며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은 덕에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