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학사·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과 수료 /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가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케이옥션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학사·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과 수료 /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가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케이옥션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화가의 그림 한 점이 132억원에 낙찰됐다. 푸른 빛 소용돌이를 두 폭에 그려 넣어 고요한 심연을 묘사한 이 작품의 이름은 ‘우주’. 한국 화단의 거장 고(故) 김환기(1913~74) 화백이 남긴 추상화다.

132억원의 벽은 아직 그 어떤 한국 화가도 넘지 못했다. 국내 미술 경매 시장에서 김환기의 패권은 여전히 공고하다. 경매 사상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한국 화가의 작품 10점 중 8점이 김환기의 회화다(나머지 2점은 이중섭·박수근의 작품이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이사)는 ‘우주’가 세운 신기록이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크리스티 낙찰작은 현존하는 유일한 김환기의 두폭화(diptych)로서 희소성이 있다”며 “김환기 선생의 친구이자 후원가였던 김마태 박사가 구매해 47년간 소장하고 있었다는 아름다운 비화까지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손 이사는 케이옥션에서 늘 경합이 가장 치열한 분야의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김환기, 박서보, 정상화 같은 추상화 거장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최근 국내 미술 시장이 과거 큰손 역할을 하던 부자들뿐 아니라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 2010년생)까지 컬렉터로 가세하면서 달아오르고 있다. 11월 10일,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손 이사를 만나 한국 미술 시장의 현주소와 변화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내 미술 시장에서 김환기 작품이 ‘대세’가 된 지 오래됐다. 김환기를 비롯한 추상화가들의 인기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박수근, 이중섭 같은 구상화가들의 작품은 한국인에게는 감동을 일으키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사회적 배경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공감을 사기는 어렵다. 반면 추상화는 배경이 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김환기는 1960년대 뉴욕에 정착해서 그 시대의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교류하고 교감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지금도 세계 미술 시장을 주름잡는 주류 사조인데, 김환기는 우리나라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추상표현주의의 전성기를 본고장인 뉴욕에서 경험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세계적인 보편성이 있다.”

초고가 미술 시장은 추상화가 주도하고 있지만, 최근 젊은 구상화 작가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06~2007년에는 이동기, 홍경택 등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작업해 캔버스를 꽉 채우는 작가들이 주목받았다면, 요즘은 마치 낙서를 한 것 같은 그림이나 만화 캐릭터같이 귀여운 인물을 그려 넣은 작품이 인기 있다. 대표적인 작가는 우국원 화백이다. 우국원의 작품은 최근 2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이 같은 트렌드는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에서 인기 있는 에드가 플랜즈 같은 작가들도 ‘귀여운’ 그림을 그린다.”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할 때 고려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지.
“객관적인 지표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류 비평가들의 평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야수파나 인상주의도 동시대 비평가들에게는 저평가받았다. 비평가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을 인정했다. 작가의 이력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작품에 만화 캐릭터 ‘심슨’을 그려 넣는 것으로 유명한 이종기 화백은 공학을 전공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50대가 돼서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주류 미술계에서 보면 ‘이단아’ 같은 이력을 지녔지만 요즘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 요인이 있다면.
“해당 작품의 ‘전시 이력’이 중요하다. 구겐하임 등 해외 주요 미술관에 전시된 적이 있다면, 시장에서 작품의 가치가 높아진다. 최근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건용, 이강소, 이배 등도 내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작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 또 이건희 컬렉션 같은 주요 컬렉션에 비슷한 작품이 포함되는 경우에도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올해 5월 우리 경매에 마르크 샤갈의 ‘생폴드방스의 정원’이 나왔는데, 이건희 컬렉션에 비슷한 시기 같은 곳에서 제작된 작품(‘붉은 꽃다발과 연인들’)이 있었다. 이러한 유사성은 작품 가치가 좀 더 오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지난해부터 국내 미술 시장의 저변이 급속도로 확대돼 왔다. 지금도 많은 컬렉터가 시장에 새로 유입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을 것 같은데.
“작가들도 시장에서 더 활발하게 자신을 알리고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 시장과 작가는 결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의 주인공은 작가다. 우국원이 현재의 위상을 갖게 된 데도 경매가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작가가 자신을 알리고 작품 판매 활동을 할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으로 직접 작품을 판매하는 작가도 많은데, 이처럼 갤러리 등 중개자 없이 판매를 직접 하게 되면 수수료가 절감되니 구매자 입장에서는 갤러리를 통할 때보다 훨씬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다. 이 경우 경매 같은 2차 시장이 교란되기 쉽다.”

이른바 MZ 세대의 미술품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50~60대는 주로 자산가가 미술품에 투자한다. 좋은 집과 차를 가진 뒤에야 취미와 취향에 맞는 소비를 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MZ 세대는 다르다. 부동산을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만큼, 원룸에 살더라도 내 방에 걸어 놓을 좋은 그림 한 점을 사겠다는 것이 요즘 MZ 세대 미술 투자자들의 생각이다.”

젊은 세대는 과시욕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집에 있는 미술품은 과시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지 않나.
“미술품은 매우 사적인 영역에 있는 자산이다.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 둬도, 다른 사람이 내 집에 오지 않는 한 볼 수 없다. 그래서 ‘자랑’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아이템은 아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하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해 어울리는 문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또 소셜미디어(SNS)가 보편화하며 집에 있는 자산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쉬워졌다. 그림을 집에 걸어 두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산으로서의 미술품은 소위 사치품과 비교해 어떤 차별점을 가질까.
“집이나 자동차는 돈이 많다면 살 수 있는 자산이지만 미술품은 많은 돈이 있어도 구매하기 어렵다. 옥션 같은 2차 미술 시장에서는 경합을 통해 미술품을 살 수 있지만, 1차 시장인 갤러리들은 미술품을 자주 거래하는 고객에게 구매 우선권을 준다. 갤러리와 친분이나 인연이 있는 고객이 아니면 좋은 작품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미술 컬렉션은 집과 차, 명품 가방 등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좀 더 드러내고 싶을 때 사는 자산이다. 금전적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넘어, 내 안목과 취향 등을 모두 함축하는 자산이다. 그래서 미술품 수집은 부자들의 ‘마지막 취미’인 경우가 많다. 미술품을 살 때는 단순히 ‘되팔 때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에만 주목하지 않으면 좋겠다. 내 집에 그림을 걸어두고 몇 년간 감상하며 얻는 심미적 즐거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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