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권자가 11월 3월(현지시각) 미국 미시시피주 투표 용지를 들고 있다. 이날 주민투표 결과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 안건이 통과됐다. 사진 AP연합
한 유권자가 11월 3월(현지시각) 미국 미시시피주 투표 용지를 들고 있다. 이날 주민투표 결과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 안건이 통과됐다. 사진 AP연합

“바이든도 트럼프도 아닌 대마초가 애리조나주에서 압승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는 11월 7일(이하 현지시각) 2020년 미국 대선 주요 경합 주인 애리조나주에서 오락용 대마초를 허용하는 ‘주민발의(proposition) 207호’가 주민투표를 통과하자 이렇게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접전을 벌인 주에서 대마초가 압승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표를 던진 애리조나주 주민은 모두 193만 명으로 찬성률은 60%였다.

2020년 미국 대선과 함께 진행된 각 주의 주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은 주민발의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민발의는 미국 선거제도에 도입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 중 하나다. 도입된 지 100년이 넘었으며 미국 유권자는 선거마다 주의원이나 주지사 선출뿐만 아니라 주민발의안을 놓고 표결한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주민발의안 또는 주민투표를 허용하는 주는 모두 24개 주로 절반가량이다.

미국에서 연간 주민발의 건수는 늘어나는 추세이며 내용도 실생활 관련 이슈부터 주 헌법 개정까지 다양하다. 통과된 주민발의안에 근거해 해당 현행법이 개정된다. 캘리포니아주처럼 인구수가 많은 지역의 주민투표를 통과한 주민발의안의 영향력은 해당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주나 연방 의회의 법안 상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11월 3일 주민투표를 통과한 경제·산업 분야 주요 주민발의안 세 가지를 살펴봤다.


1│마리화나 합법화

애리조나주를 비롯해 몬태나·뉴저지·사우스다코타주 등 네 개 주에서 성인의 오락용 대마초 소지 및 이용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주민발의안이 통과됐다. 미시시피주에서는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을 허용하는 주민발의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미국 내에서 마리화나를 허용하는 주는 총 15개 주로 늘었다. 특히 대마초 업계는 뉴저지주를 주목하고 있다. 뉴저지주가 인접한 뉴욕주와 필라델피아주에서도 머지않아 대마초가 허용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바이든 당선인이 오락용 대마초 합법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이번 대선이 대마초 합법화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기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마초 합법화 내용을 담은 주민발의안 통과와 바이든 당선으로 대마초 관련 주가는 들썩였다. 11월 5일 뉴욕증시에 상장한 의료용 대마초 생산 업체인 오로라 캐너비스 주가는 41%나 뛰었다. 대마초 회사인 틸레이와 크로노스그룹 주가도 각각 30%, 17% 올랐고 상장된 캐너비스ETF 역시 14% 상승했다.

대마초 시장은 한층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 업체인 브라이트필드그룹에 따르면 올해 캐나다의 오락용 대마초 시장 규모는 17조달러(약 1경8904조원)로 지난해의 두 배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 나아가 의료용 대마초까지 포함하는 캐나다의 대마초 시장 규모는 2025년 58조달러(약 6경4496조원)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2018년 우루과이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락용 대마초를 전면 합법화한 나라다.


한 우버 운전자가 10월 9일(현지시각) 주민발의 22호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AFP연합
한 우버 운전자가 10월 9일(현지시각) 주민발의 22호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AFP연합

2│직고용 리스크 피한 우버·리프트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차량 호출, 배달 플랫폼의 임시직 운전자를 개인 사업자로 규정하는 내용의 주민발의 22호가 통과됐다. 임시직 운전자를 정직원으로 전환할 수 없다고 주장한 우버·리프트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캘리포니아주 주민이 힘을 실어준 것이다.

앞서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1월부터 플랫폼 기업이 임시직 운전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AB5법을 시행했다. 기업 입장에서 정직원으로 고용하면 최저임금이나 고용보험 등을 보장해야 하므로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우버·리프트는 이 법이 유지되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철수할 것이라며 강수를 두기도 했다. 또, 모든 운전자를 정직원으로 고용하면 이용 요금이 폭등해 결국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투표에 앞서 플랫폼 기업은 찬성 캠페인에 2억달러(약 2224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우버와 리프트는 각각 5700만달러(약 634억원), 4900만달러(약 545억원)를 후원했으며 신선식품 배달 플랫폼 인스타카트 등도 후원에 동참했다. 뉴욕타임스는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가장 비싼 투표”라고 평가했다. 우버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주당 15시간 이상 일하는 운전자에게 건강보험과 사고보험 등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우버·리프트가 ‘직고용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흑자 전환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버와 리프트는 지난해 각각 85억달러(약 9조4605억원), 26억달러(약 2조8938억원)의 손실을 냈다.


3│고액 연봉 임원 기업에 과세

샌프란시스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주민투표에서는 임원에게 과도하게 많은 임금을 주는 기업에 세금을 중과하는 주민발의안이 통과됐다.

이 주민발의안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매트 해니 등이 소득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했다. 임원 연봉이 직원 연봉 중앙값의 100배 이상일 경우 그 회사 총수입(gross receipts)의 0.1%에 해당하는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가령 한 회사 임원이 직원 연봉 중앙값의 200배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으면 회사는 총수입의 0.2%, 300배일 경우 0.3%를 가산세로 내야 한다. 가산 세율은 최대 0.6%다.

대상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거나 영업하는 기업으로, 광범위하다. NBC뉴스는 “사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에도 해당하는 법안”이라며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인 세일즈포스처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은 물론 비자나 JP모건처럼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업하는 기업도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트위터, 우버 등도 과세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주민발의안에 찬성한 샌프란시스코 시민은 모두 26만6915명으로 찬성률은 65%에 달했다. 이에 대해 시의원 해니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샌프란시스코 시민이 깊어지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람의 소득 수준이 제자리걸음하고 있지만, 부유한 사람은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샌프란시스코는 연간 최대 1억4000만달러(약 1558억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