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리모델링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리모델링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7월 2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꼭대기 층 가구 내부는 4주간 이어진 리모델링 공사의 막바지 작업으로 분주했다. 노련해 보이는 작업자 두 명이 집 안 곳곳을 누비며 필요한 부위에 실리콘을 바르고 있었다. 화이트 색상의 벽과 창호가 우드 바닥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최근 인테리어 공사 문의가 부쩍 늘었습니다. 지난해 실시한 전체 공사 횟수를 올해 상반기에 이미 넘어섰죠.” 현장을 보여준 인테리어 전문업체 ‘스튜디오 오밀리’의 장윤영 실장이 말했다.


일복이 터진 스튜디오 오밀리의 모습은

뜨겁게 달아오른 인테리어·가구 등 이른바 ‘집 꾸미기(홈퍼니싱·home furnishing)’ 시장의 한 단면이다. 예쁜 집에서 살겠다며 홈퍼니싱 시장에 자발적으로 들어온 소비자는 지난 수년간 증가해왔다. 그 수요를 올해 들어 폭발적으로 키운 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정부의 부동산 규제라는 강력한 외부 요인이다.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과 재건축 기대감이 한풀 꺾인 이에게 집 꾸미기는 매력적인 위로가 돼 주고 있다.

홈퍼니싱 시장 열기는 관련 기업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국내 1위 인테리어 업체 한샘은 올해 2분기에 5172억원의 매출액과 23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액은 25.9%, 영업이익은 172.3% 증가한 것이다. 이 회사의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성장한 건 2015년 4분기 이후 4년 6개월 만이다. 한샘은 이번 성과를 계기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졌던 성장 랠리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샘 호실적의 일등 공신은 집 전체 리모델링 공사를 제안하는 ‘리하우스’ 사업 부문이다. 한샘에 따르면, 리하우스 패키지 판매 건수는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6%, 201% 늘었다. 한샘은 전국의 리하우스 대리점을 연내 500개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투자는 “7·10 부동산 대책에도 재건축 규제 완화 흐름은 없었다”며 “노후 주택 증가는 리폼 시장 확대로, 리폼 시장 확대는 인테리어 시장 대장주인 한샘의 실적 성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샘 뒤를 쫓는 업계 2위, 현대리바트도 우수한 실적을 거뒀다.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3694억원, 영업이익은 148억원이었다. 2019년 1분기보다 매출액은 18.7%, 영업이익은 50.4% 늘어났다. 증권가는 현대리바트의 2분기 실적도 한샘과 마찬가지로 뛰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투자증권은 현대리바트의 2분기 매출액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 증가한 3306억원으로, 영업이익은 116.8% 급증한 130억원으로 추정했다.

실적 개선은 주가 상승과도 연결된다. 올해 3월 5만원을 밑돌던 한샘 주가는 현재 10만원을 넘어선 상태다. 같은 기간 현대리바트는 5000원대에서 2만원 수준으로 네 배가량 치솟았다. 이 밖에 건축자재 기업 LG하우시스와 욕실 인테리어 기업 대림B&Co, 건자재 기업 이건산업 등의 주가도 모두 크게 올랐다.

업계 관계자들은 홈퍼니싱의 인기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재건축 사업 속도를 늦추고 실거주 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17년 28조원 수준이던 국내 주택 리모델링 시장이 올해 41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코로나19가 낳은 언택트(untact·비대면) 사회 분위기에 따라 온라인 홈퍼니싱 시장이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도 이미 이런 흐름을 감지하고 온라인 사업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태다. 2018년 신세계가 인수한 까사미아는 최근 자사 제품은 물론 수입 가구와 디자이너 가구, 가전까지 다채롭게 판매하는 ‘굳닷컴’을 선보였다. 퍼시스그룹의 생활 가구 전문 브랜드 일룸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고객이 직접 가구를 배치해볼 수 있는 ‘공간 제안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리바트는 하반기 중 검색·결제 등의 기능을 강화하고 취급 브랜드를 늘린 ‘통합 온라인몰’을 공개할 계획이다.

홈퍼니싱 열풍은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인테리어 스타트업 버킷플레이스가 운영하는 ‘오늘의집’ 서비스의 월간 거래액이 7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3월 거래액이 150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성장 속도다. 오늘의집은 실제 인테리어 경험자가 올리는 ‘온라인 집들이’로 유명하다. 사용자는 집들이 게시물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진 속 물품 정보를 클릭해 곧바로 구매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인테리어 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도 시공 의뢰 건수가 매월 급증 추세라고 전했다.


롯데하이마트 안에 있는 LG지인 인테리어 매장에서 인테리어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롯데하이마트
롯데하이마트 안에 있는 LG지인 인테리어 매장에서 인테리어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롯데하이마트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에이스 하드웨어’ 퇴계원점. 사진 에이스 하드웨어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에이스 하드웨어’ 퇴계원점. 사진 에이스 하드웨어
인테리어 정보 공유 플랫폼 ‘오늘의집’ 홈페이지에 온라인 집들이 게시물이 노출돼 있다. 사진 오늘의집
인테리어 정보 공유 플랫폼 ‘오늘의집’ 홈페이지에 온라인 집들이 게시물이 노출돼 있다. 사진 오늘의집

멀어지는 내 집 마련 ‘전세라도 꾸미자’

그간 인테리어는 자가 소유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전·월세 입주자는 도배나 장판 교체 정도에 돈을 썼다. 하지만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와 주택 가격 급등에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어차피 오래 살아야 한다면 남의 집이라도 꾸며 보자’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7월 28일 방문한 서울 원효로의 ‘에이스 하드웨어’ 용산점은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방문객으로 붐볐다. 유진그룹 계열사인 유진홈센터에서 운영하는 에이스 하드웨어는 집을 꾸밀 때 필요한 모든 것을 한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홈 임프루브먼트(Home Improvement)’ 전문 매장이다. 셀프 인테리어족의 성지로도 불린다. 금천, 목동, 용산, 일산, 퇴계원 등 5곳에 매장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예비부부 황민우(가명·34)씨와 임보람(가명·32)씨는 “전셋집이라 (집 꾸미기에) 많은 돈을 쓸 수는 없지만, 셀프 인테리어라도 해 신혼 기분을 내려 한다”고 했다. 황씨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자가 소유의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 든다”며 “도배·장판만 하기에는 전세살이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 셀프 인테리어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배·마루·몰딩 등 개별 인테리어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하우스텝’의 고객 비율도 자가와 전·월세가 각각 50 대 50을 차지한다. 이 회사의 올해 6월 매출액은 10억원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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