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희생양이 된 두산중공업에 공적 자금 1조원을 긴급 수혈하기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희생양이 된 두산중공업에 공적 자금 1조원을 긴급 수혈하기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에 1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장 상반기에 갚아야 하는 빚만 1조원 이상인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에 나선 것이다.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된 두산중공업은 정부 지원금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기준 두산중공업의 차입금은 4조9000억원이다. 사업 자회사를 포함하면 빚은 5조9000억원까지 불어난다. 이 중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 채권 규모는 6000억원이다. 여기에 5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투자자 대부분이 풋옵션(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중공업 입장에서 산은과 수은의 1조원 수혈이 천군만마(千軍萬馬)인 이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회사의 부채 규모와 ‘아픈 손가락’ 두산건설의 존재 등을 고려할 때 1조원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고 말한다. 추가 자금 지원과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이 병행되지 않으면 두산중공업은 또다시 고통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탈(脫)원전 정책으로 말짱한 기업을 빈사(瀕死) 상태로 만든 정부가 책임감 있는 자세로 두산중공업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 1│야속한 탈원전 정책

발전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던 두산중공업을 휘청이게 한 결정적 요인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두산중공업은 담수나 건설 관련 사업도 하고 있으나 매출의 약 80%를 주력 분야인 발전에서 얻는다. 상당수 업계 관계자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이 두산중공업에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두산중공업의 신규 수주액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8조~9조원 수준에서 지난해 3분기 말 누계 기준 2조1000억원으로 4분의 1토막 났다. 100%에 이르던 원전 부문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50%대로 뚝 떨어졌다. 2014년 이후 6년 동안 쌓인 당기 순손실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 영업이익은 1조769억원으로 2018년보다 7.3% 증가했지만, 이는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호실적을 내준 덕분이었다.

자회사 효과를 뺀 두산중공업의 지난해 별도 실적은 영업이익 877억원으로 전년보다 52.5% 급감했다. 2016년 영업이익이 2834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3년 만에 회사 사정이 크게 악화한 셈이다. 외형도 쪼그라들었다. 이 기업 매출액(별도 기준)은 2012년 7조6726억원에서 2019년 3조7086억원으로 7년 새 절반가량 증발했다. 이처럼 수년간 이어진 내리막길은 두산중공업을 지금의 유동성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불만과 절박함은 두산중공업 노조가 3월 24일 창원상공회의소와 함께 발표한 호소문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호소문에서 노조는 정부를 향해 “지역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고 울부짖었다. 노조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280여 개 원전 관련 기업과 1만3000여 명의 노동자가 일감 절벽으로 생존마저 위협받는다”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통해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두산중공업은 창원 지역 생산의 15% 이상을 담당한다.

경영진은 정부의 정책 노선 변경을 내심 기대하며 고강도 긴축을 병행해 왔다. 2018년 3월 두산엔진(현 HSD엔진) 지분 전량(42.66%)을 국내 사모펀드 ‘소시어스 웰투시 컨소시엄’에 매각했고, 같은 해 8월에는 두산밥캣 지분 일부(10.55%)를 처분해 3681억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루마니아 현지 자회사 두산IMGB의 폐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임원 감축에 이어 올해 2월에는 만 4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휴업 검토설도 돈다.


3월 11일 오후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정문의 한산한 모습. 사진 연합뉴스
3월 11일 오후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정문의 한산한 모습. 사진 연합뉴스

위기 2│‘아픈 손가락’ 두산건설

업계 관계자들은 두산중공업을 침몰 직전까지 내몬 또 하나의 요인으로 두산건설을 꼽는다. 두산그룹은 지주사 격인 ㈜두산이 두산중공업을,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두산건설은 2001년 선보인 아파트 브랜드 ‘위브(we’ve)’의 성공으로 한동안 두산그룹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9년 추진한 주상복합 아파트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경영 상황이 180도 돌변했다.

2700가구 대단지가 야기한 대규모 미분양 사태는 탄탄대로를 질주하던 이 건설사의 손익 지표를 급격히 끌어내렸다. 2010년까지 흑자를 내던 두산건설은 2011년 2942억원 순손실로 돌아섰고, 이후 지금까지 적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순손실 규모는 955억원이었다. 두산그룹이 두산건설 정상화를 위해 투입한 돈은 1조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두산중공업은 자회사 처분에 나섰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최근 두산건설 매각을 위한 투자 안내서(티저 레터)를 배포했다. 국내 사모펀드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고강도 자구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모습을 채권단에게 보여줘야 하는 두산중공업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다”라며 “두산건설이 지난해 상장 폐지돼 두산중공업 자회사로 편입했을 때부터 매각설은 꾸준히 나왔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명예퇴직에 이어 휴업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연합뉴스
두산중공업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명예퇴직에 이어 휴업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연합뉴스

위기 3│아슬아슬한 신용등급

탈원전 정책 직격탄과 두산건설 리스크에 발목 잡힌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은 2018년 A-에서 BBB+로 추락했다. 위기가 심화한 지난해에는 등급이 BBB로 한 단계 더 떨어졌다. 낮아진 신용등급은 한 푼이 아쉬운 두산중공업의 자금 조달을 방해한다.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돈을 제때 못 빌리면 위기는 또 찾아올 수 있다.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게다가 BBB는 투자 적격 등급에 속하긴 하나 위험도가 높아 기관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꺼린다. 두산중공업의 1조원 수혈 소식에도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이다. 언제든 추가 하향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신용평가는 3월 24일 두산중공업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BBB)을 하향 검토 대상에 등록했다. 이 신용평가사는 “두산중공업의 재무 리스크가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나 두산밥캣으로 전이될 경우 이들 계열사의 신용도도 저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전 업계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 건설만 재개해도 두산중공업에는 2조5000억원의 매출이 생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 때문에 두산중공업 등 관련 기업이 큰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며 “정부는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말고 지속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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