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이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동국대 석좌교수
최중경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이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동국대 석좌교수

“국가 기간산업이 파산 위기에 닥치면 국유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재정건전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정책을 무작정 따라 하는 현시점의 대처는 재정건전성을 크게 위협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물과 금융의 복합 위기’ 한가운데로 몰렸다. 코스피지수가 폭락해 한때 1500선이 무너지는가 하면,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행히 6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과 글로벌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로 금융시장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물경제는 여전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전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3.5% 감소했다. 특히 항공운송업(-33.1%)과 자동차(-27.8%), 숙박·음식점(-18.1%) 등 일부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코노미조선’은 복합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실물과 금융 두 부문을 두루 지휘한 경험이 있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전화 인터뷰를 3월 25일 진행했다. 그는 “위기를 견디는 것 못지않게 위기 이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국 경제의 복원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출신인 최 전 장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일하며 과감한 환율 방어로 위기를 조기 진압하는 데 힘썼다. “환율 방어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고 월가는 그를 ‘최틀러(최중경과 히틀러의 합성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2016년부터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복합된 것과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선진국 경제가 흔들리고, 그 여파가 한국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사하다. 신흥 중진국의 구조적 문제가 위기로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외환위기와 비슷하다.”

바이러스가 종식된 후 실물경제가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겠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본다. 외환위기 때는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뛰어났다. 환율이 정상화된 이후에는 수출 부문이 급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 회복력이 많이 떨어졌다. 중국산 제품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버거워졌고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 상승 등의 정부 정책도 기업의 기초체력을 약화시켰다.”

어떤 문제가 예상되나.
“상당수 기업이 회복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파산을 막는 구제금융 주체는 세 곳이 있다. 민간 기업, 정부 당국, 해외 자본이다. 위기의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간산업이 해외 자본에 넘어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활로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산업 기반을 지켜내야 한다. 국내 우량기업은 국유화를 해서 위기를 피했다가 나중에 민영화하는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이 좋은 예인데, 산업은행이 일단 인수한 다음에 하나씩 민간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기간산업을 지켜냈다. 이런 해결책의 전제조건은 국가 재정 여력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2조2000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여기엔 기업 긴급대출, 중소기업 구제, 실업보험 확대 등의 대책과 더불어 연 소득 9만9000달러 이하인 국민에게 1인당 1200달러를 제공하는 ‘긴급지원금’도 담겼다.

우리 정부도 7조1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일부로 월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에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앞서 3월 17일 국회에서는 11조7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이 통과됐다. 최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지금 정부의 역할은 단지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 효율적 집행’을 통해 산업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긴급재난지원금이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정책이 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미국처럼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실제로 정책으로 옮겨졌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축통화국이 하는 행동을 우리가 다 흉내 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위기가 올수록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인 달러의 수요가 늘기 때문에, 미국은 돈을 얼마든지 풀어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부담이 적다. 부채가 많아지고 재정건전성이 나빠져도 또다시 달러를 찍어내면 된다. 위험자산에 속하는 원화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미국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가계 상황도 어려운데 긴급재난지원금을 왜 반대하냐’는 목소리가 높은데, 사실 실업자나 저소득층에겐 안전망 역할을 하는 기존 복지제도가 존재한다. 이들의 고충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이나 이후나 동일하므로 추가 지원할 명분이 없다. 우리가 걱정할 대상은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다가 이번 위기로 저소득 계층으로 잠시 전환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무차별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해선 안 되고, 꼭 필요한 곳을 선별해야 한다. 지금 돈을 다 써버리면 나중에 필요할 때 쓸 돈이 없어진다.”

기간산업과 재정건전성 이외에 주의 깊게 관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부동산이다. 시중 은행에서는 부동산 담보 대출을 많이 갖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확 떨어지고, 그러면 외국계 은행이 국내 은행에 크레디트 라인(credit line·미리 설정해 둔 신용한도)을 끊어버린다. 스칸디나비아가 이런 식으로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해왔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조언 부탁드린다.
“지금 산업 구조가 한·중·일이 거의 같고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 품질에선 일본에, 가격에선 중국에 밀려 우리 산업이 기를 못 펴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 구조를 어떻게 전환해야 하나’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이번 위기가 산업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꾸고, 불필요한 규제도 철폐해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소희·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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