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타나지브’ 원유 처리 시설. 사진 EPA연합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타나지브’ 원유 처리 시설. 사진 EPA연합

2월 5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주요 산유국 에너지 장관들이 모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14개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과 러시아·멕시코 등 10개국이 모인 협의체인 ‘OPEC 플러스’ 산하 기술위원회 회의를 위해서였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에 대비한 모임이었다. 실제로 연초 배럴당 70달러에 거래되던 국제 유가는 코로나19가 퍼진 이후 50달러 선마저 깨졌다.

예정된 일정을 넘겨 사흘간 회의가 진행됐지만, 이들의 만남은 끝내 합의안을 내놓지 못하고 마무리됐다. 추가 감산을 통해 유가를 통제하려는 사우디의 움직임에 러시아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은 “코로나19가 세계 원유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엔 이르다”며 합의를 미루고 있다. 기술위원회는 3월까지 하루 평균 210만 배럴씩 감산(減産)하기로 한 지난해 합의안에서 기한을 연말까지로 연장하고, 규모도 270만 배럴로 확대하는 안을 권고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후 OPEC은 올해 세계 원유 수요 증가폭 전망치를 하루 평균 99만 배럴로 19% 내려 잡았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와 산유국 내 영향력을 확대 중인 러시아는 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포인트 1│두 자원 부국의 서로 다른 속내

추가 감산을 요청하는 사우디와 달리 러시아가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경제 구조의 차이 때문이다. 나라 경제를 원유 생산에 기대고 있는 사우디는 석유 의존도에서 탈피하고, 2030년까지 정보통신기술(ICT)·신재생에너지 등 비석유 분야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비전 2030’으로 대표되는 개혁·개방 정책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 정부는 관광, 부동산 등 석유 이외의 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 유가다. 정부 지출을 감당하려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을 지탱해야 하지만, 현재 유가는 이를 한참 밑돌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9%로 내려 잡았는데, 여기엔 배럴당 55달러 수준에서 움직이는 유가가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는 “사우디는 코로나19 위기가 잦아들 때까지 OPEC 차원의 추가 감산이 불가능하면 홀로 하루 100만 배럴씩 더 감산하는 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러시아의 마지노선은 배럴당 50달러 수준이다. 유가 하락을 감내할 여력이 있다. 특히 지난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경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안정’에서 ‘성장’으로 옮기는 개각을 단행했는데, 이 역시 러시아의 감산 거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타스통신은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회장이 2월 11일 푸틴 대통령을 만나 “지난해 OPEC 플러스의 추가 감산으로 회사 원유 생산이 타격을 입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포인트 2│美 셰일 혁명으로 입김 약화

1973년 OPEC의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 등 서방에 금수정책을 취했다. 수출을 줄이고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국제 유가는 6개월 새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 치솟았다. 이른바 ‘오일 쇼크’다. 당시 세계 원유 소비의 30%를 차지하던 미국에서는 주유소마다 기름을 구하려는 차가 줄을 섰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20년 2월 12일. 댄 브루예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우리는 OPEC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관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30년, 40년, 50년 전에 했던 방식대로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OPEC의 쪼그라든 입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발언이다.

이처럼 OPEC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것도 내부 균열에 영향을 미친다. OPEC은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5개 석유 수출국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이후 카타르, 리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가세해 국제 유가를 쥐락펴락했다. 그러나 이후 OPEC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했다. 러시아, 중국 등 새로운 산유국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 세계 원유 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던 OPEC 비중은 2020년 현재 40%대까지 하락했다.

결정적인 원인은 2014년 이후 본격화한 미국의 ‘셰일 혁명’. 미국은 땅속 깊숙한 퇴적암층에서 원유(셰일 오일)를 채취하는 채굴 기술을 개발해 풍족하게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미국은 2017년 처음으로 사우디를 제치며 세계 1위 산유국이 된 이후 사우디와 1, 2위를 다투는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됐다. 지난해 7월 OPEC 플러스가 감산 연장을 결정했음에도, 유가가 오히려 하락한 것이 OPEC의 입김이 약화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포인트 3│‘유가 대처 안일했다’ 불신만 커

2018년 원년 멤버 카타르가 OPEC을 탈퇴한 것도 내부 균열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당시 친(親)이란 노선을 걸으며 사우디와 외교 갈등을 빚던 카타르는 아예 OPEC을 탈퇴하는 초강수를 뒀다. OPEC 회원국으로 얻는 실익이 줄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대외적으로 OPEC은 세계 유가가 급등락할 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2008년 국제 유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한 해였다. 7월 이란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나이지리아 무장 세력의 공격 등 중동에 지정학적 불안감이 커지자 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그해 말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까지 폭락했다. 블룸버그는 “OPEC 플러스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대신 ‘만나서 무엇을 합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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