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수지구 성복동의 아파트 단지. 인근에 신분당선 성복역이 들어섰지만, 대부분 성복역과 도보로 10분 이상 떨어져 있어 가격 상승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사진 이윤정 기자
용인 수지구 성복동의 아파트 단지. 인근에 신분당선 성복역이 들어섰지만, 대부분 성복역과 도보로 10분 이상 떨어져 있어 가격 상승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사진 이윤정 기자

김석현(55)씨가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위치한 경남아너스빌 1차아파트로 이사 온 건 지난 2007년이었다. 김씨가 사는 전용면적 129㎡(옛 48평형·이하 전용면적 기준)는 입주 직후까지만 해도 7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그 일대 고가 아파트로 꼽혔다. 그러나 국토부에 따르면 이 아파트 129㎡의 가장 최근 거래가격은 5억4200만원. 무려 2억원 넘게 떨어졌다. 신분당선 성복역이 들어섰지만 역까지 도보 거리가 꽤 되는 탓에 집값 상승 효과는 구경도 못 했다. 김씨는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사려는 사람도 없으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 시장이 호황기를 맞이하며 서울은 물론 인근 수도권까지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용인 수지·기흥구, 수원 팔달구에는 김씨와 같이 상승장 분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이들이 많다. 서울처럼 교통망이 촘촘하지 않다 보니 교통시설이 들어선다고 해도 그 영향을 받는 곳은 일부에 불과한 데다, 서울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탓에 수요까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이 세 지역을 대출, 양도세 중과 등의 규제를 받는 ‘조정대상지역’으로 2018년 12월 28일 새로 지정했다. 최근 이 지역 집값이 크게 상승한 데다, 앞으로 교통·개발 호재 등 시장 불안요인이 예정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를 두고 ‘통계 착시에 눈멀어 실제 시장 움직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규제’라고 지적한다. 아파트값이 떨어졌는데도 같은 행정구역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되거나, 거꾸로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작 가격이 오른 아파트는 제외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 같은 지적을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규제를 적용할 땐 해당 행정구역을 더 세분화한 뒤 문제가 발생한 지역에만 ‘핀셋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국토부는 용인시 수지구가 최근 1년간 누적상승률이 7.97%로 나타나 전국 비규제지역 중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신분당선, 용인~서울고속도로 확충으로 강남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 영향이 컸다. 그러나 국토부의 이 같은 분석은 수지구 중에서도 일부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다. 수지구 죽전동 H부동산 관계자는 “죽전동엔 지하철역이 분당선 죽전역 하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며 “지난해 남들 다 오를 때 이곳 주민들은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할 정도였는데, 이런 곳까지 조정대상지역으로 한꺼번에 묶어서 지정한 것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시 기흥구 주민들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들어서는 구성역 주변과 새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선 기흥역 주변 등만 상승했을 뿐, 나머지 지역은 제자리걸음 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기흥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전년 말보다 6.4% 상승했는데, 이는 구성역이 위치한 마북동(15.54%)과 기흥역이 있는 구갈동(7.68%) 영향이 컸다. 반면 동백지구로 유명한 중동의 경우 1.35% 오르는 데 그쳤고, 상하동은 오히려 1.42% 하락했다.

수원은 길 하나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팔달구와 장안구, 영통구는 좁은 도로나 단지 사이로 행정구역이 나뉘는데, 이 중에서도 팔달구만 규제를 받게 된 것이다. 지난해 5월 최고경쟁률 27.75 대 1로 분양에 성공한 이후 1억원 이상 웃돈이 붙어 거래 중인 ‘화서역 파크푸르지오’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는 주변 지역 아파트값을 끌어올렸지만, 도로 하나 차이로 장안구에 속해 규제를 피했다. 반면 이곳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화서주공3단지는 팔달구에 속해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다. 이 아파트는 화서역 파크푸르지오의 영향으로 84㎡ 가격이 지난해 연초에 비해 1억원 가까이 올랐다.

분당선 매교역 일대 재개발사업지 역시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팔달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로 ‘인계·우만동 정비사업 진행에 따른 투자수요 유입’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 역시 행정구역 구분 탓에 규제를 비껴간 곳이 생겨난 것이다. 권선구 세류동 M부동산 관계자는 “팔달 재개발이라 하면 매교역 인근에 모여있는 팔달6·8·10구역과 권선6구역까지 총 4개 구역을 가리킨다”며 “이번 조정대상지역에서 권선6구역이 길 하나 차이로 규제를 피하게 되면서, 앞으로 팔달구 재개발 수요가 권선6구역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분별 규제 피해, 결국 실수요자 부담

획일적인 행정구역 구분에 따라 무차별적 규제를 가할 경우,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실수요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페널티가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거래량이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투기가 아닌 정상적 거래까지 위축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량이 뚝 떨어지는 ‘거래절벽’이 지속될 경우, 집을 팔고싶어도 못 파는 것은 물론 가격까지 급락할 수 있다. 수지구 죽전동에 거주하는 이정숙(51)씨는 “노후준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아 은퇴 후엔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을 받으려고 계획 중인데,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 받을 수 있는 연금 액수도 줄어든다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를 시행할 땐 행정구역을 보다 세밀하게 나누고 면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며 “이 때문에 규제 대상지역을 지정할 땐 구 단위가 아닌 동 단위까지 낮춰 맞춤형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용인 수지·기흥, 수원 팔달은 장기간 투기가 만연할 만한 지역이 아닌 데다, 이미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해당 지역의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상승세가 계속될 만한 지역인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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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대상지역 최근 3개월간 주택 가격 상승률이 해당 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한 지역 중에서 최근 2개월간 청약경쟁률이 5 대 1을 초과했거나, 최근 3개월간 분양권 전매(轉賣)거래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증가한 지역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대출 제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Plus Point

부동산 ‘핀셋규제’가 어려운 이유

국토부가 구 단위로 규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이용 가능한 통계 중 ‘구’ 단위가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위한) 요건을 판단하려면 통계청 승인을 받은 인증된 지표를 사용해야 하는데, 현재 이용 가능한 통계는 시·군·구 단위가 전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 단위 통계 산출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동 단위로 통계를 발표할 수 있는지 검토했지만, 이 경우 통계 작성을 위한 표본이 훨씬 많이 필요한 데다 표본 설계도 처음부터 새로 해야 한다”며 “지금 표본은 시·군·구별로 유의성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 단위 통계를 마련하려면 비용 투입 대비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와 시·군·구 단위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