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가 폭락했다. 일본 주식시장의 하락세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장기투자자들은 주식이 상승하든 하락하든 상관없다. 올라가면 올라간 대로 좋고, 내려가면 계속 사두면 된다.”

‘일본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70) 사와카미투자신탁 회장이 10월 12일 뉴욕 증시 폭락 이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사와카미 회장은 “이런 증시 폭락이 주가가 오르는 흐름을 타고 주식을 대량 매수한 단기투자자에겐 고민이 되겠지만 평소 투자 대상 종목을 엄선해온 장기투자자에겐 매입 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일본의 초저금리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줄곧 하향세였던 주식시장에서 살아남은 백전노장이다. 그가 1999년 만든 사와카미 펀드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8.1%에 달한다. 올해 8월 기준 자산 규모는 3100억엔(약 3조1300억원)으로 일본 내 주식형 펀드 중 두 번째로 크다.

‘가치 있는 자산을 낮은 가격에 산 뒤 높은 가격에 되팔아 수익을 얻는다.’ 사와카미 회장의 기본 투자 원칙이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생활(生活) 주식’에 투자한다. 사람들은 호황기에도 불황기에도 매일 입고 먹고 씻고 바르며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생활과 연관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을 골라 투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해당 기업 경영자의 철학이나 경영 방식이 이기적인 곳엔 투자하지 않는다. 사와카미 펀드가 투자하고 있는 주식을 살펴보면 브리지스톤(타이어), 도요타(자동차), 가오(화장품), 일본전산(모터·정밀부품), 토토(생활용품) 등이 상위 투자 종목에 올라가 있다.


증시 폭락에도 신흥국 투자 늘린 버핏

10월 10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주요 3대 지수는 미 국채 금리 상승 부담과 기술주 실적 하락 우려가 겹치면서 일제히 급락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증시 폭락 여파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신흥국까지 세계적인 증시 불황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 가치를 꼼꼼히 따지고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하는 세계적인 가치투자자들은 평온하다. 실적 우려로 그간 고공행진 했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시장이 휘청거리는데도 이들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기업의 가치에 믿음을 둔 투자 전략인 ‘가치투자’의 장기가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주식시장의 폭등이나 폭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기업 가치에 따라 자신의 원칙과 신념에 맞는 투자를 고수해 블랙먼데이, 오일쇼크, 닷컴버블과 같은 위기를 이겨내고 성공했다.

‘투자 귀재(鬼才)’로 불리는 워런 버핏(88)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이번 세계 증시 폭락 이후인 10월 29일 브라질의 신용카드 결제 처리기 회사 ‘스톤코’와 인도 최대 전자결제 업체 ‘페이티엠’의 지분 약 6억달러(683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증시 불안으로 신흥국 투자가 꺼려지는 상황에서도 기업 가치를 평가해 투자를 단행했다. 첫 거래일 이후 스톤코 주가가 30% 이상 오르면서 버크셔해서웨이는 단기간에 1억달러(1100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버크셔해서웨이는 48개 회사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보유 가치는 1910억달러(약 217조원)에 달한다.

그는 ‘위기를 기회’라고 보는 대표적인 투자자다. 버핏 회장은 “증시 불황은 투자자가 나중에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주식을 저렴하게 살 기회”라며 “그런 기업에 5·10·20년,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수익 면에서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 회장은 앞서 세계 경제가 대침체의 어둠에 빠졌던 시기, 미국 경제에 올인해 성공한 바 있다. 그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한창이던 2007년 미국 대형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을 포함해 금융주를 대거 매입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골드만삭스 주식 50억달러어치를 매입했다. 2011년에는 웰스파고 주식을 사는 등 금융주 비중을 계속 늘렸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6년 버크셔해서웨이 주가는 23% 급등했다. 금융 규제 완화에 따른 은행주 급등 덕분이었다.

연간 16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레이 달리오(69)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 역시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꼽힌다. 헤지펀드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헤지펀드 업계가 유럽 재정위기로 대부분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던 2011년 나 홀로 2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는 이번 미국 증시 폭락에 앞서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호황이 된 미국 경제에 앞으로 2년 내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면서 “이런 시기의 투자법은 각국 경제 상황을 반영해 균형 잡힌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1년 브리지워터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불황지수(depression gauge)’를 토대로 균형 잡힌 투자 전략을 구사해왔다. 불황지수는 미시 지표(개인과 기업의 부채 증가세)와 거시 지표(금리와 주식의 급락)를 종합해 경기불황을 판단하는 지수다. 예를 들어 브리지워터는 기준금리가 0%에 가까운 수준이 되면 더 이상 지표로서 금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금리와 관계된 상품 포지션을 줄여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다. 이런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힘입어 브리지워터가 지난 20여 년간 12% 이상의 손실 폭을 기록한 적은 단 두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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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Value Investing) 기업 가치(순자산 가치, 성장 가치, 수익 가치 등)보다 현재 주가가 낮게 책정된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투자 전략.

plus point

“대내외 불확실성, 낮은 배당수익률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11월 1일 기준 코스피지수가 2거래일(코스닥지수는 3거래일) 연속 오르면서 회복세를 보였지만 국내 주식시장에는 아직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글로벌 증시 하락장에서 유독 한국 증시의 낙폭(落幅)이 크게 두드러지면서 증시 추가 하락의 공포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10월 1~30일 코스닥지수 등락률은 -23.4%로 미국 다우지수(-7.6%)는 물론 일본(-12.3%), 대만(-13.5%)보다도 골이 깊었다.

전문가들은 유독 한국 증시가 크게 떨어진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우리나라 기업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 주가보다 낮게 형성돼 있는 현상)’를 꼽는다. 국내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꼽히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북핵 문제, 미·중 무역전쟁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반기업 정서나 정책 탓에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 등은 외국인이 한국 기업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기업 이익이 늘었는데 주가지수에 반영되지 않는 현상도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과 비교해 코스피시장 상장사의 순이익은 두 배 정도 증가했지만 주가는 그만큼 오르지 못했다.

인색한 배당도 한국 증시의 매력을 낮춘다. 장기투자자를 시장으로 불러들이려면 배당이 많아야 하는데, 배당 성향이 낮다 보니 증시가 제값을 못 받는다는 지적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국 기업들의 배당수익률은 2%대 초반으로 글로벌 주요 국가 중 가장 낮다”며 “배당을 늘려야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이 경기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반도체·조선·화학·소재 쪽에 몰려 있다는 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일각에선 주식 투자 때 한국 기업을 고려하지 않는 ‘코리아 패싱’의 주체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9월 말 기준 외국인의 국내 상장 주식 보유 규모는 597조원(전체 시가총액의 31.5%)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만 패싱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이라며 “자국 기업에 투자해 기업과 나라가 함께 성장하는 외국의 투자 문화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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