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된 서울 금천구 난곡동(왼쪽)은 단순히 마을 정비에 그칠 예정이다. 반면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 지구(오른쪽)는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국제업무지구로 재탄생했다. 사진 연합뉴스
올해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된 서울 금천구 난곡동(왼쪽)은 단순히 마을 정비에 그칠 예정이다. 반면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 지구(오른쪽)는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국제업무지구로 재탄생했다. 사진 연합뉴스

올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지로 전국 99곳이 새로 선정됐다. 투입 자금은 총 7조9000억원. 정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생활인프라 공급에 앞장설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막대한 자금 투입이 ‘예산 나눠주기’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후 지역을 하루빨리 정비해 국제 기준 도시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려야 할 서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며 소규모 사업에 한해 선정되는 데 그쳤다. 민간 자본이 사업을 주도해야 지속적 개발이 가능하고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 파급효과를 낼 수 있지만, 지금은 재정 지원이 대부분이라 일회성 마을 정비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8월 31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제13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고 전국 99곳을 ‘2018년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도시재생은 산업쇠퇴, 인구감소 등으로 활력이 떨어진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노후주택·기반시설 정비, 임대주택 공급, 주민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5년간 50조원을 쏟아부어 전국 500곳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사업 선정 대상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부동산 수요가 적고 사업 규모도 작은 곳만 주로 선정돼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의 경우 부동산 수요가 적고 사업 규모가 작아 집값 급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낮은 7곳(중랑구 묵2동·서대문구 천연동·강북구 수유1동·은평구 불광2동·관악구 난곡동·동대문구 제기동·금천구 독산1동)이 선정됐다. 이들 지역에서 실시되는 사업은 CCTV·무인택배함 등 생활밀착형 소규모 편의시설이 설치되거나(우리동네살리기형), 저층 단독주택지역의 도로와 주택 등을 정비하거나(주거정비지원형), 노인·청소년 등 지역민을 위한 문화서비스 공간이 설치되는(일반근린형)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부동산 과열 조짐 현상이 보이면 중단된다.

반면 강원도 태백시의 경우 올해 99곳 중 3곳에 불과한 ‘경제기반형(도시재생사업 유형 중 가장 대규모로 이뤄지는 사업 유형)’ 사업 가운데 한 곳을 따냈는데, 이곳은 2273억원을 들여 폐광시설을 광산테마파크 등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또 폐광 개발이냐’는 얘기가 나온다. 1997년부터 2016년까지 19년간 강원도 폐광지에 투자된 개발사업비는 총 2조7049억원에 달하는데, 같은 기간 폐광지 인구는 18만명에서 14만명으로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 우려 때문에 서울 노후 지역을 개발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지적한다. 소규모 ‘마을재생’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경제의 ‘마중물 효과’를 크게 낼 수 있는 서울 등에서도 과감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후보지 여러 곳이 탈락했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에 잠시 배제하는 것일 뿐 아예 사업 추진을 접은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개발을 미루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과 똑같다. 도시재생기준을 대폭 완화해 공급을 늘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은 다시 해당 지역에 재투자해 노후 도심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 자본 주도 통해 경제 효과 키워야

도시재생사업을 민간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경제적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남은경 경제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 팀장은 “도시재생의 원래 취지는 지역적 낙후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경제·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므로 주민 또는 민간기업이 함께하는 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선정된 도시재생사업지 99곳 중 민간에서 신청·제안한 사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각 지역 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이 신청한 15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각 지자체가 사업 신청부터 모두 주관하고 있다.

투입되는 사업비 성격 역시 마찬가지다. 총 7조9111억원의 사업비 중 민간에서 투자하는 돈은 1조8773억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23.7%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업비는 국비(국토부 예산) 9738억원, 지방비 2조1319억원, 공공기관 투자 1조2261억원, 주택도시기금 3966억원 등 세금과 공공자금으로 충당된다.

남 팀장은 “정부 재정으로만 이뤄지는 도시재생사업의 경우, 사업에 명시된 공공시설만 완공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연속성 있는 도시 개발은 물론 장기적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정반대 모습을 보인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준공되는 도쿄 시내 개발사업은 총 325개에 달한다. 이 중 면적 기준으로 약 60%는 2016년까지 3년 만에 완공됐다. 원동력은 민간 자본에서 나온다. 도시 재생시대로 접어든 뒤, 일본 지자체의 역할은 민간의 힘과 지혜를 살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최소한의 감시·감독만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반면 디벨로퍼의 역할은 전보다 커졌다. 일본의 디벨로퍼들은 각각 사업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지역들이 있는데, 자신들이 많은 땅을 보유한 ‘주력 지구’가 있어 책임감을 갖고 지역을 개발하고, 운영·관리한다.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케이스로 꼽히는 마루노우치 지구 역시 일본 4대 디벨로퍼 중 하나인 미쓰비시 에스테이트가 주도한 것이다. 마루노우치 지구는 도쿄 왕궁과 도쿄역 사이에 위치해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지만, 왕궁 근처인 탓에 고도제한에 걸려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도시재생특별법을 만들어 마루노우치 재생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미쓰비시 에스테이트는 2002년 미쓰비시그룹 본사 건물인 ‘마루빌딩’ 재개발을 시작으로 2007년 신마루빌딩, 2009년 파크타워, 2013년 중앙우체국 재개발, 2016년 호시노야호텔 오픈까지 연달아 이끌어내면서 마루노우치를 새로운 국제업무지구로 재탄생시켰다.

전문가들은 일본식 민간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센터장은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의 경우 인프라 개선 등은 공공 분야가 주도해야겠지만, 오피스 개발 등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민간기업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현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에도 민간기업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해선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