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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없는 오너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기업 성공 이끌어


- 일본에서는 이병철 회장의 수직계열화가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정주영 회장의 에피소드도 많이 알려져 있다. 1982년 산업 시찰을 위해 이병철(왼쪽)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오른쪽) 현대그룹 회장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2015년은 한·일 수교 50주년의 해다. 양국 간의 관계를 정치외교가 아닌 기업 간 관계에서 본다면 그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식민지 시절에는 많은 기업가들이 왕래를 하고 있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의 왕래가 끊긴 후 수교가 되기 전까지는 한국인 기업가만이 왕래를 했을 뿐이었다. 일본에서는 주로 재일한국인 기업가만이 한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해방으로부터 20년 후인 1965년에 한일국교 정상화가 실현되고, 이를 계기로 20년 만에 일본인 기업가들이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됐다. 한국진출의 동기는 다양했으며 한국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다.

‘한국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로 평가받는 이병철 회장
당시 한국 진출의 목적은 주로 저임금 노동력 이용이었으며, 합작형태로 많은 기업이 탄생했다. 한국이 중요한 생산기지가 된 것이다. 한편 한국기업 관계자들도 자주 일본으로 오게 되고 기술과 경영에 대해 다양한 요소를 흡수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기업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존재였으며 배움의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한국기업들이 일본기업을 단순히 모방하는 단계에 머물렀지만, 전략적 사고와 함께 독자적인 생산체계를 가지게 된 경우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시도한 전자산업 분야의 신규진출이다. 삼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한 1969년 당시, 선발업체로 금성사와 대한전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후발기업으로 진출한 삼성은 일본 산요와 NEC와의 제휴관계를 통해서 그룹 내에 각종 부품기업과 완성품 제조기업을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그룹 내에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금성사와 대한전선 역시 일본기업들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이러한 수직계열화라는 전략적 사고는 없었다. 이병철 회장이 가지고 있던 전략적 사고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삼성과 쌍벽을 이룬 현대도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잘 알려진 기업이다. 창업자 정주영 회장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과거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자동차와 자본·기술면에서의 협력관계에 있었다. 해외수출용 자동차의 품질은 미쓰비시와의 제휴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한다. 자동차산업 이외에 건설과 조선 등 중공업 분야를 주력사업으로 하는 현대의 경우, 정주영 회장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가 일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같은 창업자가 활약한 시대는 한국이 선진국을 목표로 전속력으로 달리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들의 말년에는 한국기업이 일본기업의 경쟁상대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그리고 현대의 소형차 사업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급성장하는 한국경제의 상징으로 인식돼 있다.

이러한 창업자들은 일본에서 어떻게 평가됐을까. 삼성과 현대는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이었지만 그 사업구조와 기업문화는 크게 다르고, 창업자의 스타일도 차이가 뚜렷했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야말로 기업경쟁력의 근원이라 생각하며 일찍부터 공채제도를 도입해 대졸 신입사원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이병철 회장은 ‘한국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라고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후계자로 일찍부터 3남인 이건희를 지명하는 한편, 비서실과 사장단회의 등 그룹의 관리 및 통제를 담당하는 조직을 강화시켰다. 이병철의 장남과 차남은 한때 그룹경영에 관여하고 있었지만 결국 후계자 후보에서 배제됐다. 그룹 총수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었으며, 이병철 회장은 경영능력의 유무를 판단한 것이다. 아들에 대해서도 경영자로서의 엄격한 자세로 대한 것이다. 인재를 중시한다는 의미는 아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평가될 부분이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의 거물 기업인들과도 넓은 교류를 했는데,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와의 깊은 관계는 한·일 간의 정치, 외교를 뒤에서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적도 있었다.

정주영 회장의 경우 현대그룹의 얼굴뿐만 아니라 1970년 후반부터 재계 총리(전경련 회장), 서울올림픽 유치책임자 등의 활동을 통해 한국경제의 얼굴로 일본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그 후 정주영 회장은 정계에 진출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나 실패, 정치활동은 큰 실패로 끝나게 됐다. 다시 기업가로 활동하게 됐는데, 만년은 북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남북교류의 큰 흐름을 만드는 한편, 그룹경영이 크게 기우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가 후계자 선정의 지연이다. 정주영 회장 자신은 대가족 가장으로서의 카리스마로 가족 전체를 장악했다. 그리하여 세대교체에 대한 준비가 결정적으로 늦어진 것이다. ‘왕자의 난’으로 알려진 아들들 간의 경영권다툼이 집안소동으로 발전하며 결국 현대그룹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 여러 그룹으로 분리됐다. 혈연 중심의 가족경영이 갖는 부정적인 부분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두번째 줄 오른쪽)은 한·일관계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일 관계의 단면 보여주는 박태준 명예회장
다른 재벌창업자로 일본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 롯데그룹의 신격호(일본명:시케미쓰 다케오) 회장이다. 오랜 일본 비즈니스 후 조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일 양국에 걸쳐 거대한 기업집단을 세웠다. 일본에서 롯데란 이름은 과자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일본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과자로 시작해 백화점, 호텔, 종합유원지 등 서비스, 유통, 그리고 금융에 이르기까지 넓은 사업분야에 진출했다.

신격호 회장은 1970년대 말 신규사업으로 롯데백화점을 창업할 때 일본인 유통 전문가를 간부로 스카우트해, 일본식 경영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백화점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타 금융부분과 거대화된 사업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에는 일본인 경영자를 스카우트하는 등 유능한 인재의 육성과 함께 외부인재의 발탁도 중시했다.

재벌 중 마지막 창업자가 된 신격호 회장에 있어서도 후계체제 만들기가 큰 과제가 되고 있었다. 예전부터 장남은 일본사업, 차남은 한국사업을 각각 담당시켜 왔고 자신은 총괄회장으로 그룹전체를 봐 왔다. 2011년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그룹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일단 후계자 지위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2014년 말,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이 일본사업 총괄지위에서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해임사태는 부친인 신격호 회장이 장남의 경영능력을 엄격하게 판단한 결과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격호 회장의 경우에도 이병철 회장처럼 인사에 대해서는 아들에게도 타협이나 예외가 없다는 자세가 엿보인다. 당연하지만 창업자로서, 또 기업가로서 자신의 기업에 많은 애정과 깊은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계자에 대해 한층 더 엄격한 것이었음이 틀림 없다.

그런데 재벌기업 이외에도 일본에 잘 알려진 경영자로 박태준 포스코 창업자를 꼽을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1961년 군사혁명에 참가한 군인 출신인 박태준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을 창업하고 ‘철의 남자’로 한국 철강산업을 선도한 인물이다. 일본에서 포항제철 창업의 역사는 언급될 기회가 많지 않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일본의 정계, 관계, 재계 인사들과 인맥관계를 만들고 대일 청구권자금을 이용해 창업을 준비했다. 심지어 신일본제철 등에서 전면적인 협력지원을 획득하는 등 한국 철강산업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활약은 귀중한 한·일 관계사의 일면을 말하고 있다. 포항종합제철은 이후 민영화돼 세계굴지의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박태준 명예회장도 정치권에 진출해 당시 여당의 중진으로 활약했고, 또 국무총리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포항제철 창업자 박태준의 이름은 한·일관계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일본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으로 오너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왼쪽)과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꼽는다.

한국 기업은 중요한 연구대상
1997년 한국은 IMF 외환위기에 직면했는데, 당시 ‘30대 재벌’의 절반 이상이 경영파탄에 이르렀다. 중소재벌은 물론 5대 재벌 중에서도 대우그룹 같은 경우는 사실상 그룹이 해체됐다. 경제재건 속에서 모든 재벌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재벌이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돼 한국 사회에서 엄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의 급진적인 구조조정과 재벌개혁은 글로벌기업으로의 훈련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개혁을 주도한 오너 경영자야말로 높은 경쟁력을 가진 최고경영자로 성장한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이며,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창업자인 친부(親父)로부터 그룹을 승계 받으면서도 각각 전자와 자동차를 핵심사업으로 하는 새로운 거대기업집단을 만든 것이다. 그들은 단순한 ‘2세 경영자’가 아니다. 계승자이자 창업자인 측면은 그들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가 될 것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경영을 통해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서는 반도체, 액정, 스마트폰 등 글로벌 IT(정보기술)분야에서 최고기업이 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서 상위그룹에 들어간 현대자동차에 대해 급성장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당한 경쟁상대가 된 한국기업들은 중요한 연구대상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관심은 거대재벌의 핵심기업으로서의 경영적 특성, 심지어 오너경영자인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에 대한 관심 등 모든 측면에 관한 깊은 관심으로 연결되고 있다. IT분야에 조예가 깊은 이건희 회장은 일본기업을 따라잡고 추월하는 데 성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너경영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이면서 카리스마를 갖춘 세계적인 기업인이며 삼성그룹의 총수로 한국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정몽구 회장 역시 한국 최대급 재벌의 총수이며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오너경영자인데, 그의 경우는 철저하게 현장중시, 품질중시의 자세를 취하고 독특한 인사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오너경영자라면 주로 중소기업에서만 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가 거의 예외 없이 샐러리맨 경영자인 전문경영자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도 재벌이란 경영형태가 현재 일본 대기업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창업자가족이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구조를 이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글로벌시장에서의 성공을 재벌형태로 관련시켜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오너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차지한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종 비리나 2014년 연말의 ‘땅콩회항사건’처럼 재벌형태가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사실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양국 기업의 과제
한국에는 한국고유의 경영풍토가 있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기업이든 일본기업이든 같은 공간, 즉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승리하기 위해서는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진정한 경쟁력을 가져야 하며, 글로벌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의미로 가족경영의 논리와 글로벌기업으로서의 경영논리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야나기마치 이사오(柳町功)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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