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는 담배가 올리브색의 통일된 담뱃갑에 커다란 경고문구와 사진이 인쇄돼 판매된다. 사진은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의 말보로 골드 패키지. 왼쪽은 담뱃갑이 통일되기 이전의 모습. 사진 블룸버그
호주에서는 담배가 올리브색의 통일된 담뱃갑에 커다란 경고문구와 사진이 인쇄돼 판매된다. 사진은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의 말보로 골드 패키지. 왼쪽은 담뱃갑이 통일되기 이전의 모습. 사진 블룸버그

호주는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한 국가로 유명하다. 2008년 호주 정부협의회(COAG)는 2018년까지 흡연율을 10%까지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의 강력한 금연 정책으로 호주 담배 가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시장 조사 업체 눔베오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호주의 담배 가격은 말보로 20개비 한 갑 기준 20.71달러(약 2만4400원)다. 한국의 담배 가격은 세계 53위로 3.81달러(4500원)다. 한국에서 담배를 다섯 갑 사는 돈(3.81×5=19.05달러)으로 호주에서는 담배를 한 갑도 사지 못한다.

가격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도 규제가 심하다. 호주에서는 면세점 등을 제외하곤 담배를 진열하고 판매하지 못한다. 손님이 요청하면 주인이 담배를 창고에서 꺼내 판매한다. 담뱃갑은 브랜드에 관계없이 올리브색으로 통일돼 있고, 경고 문구와 그림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담배의 상품성을 지우기 위한 호주 정부의 노력이다.

그런데 호주의 ‘담배와의 전쟁’에 걸림돌이 등장했다. 바로 세계적으로 애연가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전자담배다. 전자담배는 영국·미국·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에서 기존 담배보다 위해성이 덜하다고 홍보하면서 금연 치료제로 권장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역으로 비흡연자나 금연을 결심한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금연 정책이 추진력을 잃을 것으로 판단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주는 기존법을 내세우면서 액상형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니코틴 액상 유통을 차단하고 있다. 호주 연방의료제품청(TGA)의 1989년 규제에 따르면 니코틴은 ‘위험한 독극물(dangerous poison)’로 분류된다. 호주에서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니코틴 판매는 불법이다. 이마저도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니코틴 액상은 호주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하기 어렵다. 개인이 해외에서 니코틴 액상 3개월 치를 TGA의 허가 아래 개별 수입해야 한다.

다만 무(無)니코틴 전자담배는 TGA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액상을 흡연자가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다. 이 액상의 니코틴 농도를 ‘0’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이를 무니코틴 전자담배라 부른다. 무니코틴 액상 카트리지나 전자담배 기기는 호주에서도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 무니코틴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상 전자담배로 분류되지 않고, 약사법상 ‘전자식 흡연욕구저하제’로 불린다. 흡연 욕구를 저하하는 대체재로 간주될 만큼 무니코틴 전자담배는 위해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규제가 철저하다. 예컨대 무니코틴 전자담배를 ‘니코틴 치료제’라고 소개하면 안 된다. 니코틴 치료제는 패치, 구강 청결제, 껌 등으로 제한하는 것이 방침이다.


호주에서 니코틴은 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가 불가능하다. 무니코틴 전자담배만 호주에서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다.
호주에서 니코틴은 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가 불가능하다. 무니코틴 전자담배만 호주에서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다.

전자담배 기기, 담배 모양 본뜨면 불법

이외에도 무니코틴 전자담배는 주(州)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호주의 8개 주 중에서 노던 준주를 제외하고는 무니코틴 액상이나 전자담배 기기를 홍보하거나 판매대에 진열하면 처벌받는다. 또 6개 주에서 흡연 구역 이외 지역에서는 무니코틴 전자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는 전자담배 기기가 담배의 모양과 비슷해도 안 된다. 전자담배가 흡연을 연상시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담배 회사들은 호주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자담배 전면 합법화를 요청하고 있다.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PMI)과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는 지난 4월 호주 의회에 전자담배 합법화를 위한 조사를 요청했다. 전자담배를 사실상 ‘악’으로 규정하고 의학 조사가 더딘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호주 정부도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놓였다. 호주 정부는 현재 전자담배에 대한 실질적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호주에서는 해외 구매를 통한 전자담배 암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서 전자담배를 구입해 들여오는 경우가 증가하는 것이다. 호주의 보건복지연구소(AIHW)는 2016년 기준 23만9000명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측정했다.


plus point

[Interview] 전자담배 찬성론
“나는 범죄자입니다” 호주 정치인의 고백

피오나 패튼 호주 섹스당(현 이유당) 창당, 패션 업체 ‘보디 폴리틱스’ 대표, 빅토리아 주의회 노던 메트로폴리탄 지역구 재선 의원
피오나 패튼
호주 섹스당(현 이유당) 창당, 패션 업체 ‘보디 폴리틱스’ 대표, 빅토리아 주의회 노던 메트로폴리탄 지역구 재선 의원

“안녕하세요. 나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범죄자입니다. 전자담배를 피우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6회 글로벌니코틴포럼에서 한 호주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다. 70여 개국에서 온 의사, 과학자, 사회 복지사 등이 모인 자리였다. 이들 대부분은 연회장에서 전자담배를 피웠고, 공기 중에는 희미한 수증기가 은은히 퍼져 있었다.

이날 발언한 호주 정치인은 호주의 진보 정당인 이유당(Reason Party) 대표 피오나 패튼(Fiona Patten·55)이었다. 그는 빅토리아주 의회의 재선의원으로 전자담배 합법화에 힘쓰고 있다. 피오나 패튼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호주 정부가 전자담배를 사실상 금지하면서 흡연가들의 선택권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10대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흡연가다. 호주의 흡연 가능 연령은 만 18세 이상이다.


호주 정부가 전자담배 강경책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 예방 운동가와 금연 운동가가 호주 정부의 흡연 정책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금연이 ‘의지’와 ‘금욕’의 영역이라고만 주장한다. 이들에게 흡연가는 자제력 없는 유해한 사람일 뿐이다. 이들은 전자담배의 공급자인 담배 회사 또한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금연 운동가들은 담배 회사를 수십 년간 적으로 생각했지만, 이제 그들과 협력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전자담배 완화책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이 바로 알맞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의 금연 정책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경하고, 흡연율은 그만큼 효과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흡연율의 감소세가 줄어들면서 정체기에 다다랐다. 담배를 단번에 끊어버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 담배를 대체할 만한 수단을 통해 흡연율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

호주의 흡연율은 2004년 21%에서 2014년 14.5%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2017년 조사 결과 흡연율이 13.8%로 3년 전과 유사한 수준에 머물렀다. 뉴사우스웨일스주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흡연율은 같은 기간 반등하기까지 했다.

니코틴 전자담배 이용 현황은 어떠한가.
“호주에서는 니코틴 액상 수입이 불법이지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는 차라리 니코틴 유통을 합법화해서 안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니코틴이 위험 물질이 맞기 때문에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한 아이가 니코틴 액상을 병에서 꺼내 먹고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이 니코틴병을 열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없었던 탓이다.”

앞으로 계획은.
“니코틴 전자담배의 합법화를 위해 법안 개정을 수없이 시도했다. 전자담배의 긍정적 효과를 정부에 알리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애연가 집단을 상대로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측정하는 건강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소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