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미들의 네트워크 1│서울 성북동에 사는 이지연씨는 임신 8개월에 접어들자마자 한남동에 있는 A 요가원의 ‘산전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 이씨가 3개월에 60만원이라는 비싼 수업비를 내고 등록한 이유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톡방’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A 요가원은 서울 청담동과 압구정동·한남동, 경기도 분당 네 곳에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산전 요가 수업도 반응이 좋지만, 이씨 같은 ‘예비 엄마’ 사이에서는 임산부 카톡방이 더 유명하다.

500명 남짓의 요가원 회원이 들어가 있는 이 카톡방에서는 임신·출산·육아 관련 정보들이 오간다. 아이를 낳으면 ‘출산방’이라는 또 다른 카톡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에 맞춰 오가는 정보의 수준이 달라진다.

카톡방에서 공유되는 정보가 대형 맘카페 등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인기가 좋은 것은 소득 수준이 높은 몇몇 동네에서만 운영되는 ‘폐쇄적인 네트워크’라는 점 때문이다. 맘카페와 비교해 대화 형식인 특성 때문에 ‘필요한’ 정보가 ‘더 빨리’ 돈다는 장점도 있다.

이씨는 “소득 수준이 비슷한 엄마들이 공통 키워드인 ‘육아’를 놓고 정보를 나누다 보니 말이 잘 통한다”고 했다. 같은 카톡방에 참여하고 있는 B씨는 “새것 같은 중고 물품을 싸게 내놓으면서 서로 더 가까워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주미들의 네트워크 2│이씨처럼 아이를 낳기 전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더라도 ‘고퀄(질 좋은)’ 엄마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 바로 산후조리원에 같이 있었던 엄마들과 모임, 이른바 ‘조동모임(조리원 동기 모임)’이다. 출산 직후 2주간 머물며 몸을 회복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곳에서 만나 같은 기간 잠시라도 마주쳤던 엄마들은 ‘육아’를 키워드로 빠르게 결속한다. 조동모임도 보통 카톡창으로 인연을 이어 간다.

5세 남아를 키우는 워킹맘 이수미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조동모임에 나간다. 강남에서 유명한 5대 산후조리원 중 한 곳에서 만난 또래 엄마들이 만든 모임이다. 각자 방에서 머무르느라 막상 조리원 안에서 함께 어울린 시간은 짧았지만, 비슷한 시기 아이를 낳고 같은 조리원에서 지냈다는 동질감으로 똘똘 뭉친다.

이 조리원의 2주 이용 금액은 650만원.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18 산후조리원 이용 가격 평균(220만원)의 3배에 가깝다. 하지만 이씨는 이곳의 서비스보다 여기서 얻은 인연을 고려하면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이씨는 “아이 교육부터 맛집·카페·쇼핑 등 온갖 것들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교류한다”고 말했다. 이씨와 조동모임 친구들은 벌써 두 차례 일본 도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조동모임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사례는 2년 전 국내에서 가장 비싼 조리원 중 하나인 C 조리원 출신들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다. 당시 이곳에서 산후조리 서비스를 받은 한 이용자가 이곳을 거쳐 간 106명의 이용자들을 모았다. 이들은 당시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에 모여 자선 바자회를 열었고,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빠르게 공유되기도 했다.


아주미들의 네트워크 3│조리원 동기 모임에 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전국구 단위부터 지역별로 세분화된 맘카페,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순으로 이어지는 엄마 네트워크가 있다. 요즘 가장 ‘핫’하다고 알려진 서울 일부 지역 맘카페들은 1000명 남짓 모인 카톡방을 따로 운영하기도 한다. 단체 카톡방 정원이 1000명으로 제한되는 탓에 누군가 이사 등의 이유로 빠져나가야 겨우 ‘입성’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자가 줄을 선다.

이 때문에 워킹맘들은 이런 기회마저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서재희씨가 그런 사례다. 일하는 엄마이다 보니 각종 정보에 어두웠던 탓에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아이 친구 엄마들이 모여 활동하는 카톡방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한다. 서씨는 “엄마들 카톡방에 들어가기 위해 주말은 일부러 아들과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들이 가는 등 다른 엄마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아주미 인플루언서’가 이 시장 주도

요즘 30~40대 ‘아주미’들이 주도하는 네트워크가 진화하고 있다. 아주미는 결혼했지만 아직은 ‘아줌마’라는 단어가 어색한 젊은 엄마 세대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올해 소비 시장 트렌드 중 하나로 꼽은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자신을 꾸미고 계발하는 데 적극적이다. 과거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어머니가 ‘미시(missy·아가씨 같은 주부를 뜻하는 말)’로 진화했다면, 2019년의 아주미들은 이들 못지않은 소비력을 자랑하면서도 ‘핀셋 소비’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핀셋 소비는 ‘아이’ ‘나’를 중심으로 예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찾고 관련 소비를 한다는 의미다. 아주미들과 일부 중첩되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속 가능성이나 사회적 가치 등 다소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소비한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주미들의 소비 트렌드와 구매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SNS 인플루언서(영향력을 가진 사람) 시장이다. 대개는 본인이 아주미이면서 다른 아주미들을 공감, 열광하게 하고 지갑까지 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백화점, 패션 등 관련 업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30~40대 여성층에게 인기 많은 인플루언서가 여성복 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코트가 완판된 것이다. 주인공은 5만3000명 팔로어를 보유한 강영주(@yjkang)씨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강씨는 에스쏠레지아와 함께 겨울용 코트를 만들었는데, 한 벌 가격이 70만원에 달하는 고가에 책정됐음에도 준비한 물량을 모두 팔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플루언서 영향력이 커졌다 하더라도 △에스쏠레지아 같은 큰 브랜드가 개인 인플루언서와 협업한 사례가 무척 드문 데다 △가격대도 웬만한 백화점 유명 브랜드 코트 수준으로 높았던 점 △준비한 물량 200장을 완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 백화점 여성복 담당 바이어는 “젊은 엄마들에게 인플루언서가 만들어 홍보하는 제품을 사는 식의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졌다”면서 “사생활과 가족,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한 이들에 대한 친근감과 신뢰감이 쌓이게 되면서 지갑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미의 구매력은 조동모임, 카톡방, 각종 카페, SNS 등을 통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아주미 소비 시장을 잡으려는 유통 업계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공을 들인다. 실제로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SNS 인플루언서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쓴다.

가장 발 빠른 곳은 현대백화점이다. 지난해 SNS 마켓(인플루언서들이 SNS상에서 상품을 파는 것)으로 유명한 인스타그램 ‘희재마켓’을 판교점으로 끌고와 오프라인에서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도 30~40대 인스타그래머 여성에게 인기 있는 개인 디자이너 상품을 팝업 스토어에서 팔았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런 브랜드의 팝업스토어 진행이 백화점 매출에 큰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먹히는 소비층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코노미조선’ 취재에 응한 아주미들은 인스타그램, 네이버 맘카페 등을 통해 각종 소비 정보를 얻었다.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을 소비 정보 채널로 삼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관심 분야와 관련한 피드를 자주 올리는 인플루언서를 팔로하고 있었고, 물품을 실제로 사들이지는 않더라도 팔로를 통해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었다.

회계사 한나희(33)씨는 “일과 육아로 바쁘다 보니, 다른 미디어를 따로 챙겨보기보다는 스마트폰 인스타그램으로 패션·육아 관련 트렌드를 틈날 때마다 훑어본다”면서 “아직 인스타의 인플루언서가 파는 제품을 사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의 구매에 영향을 미칠 것 같기는 하다”고 말했다. 주부 송주현(34)씨는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내 취향에 꼭 들어맞는 아이 옷이나 소품 등을 만들어 파는 제작자들이 많다”면서 “기존 유통 시장에서 사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마케팅 시장의 결정권이 소비자로 옮겨온 상황에서 소비 시장을 움직이는 아주미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난도 교수는 ‘이코노미조선’에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30~39세 여성과 그 윗세대인 40대 여성들이 이 소비 시장의 주축이 됐다”고 말했다. 하용수 광운대 경영학 교수는 “맘카페, 엄마 네트워크는 ‘육아’라는 강한 ‘동류 의식’을 갖고 그 어느 집단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들의 방향을 파악하고 어떻게 네트워킹하는지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에는 큰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아주미 용어집
조동모임? 육퇴? 알고 있나요?

#아주미 인스타그램에서 #아주미를 검색하면 30만 건의 피드가 나온다. 30~40대 기혼 여성을 말한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본인을 ‘아줌마’로 칭하기엔 어색한 젊은 엄마, 혹은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 세대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올해 소비 시장 트렌드 중 하나로 꼽은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는 식사 준비, 청소 같은 집안일은 가정 간편식, 모바일 장보기, O2O 살림 서비스 등에 맡기고 남는 시간에 자기를 가꾸고 계발하는 ‘젊은 엄마’들이다.

#조동모임 인스타그램에서 #조동모임을 검색하면 13만 건 피드가 나온다. 조리원에 2주 있는 동안 같이 머문 엄마들과의 모임. 대개 성격이 활발한 사람들이 나서서 연락처를 공유하고 카톡방을 만들어 어울린다. 조리원 안에서 잠깐씩 마주치는 데 불과하던 사람들도 퇴소하고 나서부터는 신생아를 돌보는 데서 오는 막연함과 두려움 탓에 서로를 강하게 의지한다.

#육퇴 인스타그램에서 #육퇴를 검색하면 44만 건의 피드가 나온다. 육아 퇴근. 밤에 아이가 잠들어 자유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을 ‘퇴근’에 비유한 말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에 비교될 만큼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자유부인 인스타그램에서 #자유부인을 검색하면 70만 건의 피드가 나온다. 남편이나 조부모 등 주변에 아이를 잠시 맡기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자유부인이 된 날은 혼자 있기도 하고, 같은 자유부인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카페, 영화, 독서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돌끝맘 인스타그램에서 #돌끝맘을 검색하면 28만 건 피드가 나온다. 돌잔치를 끝낸 엄마. SNS상에서는 돌끝맘들의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 후기를 올리고 장소, 돌상·의상 대여 업체, 사진 촬영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인스타공구 인스타그램 공동구매의 준말로 SNS에서 이뤄지는 상거래의 일종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업체와 계약하고 제품을 홍보하고 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물건을 파는 것이다. 아주미 인스타그래머들이 주로 파는 제품은 마스크팩, 다이어트 보조제, 의류 등이다.

#애데렐라 인스타그램에서 #애데렐라를 검색하면 6만 건 피드가 나온다. 어린이집·유치원 하원 등의 이유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는 보호자를 말한다. 아이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를 더한 합성어다.

#등원전쟁 인스타그램에서 #등원전쟁을 검색하면 1만 건 피드가 나온다.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에 등원시킬 때 아이와 벌이는 실랑이를 말한다. 부모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등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등원을 거부한다. 특히 맞벌이 가정에서 이 전쟁은 격화한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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