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문위원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문위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록스타 경제학자’ 또는 ‘경제학계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삭스 교수는 하버드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곧바로 교수진에 합류, 29세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됐다. 일찌감치 학자로서 역량을 인정받았지만,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고 개도국 빈곤 퇴치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 록그룹 ‘U2’의 보컬인 보노,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 팝스타 마돈나 등 스타들과 교류하며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호사가들은 삭스 교수를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현 하버드대 교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의 3대 수퍼스타’로 부르기도 한다.

그가 2005년 출간한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에게 ‘필독서’로 추천해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추천사는 보노가 썼다. 또 볼리비아와 폴란드, 러시아 등 여러 신흥국의 경제 자문을 맡아 이들 국가가 위기를 타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6~90년 볼리비아 대통령 자문역을 지내면서 무려 4만%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을 10%대로 끌어내려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 삭스 교수가 얼마 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폐쇄했다. 지난해 12월 11일 기고 전문 사이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쓴 ‘화웨이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대(對)이란 제재 위반을 이유로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을 부당하게 체포했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삭스 교수는 칼럼에서 미국 정부가 과거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던 미국 기업 고위 간부들에게는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선에서 그쳤던 것을 지적하며 멍 부회장 체포를 ‘위선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제적 법치 질서의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 행정부”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연말을 맞아 가족과 뉴욕 집에 머물고 있는 삭스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새해 경기 전망에 관한 질문에는 차분한 어조로 답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윤리적인 감각도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며 “그로 인해 전 세계에 지정학적∙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나.
“미국 경제는 경기 회복 사이클의 정점에 올라섰다. 이제 다양한 위기 요인들이 불거지며 경기 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계속 인상되면서 법인세 인하 약발도 다해가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도 극한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정책 운용과 보호무역 정책은 불확실성과 변동성, 긴장감만 키웠다. 1~3분기 연속 상승한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4분기에 이전 상승분을 모두 까먹을 만큼 증시가 한 해 동안 엄청나게 널을 뛴 것이 그 증거다. 중국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트럼프의 정책은 무모한 시도이며 실패로 끝날 것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낮추면서 1조5000억달러 규모의 감세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기업들이 적잖은 혜택을 봤지만, 임금 인상을 통해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미미했다. 컨설팅회사 머서(Merser)가 최근 1500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4%만이 ‘절약한 세금을 내년 임금 인상에 쓸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 선거 직전 약속한 중산층 감세를 검토하고 있지만, 대규모 재정적자와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법인세 인상 주장 때문에 추진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 대부분의 견해다.

실업률이 3.7%로 49년 만에 최저치일 만큼 미국의 고용 상황은 좋지 않나.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학사학위 이상 고학력자의 고용 상황은 매우 좋은 편이다. 경기 회복 국면에서는 고졸 취업률도 괜찮았다. 하지만 자동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술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의 고용 환경은 장기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농촌과 중소도시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노후 대책 없이 은퇴하는 경우도 많아 위기가 닥치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

퓨(Pew)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의 중산층(가계소득 중윗값의 67%에서 200% 사이에 있는 가구) 비율은 52%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산층 가구 중에도 두 개 이상 직업을 갖고 있거나, 상속받은 유산을 가계 운영에 보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급여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는 뜻이다.

다른 주요국 경제 전망은.
“국제 경제 흐름도 좋지 않다. 유럽은 중도주의와 극우 성향의 정치 대립 속에 혼란을 겪고 있고, 한국과 일본 경제에도 미∙중 무역전쟁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나서서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으니, 이제 그만 무역전쟁을 멈춰달라’고 미국 정부에 촉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에 앞장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기억한다.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금융위기’였다. 패닉상태의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통화 당국이 유동성을 늘려야 하는데 IMF는 정반대 처방을 했다. 그래도 한국이 이른 시일 안에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 예상은 했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경제 회복 속도 자체는 매우 빨랐다. IMF 위기 극복 때 보여줬던 한국의 저력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는 주된 이유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삭스 교수는 IMF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들이 △금리를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신용 경색을 피하기 위해 적절히 돈을 풀어야 하며 △수출 업체들의 도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IMF는 210억달러(약 23조5500억원)의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고금리정책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더해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내걸었다. 특히 자본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명목하에 강행된 고금리 정책으로 시중 금리가 연 29.5%까지 올라가면서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말았다.

인구 고령화와 저(低)출산 등 한국 경제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한국의 출산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와 경제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인구와 국민 개개인 삶의 질 문제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생활 수준은 더 나아질 것으로 본다.”

이용성 차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