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서울대 금속공학과,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박사, 고려대 경영대 교수, 16대 고려대 총장,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7대 유한재단 이사장
이필상
서울대 금속공학과,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박사, 고려대 경영대 교수, 16대 고려대 총장,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7대 유한재단 이사장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남긴 이 말은 금융관료의 현실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해 260~270여 명을 뽑는 행정고시에서도 꽃으로 불리는 재경직(한 해 75명 안팎). 재경직 합격자 중에서도 고시 성적과 연수원 성적이 상위권에 들어야 갈 수 있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그리고 이들 정부 부처 산하에서 움직이는 금융감독원은 엘리트 경제관료들의 산실이다.

이들은 국내 금융 분야의 정책과 감독뿐 아니라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와 사업 인허가까지 통제하고 관리한다. 수천조원이 넘는 국내 자금이 모이고 흩어지는 금융시장의 많은 것들이 이들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금융시장 참가자와 금융 소비자는 화투판의 패처럼 관료의 순간순간 판단에 따라 희비와 명암이 갈린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선 이들 엘리트 경제관료가 보이지 않는다.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이들이 경제 정책 결정의 전면에서 사라진 것은 관료주의 자체의 한계도 작용했다. 외환위기를 부른 정책적 과오에도, 집값 폭등으로 엄청난 후유증이 생겨도 책임지는 공무원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했던 엘리트 관료의 경직성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한국 관료주의의 한계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들의 공은 무엇이고 그들이 끼친 해악은 무엇일까? 1972년부터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의 성쇠를 연구해온 이필상 서울대 교수를 8월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관료의 공(功)과 과(過)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 교수는 “관료는 임용 당시부터 노후까지 우리는 공동 운명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같이 살아야 하고 같이 기득권을 지켜야 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다”고 그들의 집단이기주의적 성향을 지적했다. 또 “권력자를 보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면서 정책을 펼칠 것”을 관료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국내 금융관료의 공과는 무엇인가.
“공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한 몸처럼 같은 관료 출신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경제정책과 금융정책 그리고 금융 감독이 조화를 이루면서 일사불란하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위기관리를 신속하게 할 수 있게 했다. 예컨대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경우에는 정부 부처들이 유기적이고 효과적으로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관료들은 실제 그렇게 했다. 과는 금융 시스템이 관료조직의 하부구조처럼 운영된다는 것이다. 금융 감독은 금융감독원이 하는데 금융정책은 금융위원회에서 만들고 관리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금융위 산하기관이어서 금감원이 독자적 자율적인 조직이 아니라 관료조직에 예속돼 있다. 금융 감독을 정부에서 결정하고 지시한 대로밖에 할 수 없는 구조가 됐고, 그러다 보니 관치금융이 제도화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관치가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
“관치의 첫 번째 문제는 금융사의 자율권과 창의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금융사가 시장에서 자율 경쟁을 통해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내다 팔아야 할 금융 상품까지 일일이 정부가 정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금융기관 본연의 기능이 왜곡된다. 두 번째 문제는 정치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산업은행이다. 대기업이 부실화했을 때 산은이 부실채권을 인수하면서 구제금융을 해준다. 금융시장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정치 논리를 들이댄다. ‘그 기업은 죽이면 안 된다. 실업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등의 이유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는데,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도 망치고 기업도 망치는 경제의 비효율을 피할 수 없다.”

금융관료를 모피아(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무부의 영문약자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모피아 파벌주의는 실제로 존재한다. 이들은 권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다. ‘임용에서 노후까지 우리는 공동 운명체’라는 의식이 있다. 같이 살아야 하고 같이 이 권력을 지켜야 한다는 공동 목적을 갖고 있다. 행정고시라는 제도가 있어서 우수한 인재가 모이니 엘리트 의식이 생겼고 이 사람에게 권력까지 주어지니 ‘우리는 선택받은 집단’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 것인데, 이런 문화는 뜯어 고쳐야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다. 아주 잘못된 엘리트 의식, 잘못된 권위의식이다. 자기들 아니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심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만 아니면 잘될 수 있다.”

국내 금융관료의 보신주의는 어떤 수준인가.
“책임 회피는 관료의 본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번 잘못해서 책임을 지면 그 사람은 관료로서 미래가 끝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집단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결사체를 형성한 것처럼 행동한다. 이를 개선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업무와 책임을 법과 규정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를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또 하나는 관료의 업무를 평가할 때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을 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이런 일을 했는데 그 사람으로서는 그 상황에서 최적의 정책 선택을 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높이 평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굉장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책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리스크가 있는 것인데, 나중에 결과만 놓고 평가한다면 모두 리스크를 회피하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40년 넘는 시간을 금융 시스템과 산업을 연구하며 보냈다. 금융관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자리(지위)를 보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관료는 늘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의식한다. 하지만 처음 공직을 맡을 때는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게 처음의 자기 모습이다. 지금도 정말 그러고 있는지 자신을 보라는 말이다. 자신의 자리를 보지 말고. 또 하나는 윗사람을 보지 말고 국민을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관료는 윗사람 눈치를 보는 게 습관화돼 있는데 그러지 말고 국민을 보고 일하라는 것이다. 윗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면 당연히 윗사람 잘못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권력에 의지하지 말고 실력에 의지했으면 한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실력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직자는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다. 공이 크다. 하지만 고쳐야 할 점이 많은 상황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관료사회가 탈바꿈해야 한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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