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토모 사학 스캔들에 재무성도 공문서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무성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야노 고지 재무성 관방장이 지난 6월 공문서 위조 기자회견에서 사과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모리토모 사학 스캔들에 재무성도 공문서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무성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야노 고지 재무성 관방장이 지난 6월 공문서 위조 기자회견에서 사과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지난해 9월 중의원 해산과 조기총선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조엔(약 20조원)짜리 복지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현행 8%인 소비세를 내년 10월에 10%로 올리고, 늘어난 세수(稅收)를 무상교육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사학재단 스캔들 감추기용이라는 지적에도 그는 “국난 돌파를 위한 해산”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소비세 인상에 따라 늘어난 연간 세수 5조엔 중 4조엔은 1000조엔에 달하는 국가 채무 변제에 쓰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표심을 얻으려고 용도 변경을 강행했다. 재정 건전화를 목표로 하는 재무성의 입장에 반하는 결정이었다. 총리의 지지율을 올릴 목적으로 세수에 손을 대면 재정건전화는 요원해진다. 하지만 벌써 두 차례나 증세(소비세 인상)가 미뤄지는 일을 경험했던 재무성은 “또 한 번 미뤄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아베 총리의 세수 용도 변경을 묵인했다.

이 결정을 주도한 인물은 오타 미쓰루(太田充)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理財局長)이었다. 이재국은 국가 채무가 늘어 위험에 빠지는 일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따라서 이재국장은 당초 국가 채무 변제에 쓰기로 한 4조엔의 세수가 용도 변경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총리 결정에 가장 크게 반발해야 할 사람이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심지어 오타 당시 이재국장은 세수 용도 변경을 담당하는 부서인 주계국(主計局)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앞장서서 움직였다.

이 때문에 그에겐 재무성 입장에 역행하는 정책을 관저에 팔아먹은 ‘용도 변경 주범’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내부에서는 “오타 이재국장이 이번 일로 아베 총리로부터 큰 점수를 따서 주계국장→사무차관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노리고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았다. 주계국은 재무성 권력의 원천인 예산 편성을 관장한다. 주계국장은 사무차관에 오르기 직전 거치는 자리로 알려졌다. 사무차관은 재무성 안에서 직업 공무원 출신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내부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7월 아베 정부는 오타 이재국장을 주계국장으로 임명했다. 일간지 겐다이(現代)는 “전형적인 논공행상(공을 따져 상을 주는) 인사”라며 “오타에 대해 관가에서는 ‘차보즈(茶坊主·권력에 붙어 으스대는 것을 욕하는 말)’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진보 성향의 매체 리테라는 “아베 총리가 인사권을 장악해 관료사회의 침묵을 조장하는 일을 태연하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타의 활약은 모리토모(森友) 스캔들(권력의 핵심이 깊숙이 연루된 권력형 특혜 시비) 당시에도 빛났다. 아베 총리 부부와 가까운 극우 재단이 초등학교 부지로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이는 과정에 정치권에서 개입했고, 재무성이 이를 감추기 위해 결재 문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오타는 이재국장이던 지난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의원들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부담스러워했지만, 관저에서는 오타가 주계국장으로 가기를 바랐다”며 “빈틈없는 답변으로 정권을 지켜낸 ‘공로자’에게 보상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총리 관저 환심 사기 바쁜 관료들

오타 주계국장 사례에서 보듯 일본 경제관료들의 상황이 한국과 다르지 않다. 정치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엎드리는 ‘넙치(히라메) 관료’,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아서 윗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손타쿠(忖度)’ 등의 단어가 등장한 곳이 바로 일본의 관가(官家)다.

재무성 관료들은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꼽힌다. 한 손엔 예산 편성권, 다른 손엔 세금 징수권을 쥔 그들 스스로 “우리는 후지산이고 다른 부처들은 산줄기”라고 말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재무성은 옛 대장성(大藏省)의 후신으로 한국의 기획재정부에서 정책 기능만 빠진 것으로 보면 된다. 세입·세출, 예·결산 승인, 국고 출납과 화폐 발행을 책임진다. 국가 재산 관리를 비롯해 국세청도 산하 기관으로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재무성은 일본 관료 사회에 만연한 ‘넙치 관료’와 ‘손타쿠’ 문화로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로 쇠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아베 정권의 용도 변경 재검토 결정에 힘을 실어준 재무성의 재정건전화 내부 문건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 ‘동양경제’는 “여론 형성이나 관저 설득을 위해 움직인 흔적이 없다”고 전했다. 도쿄재단정책연구소 는 “세율 인상으로 2025년 재정 수지가 흑자로 전환한다는 낙관론만 있을 뿐 추가 소비세 인상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면서 “재무성의 전문성이 후퇴하고 있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정·관가에 굳어진 ‘정고당저(政高黨低)’도 재무성의 쇠퇴를 가속화하고 있다. 주요 정책이 총리 관저 주도로 결정되는 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일본은 유력한 경쟁자가 없는 아베 총리의 1강(强) 체제가 5년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신설된 내각 인사국은 총리 관저가 관료조직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내각인사국은 각 부처의 고위간부 600여 명의 임명을 관할한다. 내각인사국이 생긴 이후 총리관저의 정책에 신중론을 제기했던 고위관료가 좌천되기도 했다. 한 재무성 간부는 ‘동양경제’에 “IQ만 높을 뿐 결국은 요령 있게 관저의 환심을 사기만 하는 ‘넙치 관료’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日 최고 엘리트들, 재무성 대신 민간기업으로

도쿄대 법학부 진학, 재무성 입성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가 변화하고 있다.
도쿄대 법학부 진학, 재무성 입성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가 변화하고 있다.

재무성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일본 대학생들의 ‘엘리트 코스’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도쿄대 법학부 진학→고시 합격→가스미가세키(도쿄의 중앙관청가) 입성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최고로 쳤다. 그중에서도 꽃은 재무성 입성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법대 출신이 행정고시를 거쳐 기획재정부에 5급 사무관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문과 수재들의 진로는 도쿄대 법학부에서 교양학부로, 공무원에서 외국계 기업 으로 바뀌었다. 주간 ‘다이아몬드’는 “국제 관계 분야에 우수 학생들이 몰리면서 이 분야가 새로운 엘리트 등용문이 되고 있다”며 “이들은 미쓰비시UFJ·미즈호·미쓰이스미토모 등 메가뱅크와 골드만삭스·JP모건 등 투자은행으로 빠진다”고 전했다.

일본 공무원의 인기 급감은 도쿄대 출신 합격자 수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작년의 ‘국가공무원 종합직’ 도쿄대 출신 합격자 수는 1797명을 기록,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8년 이후 가장 적었다.

재무성 입사자들의 학력도 저하되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도쿄대 법학과를 주류로 소수의 도쿄대 경제학과, 와세다·게이오기주쿠·조치대 출신으로 구성됐던 입성자들의 학력은 최근 오사카 시립대 등 국·공립 대학, 메이지·아오야마·릿쿄·추오·호세이 등 ‘MARCH’라 불리는 도쿄 6대학으로까지 넓어졌다. 또 매년 도쿄대 법대 출신이 단골로 차지하던 재무성 입성 수석 자리에 2015년 처음으로 규슈대 법대 출신이 이름을 올리며 화제가 됐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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