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재즈 뮤지션으로 인생 2막을 개척한 오에 센리가 미니 피아노를 치고 있다. <사진 : 오에 센리 페이스북>

일본은 전체 인구의 중위 연령이 46.5세로 이미 초고령화 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 이상인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가 겪을 문제들을 미리 경험했다. 일본의 노인, 또는 은퇴를 앞둔 중년층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생의 남은 수십년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 들었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고 현직에 있을 때만큼 열심히 사는 모습이 공통분모다.


사례 1 | 중년에 자기 계발

나이가 들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고 생각하면 일단 두렵다. 지금까지 20~30년 해오던 일에서 쌓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적응해낼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뮤지션 오에 센리(大江千里·56)는 40대 후반에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경쟁하며 새로운 분야를 학습하고 성공한 케이스이다. 1960년에 태어난 오에는 1983년 팝 음악을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2007년까지 45장의 싱글곡을 발표해 여러 히트곡이 있고, 18장의 앨범을 냈다. 1980년대 일본의 국민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 전설적인 남성 아이돌 그룹 히카리 겐지(光GENJI)의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2007년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데뷔 25년차였던 그 해, 47세에 그는 일본에서 음악 활동을 접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4년 반 뒤인 2012년 5월 뉴욕의 ‘뉴스쿨 재즈대학(The New School for Jazz and Contemporary Music)’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에 거점을 두고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총 4장의 재즈 앨범을 냈다.

팝과 재즈는 종류가 전혀 다른 음악이다. 더군다나 40대 후반에 지금까지 쌓은 경력을 버리고, 태어날 때부터 재즈를 접하고 리듬감이 뛰어난 미국 청년들 사이에 뛰어들어 재즈를 배운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오에는 31세를 정점으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40세쯤 됐을 때 다시 조금씩 인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오에는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 인터뷰에서 “인생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다.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자신의 책임이다. 미국에 갈 수 있을 때는 오직 지금뿐이라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라고 했다.

오에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돼 있었다. 지금은 자신이 만든 ‘1인 기획사’에서 음반  발매부터 공연 기획과 홍보까지 전부 혼자 하고 있다. 화려했던 20대 시절과 전혀 다르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꽤 괜찮은 수준”이라고 했다.


사례 2 | 노년에 새로운 길 개척

나이가 들었어도 불가능한 일은 없다. 앱 개발 같은, 청년들만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얼마든지 노인이 할 수 있다.

와카미야 마사코(若宮正子·82)는 올해 아이폰용 게임 ‘히나단(hinadan)’을 만들었다. 콘셉트는 고령자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도요게이자이’에 따르면 프로그래머인 지인에게 “노인에게도 재미있는 앱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프로그래밍 방법을) 알려줄 테니 스스로 만들면 어떠냐”라고 제안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그는 “프로그래밍은 처음이어서 어려웠지만 어찌어찌 완성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와카미야는 올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개발자 회의 ‘WWDC 2017’에 최고령 개발자로 참석했다. 이곳에서 그는 팀 쿡 애플 CEO와 만나 6분간 대화를 나눴다. 그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 인터뷰에서 “고령층을 위한 앱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만의 앱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컴퓨터와 친숙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해 퇴직할 때까지 컴퓨터는 만져본 적도 없다. 퇴직 후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됐고, 집 안에 계속 있어야 해 친구와 교류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던 중 ‘인터넷 채팅’이란 것을 알게 됐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구입했다. 와카미야는 고령층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 ‘멜로구락부’ 창립자 중 한 명이다. 와카미야는 “지금은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빨라 노인들은 따라가기 벅차다. 그렇지만 살아가려면 필요하니까, 많은 노인들이 IT를 학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82세에 아이폰용 게임을 만든 와카미야 마사코(오른쪽)가 지난 6월 애플 개발자 회의 ‘WWDC 2017’에서 팀 쿡 애플 CEO를 만났다. <사진 : 트위터 캡처>

사례 3 | 현직 경험 활용 새 회사 재취업

현직에 있을 때 특수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면 퇴직 후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활용하기도 한다.

다바타 마코토(田畑眞·62)는 1978년 일본 농림수산성에 들어가 농산과, 종묘과 등을 거쳐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스위스의 국제신품종보호동맹(UPOV)에서 근무했다. 퇴직 후 2012년 2월부터는 ‘IC넷’이라는 민간 회사에서 선임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다. 업무는 ODA(공적개발원조) 컨설팅이다.

다바타는 일본 주간경제지 ‘다이아몬드’ 인터뷰에서 “(공직에 있으면서) ODA로 외부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라며 “컨설턴트로서 키르기스스탄에서 농작물의 유통망 개선 작업에 참여해 배송 거점 정비 등 다양한 대책 마련에 참여했다”고 했다.


사례 4 | 정년 퇴직 후 다니던 회사에 재고용

일본 기업의 정년은 일반적으로 60세다. 일부 기업은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장기 근속한 직원의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 정년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재고용하고 있다. 1956년 태어난 이이즈카 마사토(飯塚正人·61)는 1979년 일본 대형 유통업체 이토요카도에 입사했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점포의 스토어 매니저 등을 거쳐 56세에 가나가와현의 한 점포에 배치됐다. 지난해에 정년을 맞았지만, 이전과 다름 없이 지금도 판매촉진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이즈카는 ‘다이아몬드’ 인터뷰에서 “정년 전엔 일하고 있는 점포에만 집중해 일했지만, 정년 후 회사에 재고용된 이후엔 다른 점포에도 나와 같은 재고용 케이스가 확산되도록 업무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정년 70세로 늘리는 日 기업들

일본은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공표한 ‘일하는 방식 개혁 실행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를 정년 연장과 ‘65세 이상 계속 고용’에 대한 집중 논의 기간으로 정했다. 또 국가·지방 공무원의 정년을 현재 60세에서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늘려 65세로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일본 정부는 지금도 60세가 넘어 정년 퇴직한 인력을 재고용하도록 기업을 유도하고 있다. 고령자고용안정법은 65세까지 고용 확보를 위해 기업에 정년 폐지, 정년 연장, 재고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상당수의 기업은 재고용을 택했다. 도요타자동차는 공장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년 퇴직 후 65세까지 현역 수준과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게 했다. 히로시마전철 등 일부 기업은 재고용 연령 상한을 65세에서 70세로 높였다. 다만 재고용 후엔 정년 전보다 대부분 임금 수준이 하락한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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