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거리에 붙어있는 ‘금연’ 표식 옆으로 한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 도쿄의 한 거리에 붙어있는 ‘금연’ 표식 옆으로 한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은 ‘흡연자 천국’으로 불리던 나라였다.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고속철도 신칸센의 일부 차량에는 아직까지도 흡연석이 남아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앞서 금연 장려 분위기가 확산되는 지금도, 시내 곳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흡연구역과 담배자판기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지상파 TV 드라마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영된다. 광고도 비교적 자유롭고 담뱃갑의 끔찍한 경고 사진도 없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각심도 낮은 편이다. 1965년 일본인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82%에 달했는데, 이 남성들이 노인이 된 지금도 일본은 장수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흡연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논리로 쓰이곤 한다.

간접흡연의 피해에 대한 경각심이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2000년대 들어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단계적 조치를 시행해 왔다. 2003년 시행된 건강증진법을 통해 간접흡연 방지 규정을 신설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에 그칠 뿐, 위반하더라도 법적인 제재는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상 흡연금지 조례를 세워놓고 있지만, 수천엔 안팎의 벌금에 그치고 이마저도 적극적인 단속은 하지 않는다.


정·관계와 담배 사업 커넥션

소극적인 금연 정책은 일본 정부와 담배 사업의 밀접한 관계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담배 사업 관할 부서는 후생노동성이 아닌 재무부다. 한국으로 치면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담배와 관련한 정책을 관리하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 재무부는 일본 유일의 담배제조 업체인 일본담배산업(JT)의 최대 주주다. JT의 임원직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흡연에 대한 후생노동성의 입장은 ‘법적으로 인정된 합법적 기호’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 시절 후생노동성에서 담뱃세 인상을 언급하자 재무부가 ‘월권행위’라고 면박을 준 일도 있다.

일본에서 담배 사업이 재무부 소관이 된 것은 1984년 제정된 일본 담배사업법 제1조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담배에 관한 조세가 재정 수입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비추어 (중략) 재정 수입의 안정적 확보와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의 담배 세수는 연간 2조엔 안팎이다.

JT 노조와 잎담배 재배 농가, 담배 판매점 조합을 지지 기반으로 둔 국회의원들은 일본의 담뱃세가 10년 넘게 동결 수준에 머무르는 데 힘을 실었다. 지난 수년간 가열식 전자담배가 인기를 얻자 애연가인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전자담배라면 국회에서 피워도 되지 않느냐”고 발언하기도 했다. 가열식 전자담배는 연초 고형물 또는 액체 니코틴을 전자기기로 고온으로 가열해 나온 증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의 담배다.

이렇다 보니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나온 간접흡연 대책 관련 법안도 국회 문턱을 쉽사리 넘지 못했다. 2017년에는 소규모 음식점(건평 30㎡ 이하)을 제외한 모든 음식점에서 흡연 시 사업자와 흡연자에게 각각 50만엔, 30만엔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국회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제출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은 “실내 흡연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며 구체적인 벌칙은 명기하지 않은 개정안을 내는 데 그쳤다. 예외가 적용되는 공공장소는 면적 100m² 이하로 완화됐다. 일본  음식점의 55%에서는 여전히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장소 금연 확산은 ‘맥도널드 효과’

JT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본의 흡연자 비율은 전년 대비 0.3%포인트 줄어든 17.9%였다. 점진적이지만 확연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금연으로 지정된 공공장소가 늘어나고 소비세 증세로 담뱃값이 오른 게 이유로 꼽힌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일본 정부는 금연 정책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숱한 이해관계에 얽혀 좀처럼 진척되지 않던 일본의 금연 분위기를 이끌어낸 것은 정부가 아닌 비즈니스의 논리였다.

일본 맥도널드는 2014년 8월 전국 매장의 실내 금연을 발표했다. 2013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사라 카사노바는 “어머니의 시선에 부응하는 기준으로 브랜드의 신뢰를 회복한다”며 금연화를 강행했다.

애연가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일본 흡연자들에게 맥도널드는 간편하고 싸게 즐길 수 있는 흡연 장소였다. “외국인 여(女)사장이 일본의 실정을 모른다”며 매출이 급락할 것이라고 힐난했다. 영향은 곧바로 드러났다. 금연화 이듬해인 2015년, 이물질 검출 파동이 겹치며 맥도널드의 일본 매출액은 30% 가까이 급락했다.

그런데 반전이 시작됐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장시간 자리를 차지하는 흡연자 고객이 사라지자 회전율이 높아지고 인건비가 줄었다. 건강한 메뉴를 도입하며 아이를 둔 부모들이 담배 연기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매장 분위기를 조성했다. 일본 맥도널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금연화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영업이익은 10년간 최고치인 276억엔을 기록했다.

맥도널드의 금연화가 성공을 거두자 일본 요식 업계들은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체인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쿠시카츠(꼬치튀김) 전문점인 다나카(田中)가 전면 금연화를 실시한 데 이어 일본 최대 외식체인 그룹인 스카이라크는 2019년 9월까지 전국 3200개 점포 모든 곳에서의 실내 금연을 발표했다.

흡연자를 채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흡연을 이유로 잦은 휴식 시간을 갖는 직원들의 업무 능률이 낮다는 점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업무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였다. 대형 숙박업 체인인 호시노 리조트는 1994년부터 흡연자 불채용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보험 대기업인 손보재팬은 4월부터 전 사원의 근무시간 중 흡연을 금지했다. 임원 취임 시에는 금연 서약을 받는다.


plus point

아이코스 등 가열식 전자담배, 일본에서 각광받는 이유

궐련형 담배의 대표 주자인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사진 블룸버그
궐련형 담배의 대표 주자인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사진 블룸버그

예전과는 다른, 흡연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 흡연자들의 설 곳은 줄어들고 있다. 높아지는 혐연(嫌煙) 분위기 속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게 가열식 전자담배다. 2014년 일본에 출시된 필립모리스의 가열식 전자담배인 아이코스(IQOS)는 출시 후 별다른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할인쿠폰을 뿌리며 판촉에 나서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코스가 소개되며 분위기가 크게 반전됐다. TV아사히의 인기 방송인 ‘아메토크’는 2016년 출연한 애연가 개그맨들이 아이코스를 소개하는 특집을 내보냈다. 연기가 나지 않고 냄새도 덜한 데다가 유해 성분이 적다는 설명에 아이코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방송 이튿날부터 전국적인 품귀 현상이 벌어졌으며, 인터넷에서는 2~3배의 웃돈을 얹은 아이코스 매물이 등장했다. 일본의 아이코스 사용자는 지난해 500만 명을 돌파했다.

필립모리스가 일본을 아이코스 초기 출시 국가로 정한 이유에 대해 노무라증권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성’으로 분석했다. 아이코스가 일본 담배 시장의 주류로 올라서자 경쟁사인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와 JT는 각각 ‘글로(glo)’와 ‘플룸테크’ 신형을 내놓고 3파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가열식 전자담배 시장 점유율은 담배 시장의 30%에 육박한다.

이진석 ‘오타쿠 진화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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