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이 7월 18일 오후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박재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이 7월 18일 오후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2012년 자신의 블로그 ‘게이츠노트(Gates Notes)’에 여름휴가를 위한 추천 도서를 올렸다. 그의 추천 도서 중 하나는 ‘손자병법’이었다. 빌 게이츠뿐 아니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많은 기업인이 ‘손자병법’ 등 동양 고전을 추천 도서로 꼽는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등 유명 학자들도 저서에서 동양 고전을 직접 인용하거나 이를 활용해 새로운 경영 방식을 제시하기도 한다.

동양 고전은 길게는 2000년도 더 된 책들이다. 국내외 최고경영자(CEO)와 학자들은 이런 오래된 책들에서 지혜를 빌려오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100인의 CEO·석학에게 한 설문조사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마천의 ‘사기’, 오긍의 ‘정관정요’, 공자의 ‘논어’ 등 동양 고전을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꼽았다.

동양 고전이 경영자들에게 어떤 지혜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인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을 만났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등을 거쳤다. KBS, EBS 등 방송에서 동양 고전 강의를 1500회 이상 했고 ‘고전의 대문’ 등 다수의 관련 저서도 집필했다. 7월 18일 늦은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동양 고전이 CEO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뭔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을 이야기해주고,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기업 혁신의 방법도 알려준다.”

동양 고전이 기업의 혁신 전략을 어떻게 알려주나.
“‘손자병법’을 예로 들어보자. ‘손자병법’에는 공기무비(功其無備)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들어갔던 공간에 다시 들어가지 말고 남들이 준비하지 않은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 공격하라는 말이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출기불의(出其不意)는 적이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나아가라는 말이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타이밍(시간)을 찾아야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다. 또 병자귀속(兵者貴速)이란 말도 있는데 이는 전쟁에서는 속도가 생명이라는 뜻이다. 이를 기업의 혁신 전략에 대입해보면 새로운 시장(공간)을 발견하고 경쟁사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시기(시간)에 이 시장에 진입하되 가장 빠른 속도로 진입해 시장을 장악하라는 의미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 구절을 인용해 저서 ‘부의 미래’에서 ‘공간의 확장(Stretching space)’ ‘시간의 재정렬(Rearranging Time)’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때 유념해야 할 고전의 지혜가 있나.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화식열전’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길 권한다. ‘화식열전’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인생을 모아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재벌의 이야기다. 여자 재벌도 있고 천민 출신으로 재벌이 된 사람도 있고 학문을 깊이 연구했는데 그 학문을 활용해서 재벌이 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그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바로 남들이 재화를 팔 때는 사고 남들이 재화를 살 때는 팔았다는 것이다. 인기아취 인취아여(人棄我取 人取我與)다.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투자하라는 것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이것을 제대로 활용해서 세계적 투자의 귀재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주식을 남들이 모두 사려고 할 때 팔고 남들이 팔 때 샀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역발상의 투자 원칙으로 돈을 벌었는데 사마천은 이미 ‘화식열전’에서 이를 말했다.”

고전 중에 CEO에게 권하고 싶은 책 한 권만 고른다면.
“‘삼십육계’라는 책을 추천한다. 기원후(AD) 5세기쯤에 편집된 책으로 누가 편집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양한 고전에서 36가지 전략을 뽑아낸 책이다. 기업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천과해(瞞天過海)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겠다.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는 뜻으로, 내가 모시는 주군이 주저하면 그의 눈을 가려 속여서라도 과감하게 실행하라는 말이다. 조직의 상태를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조직원이 주저한다면, 조직원을 속이더라도 과감하게 나아가라는 의미다.”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기업이 어렵다고 한다. 다들 위기라고 하는데 고전에서 빌릴 수 있는 지혜가 있나.
“‘맹자’에 생어우환(生於憂患)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환(걱정거리)이 오히려 나를 생명력 있게 만들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이라는 이야기다. 영국 역사가 토인비도 우환이 많은 시기가 가장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좋아진다고 봤는데,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경영 환경이 어렵다고 불평불만만 하면 해결되는 일이 없으니 우환을 통해 성장하라는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한·일 무역갈등도 일종의 국가 경제의 우환이지만 이 우환을 잘 이용하면 반도체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소재의 수급을 다변화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컴플레인(불평불만)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독서를 강조하는 경영자가 많다. 책 읽는 법에 대해 조언해 달라.
“인류는 힘들 때마다 고전을 들춰봤다. 경영자도 힘들 때일수록 고전을 통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제발 고전을 지식으로만 접근하지 말았으면 한다. 연초만 되면 고전의 글귀를 한 마디씩 던지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있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경영자가 고른 그 사자성어가 ‘나 이런 지식을 알아’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래서 실제 경영 현장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한 달에 책 10권을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A4 용지로 정리된 것이나 표지·목차 정도만 봤을 가능성이 크다. 고전은 책꽂이에 꽂혀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밑줄 쳐서 몇 줄 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푹 들어가서 거기서 원하는 메시지가 내 삶에 녹아서 새로운 변화가 이뤄질 때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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