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내부. 사진 위키피디아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내부. 사진 위키피디아

‘CEO는 고전(古典)과 역사·철학서를 좋아한다.’

‘이코노미조선’이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100인의 CEO·석학에게 ‘내 인생의 책’을 꼽아달라고 해서 얻은 결과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역사서인 ‘사기열전(사마천)’, 철학서인 ‘탁월한 사유의 시선(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경제·경영서인 동시에 삶의 보편적 원리와 철학을 담은 ‘원칙(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 등 세 권이었다. 100명 중 각각 3명이 선택했다.

공동 2등은 ‘논어’와 ‘정관정요’, 존 러스킨의 경제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짐 콜린스의 경영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데일 카네기의 처세서 ‘카네기 인간관계론’, 빅터 프랭클 박사가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 여섯 권이었다. ‘논어’와 ‘정관정요’는 말할 것도 없이 고전이지만, 1860년 출간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1936년 출간된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비롯해 전부 ‘클래식’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한 책들이었다. 100명 중 각각 2명이 선택했다.

100명이 선택한 책은 중복을 포함해 88권이었는데 이 가운데 출간된 지 50년이 넘은 ‘클래식’이 32권이나 됐다. 이 32권 중 가장 오래된 책은 ‘논어’, 최근 나온 책은 1963년작인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클래식 혹은 고전의 사전적 정의는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되는 문학 예술작품’이지만, 이 기사에서는 편의상 출간 5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책으로 규정했다.

이번 설문에는 100명의 대기업·중소중견기업·스타트업·공공기관 CEO와 국내외 경제·경영 석학들이 참여했다. 중복 추천된 인기 도서를 중심으로 설문 참여자들의 추천작과 선정 사유를 소개한다.


인기도서 1│
인간군상에서 배우는 지혜 ‘사기열전’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이다. 책은 사마천이 중국 전한(前漢) 왕조 무제(武帝) 시대에 저술한 역사서 ‘사기(史記)’ 중 일부다. 역사가들은 사마천이 ‘사기’를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91년까지 18년간 저술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기열전’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제왕이나 제후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한 개인들이다. 정치인이나 학자, 군인, 자객은 물론 광대와 백정까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 중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판단한 사람들의 일생을 수록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는 “불의와 모순이 가득한 역사의 현실에서 삶의 본질과 올바른 가치를 추구해 영원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고전”이라고 평했다. 박병원 경영자총회 명예회장은 “동양 최고의 기전체(紀傳體·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는 전통적 역사 서술법) 역사책이다. 전기 그 자체보다 저자의 ‘촌철살인 코멘트’가 더 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최영성 한전경제경영연구원 원장은 “실제 인생은 소설보다 극적이고 기구하며 변화무쌍하다. ‘사기’를 통해 인간은 한없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게으르거나 열정적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며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는 어려움 속에서는 희망을 주고 작은 성공에 도취돼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준다”고 했다.


인기도서 2│
신한금융 슬로건 창조에 기여한 ‘탁월한 사유의 시선’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3인의 선택을 받았다. 책은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철학·인문학적 기록이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시선과 역량에 대해 기술한 책으로 조직의 모든 고위 관계자와 함께 읽고 토론했다”라며 “이를 통해 창도(創導·창조와 선도)라는 신한만의 차별화된 지향점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생각의 높이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한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시선의 교체와 상승이 필요한 시점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했다. 정찬용 아프리카TV 대표는 “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라며 “내 입장, 내 생각이라는 것은 결국 시선의 높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인기도서 3│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

미국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 레이 달리오가 그간 지켜온 자신의 경영 원칙을 공개한 책 ‘원칙(Principle)’을 꼽은 CEO도 3명이 있었다. 조성우 런드리고 대표는 “세계 최대 수준의 헤지펀드를 설립한 저자가 ‘기업과 인생’의 원칙에 대해서 기록한 역작으로 인생 최악의 실패가 결국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라며 “스타트업 CEO로서 힘들 때마다 펼쳐보는 책이다”라고 했다. 윤희상 넥서스원 이사는 “저자는 위기가 발생한 뒤,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해 새롭게 도전하고, 또다시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는 인생의 굴레 속에서 계속 발전해 왔다”며 “모든 경영인에게 귀감이 되는 책이다”라고 했다.


인기도서 4│
태평성대 당나라의 정치 철학 ‘정관정요’

618년 세워진 당나라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 이세민의 정치 철학을 담은 ‘정관정요(오긍)’도 복수 추천을 받았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중국 당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룬 태종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며 “현명한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백성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현재도 유효하다”고 했다. 김수권 트립스토어 대표는 “리더십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며 “특히 본인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부족함을 토대로 다른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 내부. 사진 김문관 차장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 내부. 사진 김문관 차장

인기도서 5│
리더의 다섯 가지 미덕 담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논어’도 복수 추천을 받았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공자의 제자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교 사상의 뿌리와도 같은 책이다.

김윤식 신협중앙회장은 “2500년 전 쓰인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우리의 삶을 통찰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라며 “특히 마지막 편인 ‘요왈(堯曰)’에서 소개된 리더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미덕인 군자오미(君子五美)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경영자가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함축한 최고의 지침”이라고 했다. 군자오미란 첫째, 리더는 배려하되 지나치면 안 된다(惠而不費), 둘째, 일을 시킬 때 부하 직원이 이에 원망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勞而不怨), 셋째, 욕망을 갖되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欲而不貪), 넷째, 자유롭되 교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泰而不驕), 다섯째, 위엄을 갖추되 사나워 보여서는 안 된다(威而不猛)이다.


인기도서 6│
영혼을 담은 경제학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러스킨이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경제학에도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책은 인간을 ‘영혼으로 움직이는 기계’로 정의하고,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있어 ‘정의와 애정’이 기반이 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고 했다. 전상열 나우버스킹 대표는 “내가 왜 이렇게 회사를 경영하지?라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보는 책이다. 개인의 이익보다 모두의 이익이 우선시될 때 경제적 가치가 커진다는 메시지가 힘이 된다”고 했다.


인기도서 7│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미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불멸의 성공 기업들의 전략을 탐구한 책이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가치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 간직해야 할 가장 근원적인 원칙들을 말해주는 고전이다”라며 “전략, 조직, 상품, 서비스 전반에서 더 큰 비전을 고민할 때마다 참고한다”고 했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 원장은 “위대한 기업들은 전략이나 비전을 먼저 세우지 않았다. 버스의 방향보다 누구를 태울지부터 먼저 고민했다”라며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은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경제·경영서 많아

이번 설문 조사에서 꼽힌 책을 장르별로 분류하면 경제·경영서가 38권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복수의 참여자가 같은 책을 선택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100명의 응답자 가운데 2명 이상의 복수 추천은 아홉 권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한 명만 선택한, 즉 중복되지 않는 책들이었다. 영화 등 다른 콘텐츠와 달리 역사가 매우 깊고 스펙트럼이 다양한 데다, CEO들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제·경영서, 자기계발서도 있었지만, 소설을 선택한 CEO도 적지 않았다.

강성욱GE코리아 대표는 클레이튼 M.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추천했다. 그는 “책은 파괴적 혁신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직관으로 실행해온 나의 혁신적 의사결정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비나이 쿠토, 존 플랜스키, 데니즈 카글라가 쓴 ‘지속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을 꼽았다. 그는 “‘디지털의 강화’로 새로운 형태의 은행들과 경쟁에 놓여 있고 기존 수익구조인 수수료 수익, 대출 성장에 의존할 수 없을 만큼 체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책에서 영감을 받아 단순 구조조정으로 인한 체질 개선이 아닌 고객 성장을 함께하면서 은행 수익 구조 변화를 도모하는 중이다”고 했다. 허인 KB국민은행장은 오웨인 서비스와 로리 갤러거의 ‘씽크 스몰’을 꼽았다. 그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작고 구체적인 단계들이 필요하다. ‘큰 성취를 위해서는 작게 생각하라’는 조언에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제레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교수의 ‘소유의 종말’을 꼽았다. 그는 “네트워크 경제와 디지털혁명 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공유경제 시대를 예견한 기념비적 고전”이라고 했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를 꼽았다. 그는 “단기 투자에만 몰두하는 많은 투자자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책으로 투자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꺼내 읽는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 라구람 라잔이 쓴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를 꼽았다. “사회 문제인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본가들이 정치와 결탁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통해 자본가들이 이익만 너무 추구하다 보면 시장 경제 체제의 기반이 무너진다. 실제 2001년에 이 책이 나오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했다.

김성준 렌딧 대표는 톰 켈리의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을 꼽았다. 그는 “14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미국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성장하며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여러 창의적인 조직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참고서다”라고 했다. 손민재 마이창고 대표는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골랐다. 그는 “벤처기업은 ‘경쟁이 아니라 독점’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안태호 노키아코리아 대표는 ‘사마의 자기경영’을 꼽았다. 그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를 알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성실한 태도, 리더의 품성에 대해 알려준 책”이라고 했다.


소설·철학서도 많아

소설과 철학서를 꼽은 CEO들도 많았다. 소설은 12명이 선택했다. 서양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루이자 M.올컷의 ‘작은 아씨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등 8권이 선택됐다. 한국 작품은 최인호의 ‘상도’, 박경리의 ‘토지’, 박완서의 ‘나목’, 김훈의 ‘칼의 노래’ 등 4권이 꼽혔다. CEO들은 “현실의 방황 속에서 자신만의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소설에서 얻는다”고 입을 모았다. 철학서는 고 마광수 연세대 교수의 노장사상 해설서 ‘운명’,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릭 핸슨의 ‘붓다 브레인’ 등 8권이 꼽혔다.

과학서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미래가 온다’, 제프리 삭스의 ‘지속가능한 발전시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4권이 꼽혔다. 복수의 도서를 추천받은 저자로는 제레미 리프킨 교수(‘한계 비용 제로 사회’와 ‘소유의 종말’)가 있었다.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 등 처세술을 담은 책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 역사서도 있었다. 조수용 카카오 대표는 “CEO들은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고전 등 스테디셀러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이는 비단 경영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문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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