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경찰서의 2진 기자실. 수습기자들은 각 경찰서의 2진 기자실에서 일한다.
서울 동작경찰서의 2진 기자실. 수습기자들은 각 경찰서의 2진 기자실에서 일한다.

4년 경력의 종합일간지 기자인 허태현(가명)씨는 “수습(신입)기자 시절을 회상하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당시 허씨의 하루는 오전 4시에 경찰서에서 시작했다. 다른 언론사 수습기자들과 뒤섞여 매일 2~3시간만 자고 일어났다. 평일엔 집에 갈 수도 없었다. 아침 6시에 있는 첫 보고를 앞두고 기삿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며 형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면핏(免避)거리 하나만 주세요”하고 구걸하지만, 바쁜 형사들이 정식 기자도 아닌 사람을 친절히 상대해줄 리 만무했다. 수습기자들은 매일 일정 시간에 선배에게 기삿거리를 보고해야 한다. 면핏거리란 선배로부터 질책을 피할 만큼의 기삿거리, 즉 질책을 면할 목적의 보고 내용을 의미한다.

허씨는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로 선배 기자 전화를 받았다. “XX, 정신 안 차릴래 XX야”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니, 나 같으면 기자 안 하겠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보고를 2시간에 한 번씩 했다. 그의 선배는 “경찰서를 돌아보라”는 지시 외에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 그는 빠른 시간 내에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느라 한 달에 택시비만 200만원을 썼다. 이런 과정을 5개월 거치고 그는 정식 기자로 발령받았다.

허씨가 거친 과정은 ‘사쓰마와리’와 ‘하리코미’라는 언론계 은어로 불리는 수습기자 교육이다. 사쓰마와리는 경찰의 일본어 게이사쓰(警察)의 ‘사쓰’에 일본어로 ‘돌다’인 ‘마와루’의 명사형 ‘마와리’를 붙인 말이다. 몇 개의 경찰서를 돌면서 사건·사고를 취재한다는 의미다. 하리코미는 잠복근무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한 곳이나 지역에 상주하면서 밤낮으로 집중 취재하는 것을 뜻한다.

사쓰마와리는 갓 입사한 수습기자가 주로 사회부 사건팀(경찰팀)에 배치됐을 때 하는 일이다. 사쓰마와리가 고된 이유는 하리코미 탓이다. 하리코미를 하는 기자의 일과는 대부분 ‘잠을 못 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일주일에 6일은 경찰서에서 산다.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주기적으로 ‘1진’이라 불리는 선배에게 취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1진은 2~8년 경력의 기자인데, 본인들의 기사를 쓰면서 수습기자 교육도 한다. 외부 교육기관이나 교육 담당 부서가 있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언론사는 실무를 하는 선배가 기사 쓰는 법을 전수하는 것으로 신입 교육을 대신한다. 사쓰마와리와 하리코미가 수습기자를 훈련하는 도제교육인 셈이다.

지난해 7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법정 최대 근로 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면서, 대형 언론사를 필두로 하리코미가 사라지는 추세다. 하루 8시간씩 주야간 교대로 근무한다. 하지만 일부 언론사는 이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수습기자가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실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1진’이 된 4~6년 차 일간지·방송사 사회부 기자 6명은 “과거의 수습기자 교육은 적은 인력을 쥐어짜 성과를 내는 언론 환경에 적응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방송사 기자는 “취지를 모른 채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질책당하니 이유 없이 괴롭힘당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언론계의 도제교육이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주입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질책과 불분명한 지시 위주의 수습기자 교육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상근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을 통해 “도제교육의 원래 취지를 살려 선배와 수습기자가 함께 다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면서 “선배의 취재 과정을 직접 보지 못하고 전화나 메시지로 대신하는 것으로는 역량을 키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plus point

미디어와 IT 기업 DNA 시너지
도제교육 발 못 딛는 버즈피드

김문관 기자

스마트폰 화면에 펼쳐진 버즈피드 홈페이지. 사진 블룸버그
스마트폰 화면에 펼쳐진 버즈피드 홈페이지. 사진 블룸버그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보며 턱을 괸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혀를 내민다. 영상은 이런 남자의 모습을 꾸밈없이 담아낸다. 영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에서 “100달러(11만3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건강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건강 보험 웹사이트에 접속하라”면서 공적 의료보험 등록을 권유했다.

2015년 공개된 이 영상의 조회 수는 불과 4일 만에 4100만 회를 넘겼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오는 이 대히트 동영상이 실린 곳은 NBC, CBS, ABC 등 미국 3대 방송사도, 유력 신문사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도 아니었다. 버즈피드(Buzzfeed)라는 미국 온라인 매체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홈페이지였다.

버즈피드는 미국의 조나 페레티 전 허핑턴포스트 공동창립자가 2008년 세운 미디어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SNS에서 퍼지기 쉬운 화젯거리와 정보를 모아 매일 300~400개씩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매체다. 핵심 이용자는 SNS와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세대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지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2014년 8월 벤처캐피털 안드리센 호로비츠가 버즈피드의 기업 가치를 8억5000만달러(9600억원)로 평가하고 5000만달러(568억원)를 투자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미디어 스타트업 중 하나다. 버즈피드 월간 방문자 수(온라인+모바일)는 2016년 2억 명을 돌파했다. 2015년에는 버즈피드의 일본법인인 버즈피드 재팬도 설립됐다. 설립 이후 일본 메이저신문의 에이스 기자 여러 명이 버즈피드 재팬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됐다.


기자보다 에디터가 많아

버즈피드 수익의 대부분은 돈을 받고 기업들에 만들어주는 콘텐츠인 ‘네이티브광고(기사형 광고)’에서 나온다. 다른 언론사처럼 트래픽(서버에 전송되는 데이터의 양)을 돈으로 환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배너광고도 거의 없다. 버즈피드의 월간 방문자 수는 한국 네이버(약 3000만 명)의 7배에 달한다. 트래픽에 목을 매는 한국 언론사와는 다르다. 버즈피드는 기자보다 에디터가 더 많은 독특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5년 기준 전체 직원 1300명 가운데 기자는 190명에 불과하다. 에디터는 475명이나 된다. 나머지는 데이터 관리 및 IT 기술 인력이다. 발행인도 언론사 경험이 없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과학자) 출신이다.

버즈피드는 또 예술가와 데이터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업계에서는 버즈피드가 미디어와 IT 기업의 DNA가 반씩 섞여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평가한다.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섞여있기 때문에 도제식 교육이 발을 디딜 만한 틈이 없는 셈이다.

버즈피드는 2015년 5월에는 ‘저널리즘, 기술, 예술을 위한 오픈랩’을 발족하기도 했다. 이 랩은 현재도 미디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 랩에는 개발자, 기자, 예술가, 데이터과학자 등이 모여 언론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로봇, 드론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벤 스미스 버즈피드 편집국장은 2017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글로벌 에디터스 네트워크 서밋에서 “힘 있는 언론이 게이트키핑(뉴스 취사선택)을 거쳐 정보를 배포하던 옛 추억에 잠길 때도 있지만, 이제 언론은 더 이상 게이트키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존 언론의 틀을 완전히 깨야 한다는 뜻이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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