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까지만 해도 손자를 보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20세기 초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손자가 낳은 아이(증손자)에게도 용돈을 주게 됐다. 한 세기 만에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기대 수명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독일 학자 짐 보펠 교수는 “인간 수명은 최소한 120세보다 길고, 어쩌면 한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은 노년층을 택배기사로 고용하는 ‘실버택배’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 CJ대한통운>


빠르게 늙는 韓, 고령화 속도 세계 최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100세 시대에 기대보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수명은 82세로 빠르게 늘었지만, 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에 불과해 은퇴 후 30년에 이르는 여생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사회적으로도 100세 시대는 ‘고령화 시한폭탄’ ‘실버 쓰나미’와 같이 재앙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늙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8월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25만명으로, 전체 인구(5175만명)의 14%를 차지해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2000년 고령화사회(노인 인구 비율 7%)로 진입한 지 불과 17년 만이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프랑스 115년, 미국 73년, 독일 40년이었다. 일본도 24년이 걸렸다. 노인 인구 증가에 대응할 기간이 그만큼 짧다는 의미다. 저출산과 1인가구 증가, 만성적인 청년 실업으로 노후를 자녀에게 기대기 어려운 상황과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저금리 환경은 노후 전망을 더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경제가 성장률을 유지하고 노년을 맞은 가계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개인적·사회적 노후 준비는 필수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100세 시대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열쇠는 65세 이상 인구의 경제 활동을 확대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노력은 노년 인구 상당수가 여전히 건강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오늘날 65세 이상 인구는 과거 할머니·할아버지보다 건강하며 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이들이 생산과 소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큰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교육·노동·은퇴’ 3단계로 나눠진 생애주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이다. 노년 인구의 노동력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이들을 겨냥한 소비 시장이 아직 성장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장수는 이제 대부분 사람이 맞이할 미래다. 노년 인구가 경제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시장이 이들의 수요에 대응한다면 개인과 사회 모두 고령화 시대에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


기업들 경험 많은 고령 근로자 활용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물류센터. 물건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일손을 재촉하는 택배기사 대부분이 60~70대 노인이다. 여기서 일하는 이은호씨는 올해 77세로, 물건을 배송하고 한 달에 80만~90만원을 받는다. 퇴직 전 이부자리 사업을 운영했지만, 은퇴 후 연금 소득은 전혀 없다. 저축해 놓은 돈으로만 생활하기가 빠듯해 매달 받는 월급이 큰 도움이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연금 수급률은 38%에 그쳤다. 그나마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월평균 연금액은 36만원 수준이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수급률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100세 시대를 맞은 사람들의 대응은 이씨의 사례처럼 더 오래 일해 은퇴를 늦추는 것이다. 아직 노년 인구가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업무를 맡는 ‘긱 이코노미(gig-economy·임시직 경제)’와 창업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CJ대한통운이 운영하는 ‘실버택배’는 수입은 적지만 하루에 몇 시간 가벼운 노동을 원하는 노년층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퇴직자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 고령 근로자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축적되고 있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모든 직원을 고령자로만 채운다면 업무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겠지만, 모든 직원을 젊은 직원으로만 채운다면 너무 많은 실수가 발생할 것”이라며 다양한 연령 근로자가 속한 ‘다세대 팀’을 운영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게르노트 센도브스키(Gernot Sendowski) 다양성 본부장은 “운영 면에서 고령 근로자의 업무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이들은 실수를 범하는 빈도가 매우 낮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은 젊은 근로자보다 낮지 않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업무에서는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지식기반 업무 성과는 근로자 나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투자 자문역과 같이 사회적 경험이 중요한 직업의 경우는 오히려 근로자 나이가 많을수록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경험이 이전보다 중요해지는 인공지능 시대에 고령 근로자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년 인구의 경제 기여는 소비 분야에서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2020년이 되면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가계 소비는 2010년의 두 배 수준인 15조달러(약 1경70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년 인구가 늘어날 뿐 아니라 이들이 경제력도 갖추면서 ‘시니어 마켓’은 이미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년 인구를 위한 생활용품, 식품, 화장품, 의약품은 물론 레저, 만남(데이팅)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유망하다고 말한다.

100세 시대 노년은 신체적으로 건강할 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는 데에도 개방적이다. 저출산 추세로 경제 활동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노년층이 새로운 생산활동인구로 편입되고 소비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100세 시대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런 낙관적인 미래를 만들려면 각자가 노후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도 탄탄하게 준비해야 한다. 은퇴 후에는 소득이 감소하지만 생활비와 의료비는 물론 배우자 간병비, 장례비 등 노후 자금이 필요하다. 일찌감치 연금을 쌓고, 저금리 환경에서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재테크 전략이 요구된다.

노후 생활을 유지하는 경제적 기초는 연금이다. 당장 소비를 조금 줄이더라도 일찍부터 연금을 관리하는 것이 좋다. 연금은 장기 투자하며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소득의 20% 정도를 연금에 배분하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3층 구조로 연금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연금 마련의 중요성은 누구나 얘기하지만, 현재 소득으로 당장 필요한 주거비와 생활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노후 대비 자산까지 준비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연금 회사가 더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자금을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력을 갖춘 노년 인구가 늘어나며 관련 소비 시장도 커지고 있다.


노후 생활 유지하는 경제적 기초는 연금

기대 수익률이 높아지면 더 많은 사람이 저축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조명기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느 정도 강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노인 복지를 제공하는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노후 생활에 대비한 자산 관리도 필요하다. 특히 저금리 시대에는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상품을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하고 절세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속·증여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상속세를 위한 자금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가장 적합한 금융상품은 종신보험이라고 조언한다.

수명 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 수명이다. 노년에도 활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려면 꾸준한 운동과 식생활 조절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100세 시대 인생 설계를 연구하는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장수를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형자산뿐 아니라 건강, 가족, 친구, 유연함 등 다양한 무형 자산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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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은 사회. 국제연합(UN)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plus point

98세 老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100세 인생론’
“60세부터 제2 마라톤 시작하라, 90세를 목표로”

연선옥 기자


김형석교수는 “운동하는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우리 나이로 98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00세 시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 시대의 지성이다. 1920년 평남 대동에서 태어난 그는 도산 안창호(1878~1938) 강연을 들었고, 윤동주(1917~45) 시인과 동문수학했다. 광복과 6·25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 한국의 100년 역사를 직접 목격했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30년 넘게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1960~70년대에는 ‘영원과 사랑의 대화’ 같은 수필집을 냈는데 많은 젊은이가 밤을 새우며 읽는 베스트셀러였다. 아흔여덟의 나이에도 틀니나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닌다.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 강의한다. 다음 달에는 그가 쓴 신간이 나온다.


“생각 깊어진 60~75세가 내 인생 황금기”

김 교수는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운동을 동반하는 생활습관”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2층 방을 오르내린다. 50대 후반에 수영을 시작한 걸 빼곤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 병치레가 잦아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운동은 오히려 피했기 때문이다. 음식은 뭐든 잘 먹는다. 술은 체질에 안 맞아 마시지 않지만, 커피는 지금도 하루 두 잔씩 마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자는데, 낮잠을 30분씩 잔다.

김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를 60세부터 75세까지라고 믿고 있다. 그때 생각이 더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성장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60세부터 제2의 인생 마라톤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취미 생활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워 남은 인생을 새롭게 하라는 의미다. 인생의 마라톤을 위해서는 90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달려도 좋다는 게 김 명예교수의 조언이다. 그것이 100세 시대를 맞는 인생 설계라는 말이다. 남은 인생이 긴데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늙은 젊은이’가 많은 것을 안타까워한다.

김 교수는 “인생에서 50세에서 80세까지는 단절되지 않는 한 기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계획과 신념, 용기를 가지고 확실한 인생관을 정립하라는 것이다. 나이 50에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고민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은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

일도 매우 중요하다. 김 명예교수 자신도 아직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황혼기에 접어들어 건강을 위해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김 명예교수는 일을 포기한 건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며 마주하는 또 다른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고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김 명예교수는 “체념할 것은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으면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며 “운명에 따르는 것은 내 노력의 한계 이상의 사건들을 대하는 지혜”라고 말한다.

그 역시 아내와 평생을 함께한 친구들을 먼저 보냈다. 이별에 따른 고독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하면 아직 일할 수 있는 건강이 남아 있고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학문과 인생의 교훈이 유지돼 사회적으로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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